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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계열 증권사의 존재 이유는? [thebell desk]

민경문 자본시장부 차장공개 2018-08-03 14:17:30

이 기사는 2018년 08월 01일 08:0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SK증권이 팔렸다. 26년 만에 SK 딱지를 뗐다. 새 주인은 PEF다. 대기업 계열 증권사라는 타이틀도 떨어졌다. SK가 되사가는 시나리오도 거론되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다. 신용등급도 하락했다. 모회사의 대주주 지원여력이 약화됐다는 게 신평사의 판단이다. 예상된 수순이었다.

기자는 SK증권 주가에 주목했다. 조정을 겪긴 했지만 별다른 동요는 없었다. 대주주 적격 승인 소식에는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다. M&A 불확실성 해소라는 관점으론 설명하기 어려웠다. 시장에서는 대기업에서 떨어져 나간 중소 증권사의 성장 여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듯 했다.

회사 내부의 동요도 크지 않았다. 한 SK증권 IB 임원은 "대기업 증권사로서 받은 혜택보다 각종 규제에 따른 불이익이 훨씬 컸다"며 차라리 후련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동안 힘들이지 않고 계열 회사채 물량을 따낼 수 있었지만 인수단으로서 한계는 분명했다. 이제는 주관사 영업에서 경쟁 IB와 제대로 붙어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문득 2004년 LG카드 부실 여파로 동반 매각된 LG증권을 떠올렸다. LG증권이 대기업 계열 증권사로 그대로 남았다면 지금의 NH투자증권과 같은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SK증권처럼 그룹 계열사 딜에 의존하며 버틸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을 기대하긴 어려웠을 지 모른다.

돌이켜 보면 국내 대기업의 증권사 경영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1조원 가량에 매입한 CJ투자증권(현 하이투자증권)을 그 절반 가격에 팔아야 하는 처지다. 1990년대 바이코리아로 전성기로 구가했던 현대증권은 현대상선 등 계열사 부실의 희생양이었다. KB에 팔릴 때는 헐값 매각 논란을 자초했다.

최근 시장에서 문제가 터진 국내 증권사들은 공교롭게도 대기업 IB가 주를 이루고 있다. 중국 부실 ABCP의 구조를 짠 증권사, 이로 인한 손실액이 가장 컸던 증권사가 모두 대기업 계열이다.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에 따른 배당금 사고로 곤혹을 치러야 했던 하우스도 마찬가지다.

소속 집단에서 이들의 실적 비중은 미미한 수준이다. 미래에셋대우나 한국투자증권처럼 증권사가 '센터'는 아니라는 얘기다. 그룹 수뇌부도 증권사가 돈을 버는 데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사고 치지 않고 조용히(?) 지내기를 바랄 뿐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이는 오히려 그룹 평판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 신평사들이 계열 지원 가능성이라는 명목으로 대기업 IB의 신용등급을 한 노치(notch) 높게 매기는 점은 아이러니다. 주력사도 아닌데 유사 시 재무적으로 도와줄 것이라는 논리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지금 상황만 보면 '꼬리자르기'가 그룹 신용도 유지에 더 나은 판단일지도 모르겠다.

한 대기업 증권사 IB 임원은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모기업 임원과의 원만한 관계 유지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실무 직원 입장에서도 업무에 대한 동기 부여(motivation)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단순히 오너의 사금고로 계열 IB를 활용하는 시대는 지난 듯하다. 대기업이 증권사를 보유하는 목적을 다시 생각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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