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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와 사파의 헤지펀드 수익률 경쟁 [thebell desk]

김용관 자산관리부장공개 2018-02-14 08:19:42

이 기사는 2018년 02월 13일 08:2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무협지에 등장하는 정파와 사파 간의 갈등은 흥미진진하다. 누가 강호를 차지할 지 손에 땀을 쥐게하는 매력이 있다. 양쪽 모두 최고의 무공을 얻기 위해서라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그 방법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 정파는 옛 선배들이 연구하고 닦아놓아 검증된 길을 따라가며 꾸준히 수련을 하는 반면 사파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기위해 때로는 생명까지 내걸고 새로운 실험을 한다.

그 모습에 경의를 표할 수도 있지만 무협지에서 이러한 소수의 사파는 다수의 정파에게 혐오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특별히 그들에게 피해를 입힌 것도 없지만 정파는 사파를 없어져야 하는 타도의 대상으로 여긴다. 그래서 사파의 인생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든가 아니면 조용히 사라지든가 둘 중 하나로 결론을 맺는다.

최근 헤지펀드 시장에 관심을 끄는 운용사 2곳이 등장했다. 호사가들은 '헤지펀드 시장의 정파와 사파의 대결'이라고 부르고 있다.

굳이 이 둘을 분류하는 기준을 꼽자면 첫 직장을 들 수 있다. 3투신으로 불리는 운용사의 매니저나 증권사 프롭데스크로 첫직장을 시작한 사람을 정파로 부를 수 있다. 강신우, 김영일, 허남권, 이채원 등이 여기에 속한다. 브랜드의 힘과 대표 매니저의 역량에 좌지우지 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주식 대회 우승자나 증권사 지점 영업사원 출신이라면 사파로 분류할 수 있다. 캐피탈이나 창투사에서 시작해 운용사 매니저를 거친 인물들은 정파와 사파를 넘나든다고 할 수 있다. 과감하게 숏을 치는 등 수익을 내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 매니저 혼자의 힘보다는 멀티 매니저 시스템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정파라고 불리는 곳은 한국투자신탁운용에서 스타 매니저로 이름을 날렸던 박현준 대표가 설립한 씨앗자산운용이다. 사파로 지칭되는 운용사는 우리나라 헤지펀드 최고 하우스로 꼽히는 타임폴리오자산운용 출신의 안형진씨가 운용을 맡고 있는 빌리언폴드자산운용이다.

박현준 대표는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펀드매니저 길을 걸어온 정통파다. 서강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박 대표는 1999년 KB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에서 펀드매니저 생활을 시작했다. 2006년 12월 한국투자신탁운용으로 스카웃된 그는 곧바로 한국투자네이게이터펀드를 맡아 1조원대 메가 펀드로 키우는 괴력을 발휘했다. 당시 이 펀드는 국내 성장주 및 대형주 중심의 투자 전략으로 설정 후 173%에 달하는 누적 성과를 거뒀다. 매년 약 17% 가량의 수익률을 거둔 셈이다. 이에 힘입어 지난 2016년 한투운용 최연소 임원에 오르기도 했다.

빌리언폴드운용의 안형진 대표는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정통 펀드매니저 출신이 아니다. 1983년생인 그는 건국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한화증권 강남지점에 입사했다. 얼마 가지 않아 '모멘텀 투자'에 기반한 주식 고수로 시장에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가 타임폴리오자산운용으로 온 건 2014년 공개채용 때였다. 그는 증권사 근무 경력을 인정받아 운용팀 대리로 펀드매니저 근무를 시작했다. 2015년 과장으로 오른 뒤 헤지펀드 성과를 인정받아 2016년 헤지펀드운용본부장으로 초고속으로 승진했다.

빌리언폴드의 공동대표인 김대현 사장도 한화증권 지점 출신이다. 메리츠종금증권 영업부 등을 거쳐 헤지펀드 운용사를 차렸다는 점에서 안형진 대표와 같은 사파로 묶일 수 있다.

이들 뿐만 아니라 운용업계에는 소위 정파와 사파라 불리는 인물들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한때 정파의 대표주자로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 트러스톤자산운용,브레인자산운용 등이 시장을 주름잡았지만 지금은 사파에게 주도권을 내준 모습이다.

씨앗운용과 빌리언폴드운용을 두고 시장 사람들은 벌써부터 이러쿵 저러쿵 승패를 말하고 있다. 그들 말대로 하면 1차전은 일단 사파의 승리로 보인다. 빌리언폴드는 펀드 출시 한달여만에 3000억원의 자금을 끌어모았다. 신생 자산운용사가 헤지펀드 시장에 진출하자마자 3000억원 이상의 자금을 끌어모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대부분 투자자문사 시절부터 쌓아온 트랙레코드를 통해 자금을 끌어모으거나 일임 자산을 헤지펀드로 옮기는 등의 방식으로 펀드 규모를 키운다. 하지만 빌리언폴드운용은 주요 증권사들이 적극적으로 판매에 나서며 리테일(Retail) 자금을 끌어 모았다고 한다.

씨앗운용은 500억원 정도를 모으는데 그쳤다. 다만 PBS인 미래에셋증권이 이례적으로 100억원 가량의 시딩 자금을 제공해 눈길을 끈다. 증권사 PBS들이 신생 운용사에 집행하는 시딩투자 규모가 많아봐야 50억원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꽤 규모가 크다.더욱이 미래에셋대우는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신생 헤지펀드 운용사에 시딩투자하는 것을 꺼리는 하우스로 유명했다. 하지만 미래에셋대우가 베팅한 것은 한투운용 스타 매니저 출신인 박현준 매니저가 차린 씨앗운용의 역량을 믿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이들의 1년 성과가 궁금해진다. 1조짜리 메가 펀드를 키워본 박현준 매니저의 저력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바닥에서부터 주식을 배운 안형진 매니저 역시 잡초같은 생존 본능을 보여줄 것이다.

헤지펀드 시장은 이들의 경쟁으로 인해 한층더 풍요로워지고 있다. 벌써 830개가 넘는 헤지펀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한달동안 107개 등장하고 28개가 청산됐다. 아무리 자금을 많이 투자받더라도 수익률이 나쁜 펀드는 1년을 버티지 못한다. 대표적인 예가 흥국자산운용의 재량투자펀드였다.

우리나라 헤지펀드 시장은 이미 수익률에 따라 자연스럽게 퇴출입이 이뤄지는 선순환을 보여주고 있다. 정파와 사파의 수익률 경쟁은 그래서 더욱 의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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