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8년 05월 20일 14:3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정도 경영은 그룹 지배구조 재편 과정에서도 빛을 발했다. 걸림돌이 산적해있던 지주사 전환과 GS그룹과의 계열분리 과정에서도 원칙과 정도를 따랐다. 그 덕분에 LG그룹은 대한민국 기업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었다. '제계 첫 지주사 전환'과 '계열분리의 정석'이라는 수식어가 그 증거다.

1995년 LG그룹 3대 회장에 취임한 구 회장은 곧 'IMF 외환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순환출자 고리와 연대 보증 폭탄이 기업들의 목숨줄을 죄었다. 지배구조 투명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구 회장은 국내 대기업 최초로 지주사 체제 전환에 나섰다.

지주사 개념과 운영 방식, 전환 절차 등 모든 것이 생소할 때 LG그룹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얽히고 설킨 계열사간 소유 고리를 풀기 위해 분할, 합병 거래가 줄을 이었다.

거래 중심에 그룹 핵심 계열사 'LG전자'와 'LG화학'이 있었다. 2001년 4월 LG화학은 화학 지주사 'LGCI'와 사업회사 'LG화학', 'LG생활건강'으로 나눠졌다. 같은 시기에 LG전자도 전자 지주사 'LGEI'와 LG전자로 분리됐다.

2003년 화학, 전자 지주사인 LGCI와 LGEI가 한 몸이 됐고, 그렇게 탄생한 통합법인이 ㈜LG다. 여기에 LG트윈타워를 갖고 있던 서브원(옛 LG MRO)의 부동산 임대 부문도 한 몸이 됐다. 결과적으로 분할 합병 거래를 통해 ㈜LG 밑으로 핵심 계열사들이 도열하는 그림이 만들어졌다.

수직적 출자 구조로 단순화되면서 자회사는 사업에 전념하고 지주회사는 사업 포트폴리오 관리와 미래 전략 수립을 관장하는 선진적 지배구조 시스템이 구축됐다. 구 회장은 지주사 체제로 전환을 마무리한 후 CEO들과의 릴레이 미팅에서 "앞으로는 이전보다 더 적극적인 책임경영으로 자기 사업에만 매진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구 회장의 미래 경영환경에 대한 선견지명이 중장기적으로 LG그룹이 기존 사업 포트폴리오 관리와 신성장 동력 발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경영 토대를 마련해줬다는 평가다.

잡음 없는 계열 분리도 정도 경영의 대표적인 성과물이었다. 구 회장은 1999년 이후 경영시스템 강화 방안의 일환으로 선제적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해 나갔다.

1999년 LG화재를 시작으로 2000년 LG벤처투자와 아워홈, 2003년 LS그룹, 2005년 GS그룹, 2007년 LG패션 등이 차례로 계열분리 수순을 밟았다. 자연스럽게 보험과 전선, 정유, 건설, 유통 사업 분야가 정리됐고, 핵심 사업영역이 전자, 화학, 통신 서비스로 단순화됐다.

특히 2005년 이뤄진 허 씨 일가와의 계열분리는 수 조원 대 자산이 분리되는 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잡음과 분란 없이 단행됐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기업사의 '의미있는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GS는 2004년 ㈜LG에서 분리돼 나온다. 분할 과정에서 ㈜GS는 GS칼텍스(옛 LG칼텍스정유)와 GS리테일(옛 LG유통), GS홈쇼핑(옛 LG홈쇼핑) 등을 가져왔다. GS그룹의 역사가 시작된 순간이다.

'구인회-허만정' 창업 1세대에서 시작해 2세대인 구자경 LG 명예회장-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을 지나, 구본무 LG 회장-허창수 GS 회장에 이르기까지 57년간 3대에 걸쳐 유지되어 온 양 가간 화합·신뢰의 동업관계는 "아름다운 이별"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구 회장은 GS그룹 출범식에 직접 참여해 "지난 반세기 동안 LG와 GS는 한 가족으로 지내며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함께 이겨내고 우뚝 설 수 있었다"며 "지금까지 쌓아온 LG와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일등 기업을 향한 좋은 동반자가 되어 달라"고 축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양 그룹은 계열분리 후에도 동종 분야에서 경쟁을 피하는 암묵적인 '신사협정'을 맺는 등 서로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LG그룹과 GS그룹 간 계열분리는 상호 신뢰가 탄탄했기 때문에 분란 없이 마무리될 수 있었다"며 "계열분리 후에도 구 회장이 사업적인 부분에서 GS와의 관계를 중히 여기면서 별다른 잡음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