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8년 04월 24일 10:2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대한항공은 사기업이지만 공기업 느낌이 난다. 사명에 '대한'이 들어가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다니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고 '잘 나가는' 항공사라 '피 튀기는' 경쟁 풍토가 적다고 한다. 또 입사해 큰 사고를 치지 않으면 정년까지 고용이 보장되는 분위기라고 한다. 땅콩 회항·물벼락 갑질같은 상징적인 사건 외 윗사람들의 갑질이 드러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괜히 회사를 흔들어서 개인이 이득을 볼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사건 이후 주변의 대한항공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갑질이고 뭐고, 걸리지나 말지."물론 오너의 도덕성 결여는 문제다. 그러나 막상 생각해보면 대한항공을 직장으로 다니는 개인에게 조씨 집안의 괴퍅한 성품은 생각만큼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물론 그들 직속으로 일하거나, 그들의 등장에 의전을 책임졌던 승무원들에게는 이야기가 다를 수 있겠다. 다만 대부분의 직원들은 그들을 매일 직면하지 않는다.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대한항공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눈앞의 직무, 팀 내 이슈, 개인사 일 뿐, 저 멀리서 느껴지는 조현민 전무의 '고함'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평범한 대한항공 직장인들도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화가 난 이유는 간단하다. 안 입어도 될 피해를 보았고, 느끼지 않아도 될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한 승무원 지인은 인천공항을 거닐 때마다 눈치를 보지 않으려 애쓴다고 성토했다. 승무원복을 입고 버스에 타면 주위 사람들이 한 마디씩 건넨다고 한다. 조현민 전무 본 적 있느냐, 진짜 회사에서 그러냐, 그런 곳에서 왜 일하냐 등등.
매달 21일에 발표되는 다음 달 비행 스케줄도 조 전무 사건 이후 연기됐다고 한다. 대한항공 사람들은 이 일정을 바탕으로 다음 달 계획을 짠다. 한 사람이 수천 명에게 민폐를 끼친 셈이다. 결혼 등 중대사를 앞둔 사람은 발만 동동 구를 뿐이다. 특별 비상근무를 서는 개인들도 생겨났다. 직장인의 최대 적인 '초과 근무'·'주말 특근'이 현실화한 것이다. "최소 2~3달은 이래야 할 것 같다"는 한 마디에 애환이 묻어났다.
시청역 10번 출구 앞 대한항공빌딩을 들어오고 나갈 때 괜히 주위 눈치를 보는 평범한 그들은 하나같이 마음속으로 외친다. "왜 잘못은 그들이 했는데, 부끄러움은 우리 몫인가"라고. '오너의 주인 의식'·'갑질 근절' 등 이야기가 많지만 정작 오너에게 필요한 건 염치다. 형식적인 대국민 사과에 앞서, 잘못 없이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 대한항공 직원들을 향해 먼저 고개를 숙였어야 했던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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