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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시장의 거울 '유가'가 말해주는 것들 [WM라운지]

조성식 미래에셋생명 증권운용본부장공개 2017-04-13 08:12:40

이 기사는 2017년 04월 11일 15:5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가장 정치적이면서 다른 자산가격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아이템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석유(Oil)'다.

석유를 의미있게 소유한 나라와 그 석유를 수입에 의존해야하는 나라, 석유 가격 상승이 국가재정 건전성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석유 수출국과 경상수지 악화에 주요인으로 작용하는 석유 수입국 등 석유를 둘러싼 국가 간 이해관계는 첨예하기 이를데 없다. 여기에 지구온난화와 청정 재생에너지의 필요, 셰일 석유의 등장 등 몇가지 주요 변수들이 더해져 정신차리고 분석하지 않으면 인과관계의 전후가 헷갈리기 쉽다.

자산시장에서 가격이 먼저 움직이고 논리가 뒤따르는 경우를 흔히 경험한다. 그 중에서 극단적인 예를 꼽자면 2007년 초부터 2008년 7월까지 진행됐던 상품시장 버블시기를 들 수 있다.

당시 60달러 내외이던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1년 6개월 동안 상승을 거듭해 2008년 7월 최고점(146달러)을 기록했다. 당시 유가가 200달러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주장의 리포트로 유명했던 한 외국계 IB의 논리는 지질학자이자 물리학자였던 킹 하버트가 1956년 도입한 '석유 피크' 이론과 맞닿아 있다. 지구 전체 석유매장량의 절반을 소모한 후에는 생산량은 감소하나 증가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가격이 폭등한다는 내용이다.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석유 가격에 맞춘 석유피크 논리는 대세를 이루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상품을 매입해서 보관하는 창고에서부터 상품가격의 상승을 유도하는 리포트 등 전반적인 상품가격 버블에, 금융회사의 석연찮은 개입 정황이 포착되면서 석유가격은 폭락을 시작했다. 결국 2009년 초 35달러까지 폭락하는 대하락을 경험하게 됐다.

이후 약 3년에 걸쳐 점진적인 회복을 거친 유가는 2014년 7월까지 80 ~110달러 사이의 가격대에서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서 우리는 오바마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시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금융위기의 한가운데서 시작한 오바마 행정부의 주요 정책 중 하나는 지구온난화와 미국의 에너지안보 관련 그린에너지 정책이었다. 우방국인 우리나라도 MB정부에서 '녹색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적극적 동참의지를 밝혔던 경험이 있다.

무려 4년 반동안 지속된 유가 80~110달러 밴드는 주요 산유국의 경제정책과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러시아의 재정은 유가 100달러를 전제로 흑자를 유지하는 구조가 됐고 브라질의 국영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는 생산원가 80달러 이상에서 수익이 발생하는 심해유전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했다. 우리나라의 조선업은 밀려드는 드릴십과 해양플랜트 수주에 장및빛 청사진을 그렸었다.

그린에너지를 표방한 오바마 행정부로서도 80~110달러 사이의 유가는 그린에너지 산업에 충분한 동기부여를 할만큼 적당히 높은 가격이었다. 미국은 이미 2012년 셰일가스 기술을 확보해 충분히 더 많은 석유를 더 싼 가격에 공급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시장참여자들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는 골디락스 같은 석유 가격대를 함께 향유한 것으로 보인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가장 정치적인 자산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석유는 이후 미국과 EU연합의 대 러시아 경제제재 하에서 100달러에서 25달러까지 수직하락을 경험한다. 당연히 러시아와 브라질 주식시장은 유가와 운명을 함께 했다. 2016년 2월, 25달러를 바닥으로 55달러까지 상승하는 동안 두 나라의 주식시장과 환율도 호흡기를 단 환자처럼 같은 궤적으로 회복됐다.

유가 50~55달러 밴드가 중요한 이유는 셰일가스의 손익분기점이 모여 있는 가격대이기 때문이다. 50달러 이상 유가에서 미국의 셰일석유를 포함한 에너지 섹터는 흑자를 낸다. 미국 금리인상의 논리는 경제가 디플레이션을 벗어나 임금, 소비자물가 상승 등의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선제적인 금리인상을 통해 대응해야 한다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런 디플레이션 탈출의 일등공신이었던 석유가격이 3월 들어 전월 대비 9%가 하락한 50달러 아래로 내려왔다. 미국의 큰 폭 재고증가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단기적인 수급불균형이 원인이고 다시 50달러대로 유가가 회복된다면 기존 자산시장의 기본 가정들에 큰 영향이 없을 듯하다.

하지만 또 다시 하락의 트렌드를 형성한다면, 예상했던 미국의 금리인상 횟수와 러시아·브라질의 주식시장과 환율, 재정정책의 기대감을 바탕으로 상승했던 기타 원자재가격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석유가격은 퇴근 중에 넣을까 말까를 고민하게 하는 주유소 가격판의 등락보다 훨씬 정치적이고 광범위하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성식 미래에셋생명 본부장

미래에셋·서울증권 자산운용본부 자산운용역
미래에셋증권 국내 및 AI, 해외펀드 마케팅팀장
미래에셋증권 투자전략팀장
미래에셋생명보험 변액보험운용실장
미래에셋생명보험 증권운용본부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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