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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투자결정에 '외압'은 독 [thebell note]

이경주 기자공개 2018-08-06 08:13:10

이 기사는 2018년 08월 03일 08:1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달 6일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 방문을 예고했다. 김 부총리는 기업 애로사항 청취가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업계에선 국내 1위 그룹 삼성도 투자 보따리를 풀 차례가 됐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한다. 그간 현대차와 SK, 신세계 그룹 등도 김 부총리 현장 방문 직후 대규모 투자계획을 밝힌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업계가 예상하는 삼성 투자금액은 100조원 이상이다. SK그룹이 올 3월 슈퍼사이클 국면에 있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80조원 투자계획을 밝힌 것이 비교대상이 됐다. 삼성은 D램과 낸드플래시 글로벌 1위 사업자란 입지 때문에 더 큰 금액을 투자할 것으로 기대됐다.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달 인도 스마트폰 공장 준공식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일자리 창출을 당부 받은 것도 배경이다. 청와대가 재판 중인 이 부회장의 경영 활동을 인정해 준 것으로 해석됐다. 어떻게든 삼성은 대규모 투자로 화답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삼성이 단순히 정부 요구에 따라 천문학적 단위의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판단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삼성그룹에서 대규모 투자가 가능한 유일한 분야로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을 꼽는다. 하지만 반도체는 장치산업으로 적기 투자가 생명이다. 미래 수요를 면밀히 예측해 증설결정을 내려야 하고, 실패하면 대규모 적자를 볼 수 있다.

반도체 부문은 이미 지난해 사상 최대 투자를 단행해 추가로 투자를 집행하기엔 부담스럽다. 지난해 반도체 투자규모는 27조3000억원으로 12조~14조원 수준이었던 평년의 두 배에 이른다. 이에 올해부턴 소강 국면에 진입할 것이라고 삼성전자는 예고했었다. 그런데 최근 상황은 미래 투자를 조기에 실행할 것을 요구받는 분위기가 됐다.

업계에선 100조 투자금액을 맞추려면 국내 반도체 기지인 평택에 3공장까지 지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삼성전자는 1공장에 2021년까지 30조 투자할 계획이라고 지난해 7월 밝혔다. 이후 올 초에는 1공장과 같은 크기의 2공장 설립도 추진했다. 다만 이는 언제 급증할지 모르는 수요에 빠르게 대처하기 위한 기초 공사 수준이었다. 100조 투자금액을 맞추려면 1공장 투자비를 포함해도 아직 초기 단계인 2공장(30조) 뿐 아니라 3공장(30조)까지 짓겠다고 발표해야 겨우 가능하다.

수요를 앞선 투자는 삼성전자 뿐 아니라 업계 전체의 공멸을 낳을 수 있다. 한 증권사 수석 애널리스트는 "정부가 원하는 기대치를 맞추려면 3공장 투자계획까지 나와야 한다"며 "하지만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급초과를 만드는 순간 모든 업체들이 공멸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지금은 공급부족 상태를 유지해 이익을 취하면서 반도체 굴기를 외치는 중국 공세에 대비해 체력을 비축할 때다.

이에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6일에 투자 계획 발표가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른 그룹들이 만든 ‘김 부총리 방문=투자 계획 발표' 공식을 삼성이 깰 수도 있다. 하지만 관측이 현실화 돼도 삼성을 비난하는 것은 곤란하다. 무리한 투자로 삼성 경쟁력이 훼손되면 이미 창출한 수십만 명의 국내 고용까지 흔들릴 수 있다.

삼성전자의 투자 시기와 규모는 전 세계에서 반도체 업황을 가장 잘 아는 삼성전자에 맡기는 것이 옳다. 정부도 삼성의 기업적 사정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 그래야 미래 고용 창출도 가능하다. 맹목적 투자 요구는 포퓰리즘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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