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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사춘기, 과거를 버릴수록 극복도 빠르다 [WM라운지]

곽재혁 KB국민은행 KB골든라이프 선임연구위원공개 2018-08-27 08:31:31

이 기사는 2018년 08월 23일 14:4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내가 아무래도 쓸모 없는 인간이 된 것 같네."

유명 은퇴교육강사 A씨는 저녁자리에서 과거 상사였던 B씨가 눈물을 보이며 한숨을 쉬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B씨는 금융감독원 간부와 금융기관 임원을 수차례 역임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로 여생을 즐기는데 재산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은퇴 후 환경의 변화에 적응을 못한 채 괴로워하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바로 은퇴 후에 겪는 신(新) 사춘기 때문이다.

인생에 있어서 첫번째 사춘기는 13, 14세때 통상 찾아와서 2~3년을 앓다가 지나간다. 사춘기를 심하게 앓는 경우 공부를 잘 하던 아이가 갑자기 반항을 심하게 하거나 어긋나기도 하고, 심하면 성적 및 교우관계 비관으로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자녀들이 사춘기를 잘 넘기게 하는 것은 부모들의 한결 같은 고민거리이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나서 은퇴를 하게 되는 시점에서도 사춘기가 찾아온다. 40년 전에 겪은 사춘기는 신체 내부의 호르몬 변화에 의한 반면 지금은 외부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의한 것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강도나 부작용은 그 때 겪었던 사춘기 못지 않다.

은퇴의 사춘기는 우선 은퇴 직후 한 두 달 정도 겪는 1춘기 '거부' 국면에서 시작된다. 은퇴를 했지만 왠지 장기휴가를 간 것 같은 느낌에 빠지며 이전에 회사에서 만났던 인맥들에게 전화를 하고 저녁에 만남을 가진다. 인간관계의 정리 차원도 있지만 그보다는 아직도 그 끈과 지위를 쥐고 싶은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사실 그들에게 은퇴한 당신은 상사의 친구 또는 선배로서 여전히 불편한 존재일 뿐이지만…

그러고 두 달 정도가 지나면 2춘기 '우울' 국면이 찾아온다. 연락할 사내인맥도 거의 끝나고 뭔가는 하고 싶은데 자신을 찾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 때 조울증 환자처럼 기분이 좋았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우울해지는 상황이 반복된다고 한다. 앞서 소개한 잘 나가던 B씨의 사례가 이에 해당된다.

2춘기 이후 1년이 지나도 재취업을 하거나 집중할 만한 취미를 가지지 못한 경우에는 3춘기인 '분노' 국면이 찾아온다. 같이 퇴직한 후 좋은 조건에 재취업된 동료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세상의 불공평함에 분노를 느끼게 된다. 맨날 술자리에서 인맥만 쌓던 실력없는 동료, 모두들 바쁠 때 대학원 다닌다고 먼저 퇴근하는 얌체 동료보다 묵묵히 일한 자신의 가치를 폄하(?)한 회사가 원망스럽다.

이 시기를 잘 넘겨 마지막 4춘기인 '수용' 국면으로 빠지면 현실을 인정하고 다시 인생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2춘기와 3춘기의 함정에 빠져 잘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들이 의외로 주변에 많다. 특히 과거 직장생활에서 지위가 높았을수록 함정의 깊이는 더욱더 크다. 화려했던 자신의 지난 시절을 들춰볼 때마다 속에서 분노는 치밀고 주변에서는 점점 왕따가 되는 것이다.

모 기업체 임원으로 있다가 퇴직한 C씨는 쓰레기를 버리러 현관 앞을 나섰다가 경비원이 '전무님 오늘은 집에 계시네요'라고 크게 인사하는 소리에 민망함을 느꼈다. 이후부터 해 지기 전에는 동네를 다니지 않고 집에만 있다며 자신의 처지에 대해 하소연을 했다. 2춘기가 대인기피증으로 잘못 진행된 것이다.

'두 번째 단계'의 저자인 사회심리학자 배티 프리던은 '노년이란 인간이 자신을 완성해 가는 시기'라고 했다. 성장과 죽음처럼 은퇴 또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런 과정이라면 빨리 은퇴 사춘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해야만 즐거운 인생 2막을 열 수 있다. 이를 위해 화려했던 과거의 기억들은 가급적 빨리 버리고 현실을 인정하는 가운데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삼국지에서는 이러한 교훈의 예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두 인물이 나오는데 바로 원소와 조조이다. 북방의 최대 맹주 원소는 관도전투의 대패로 홧병에 걸렸는데 이후 그의 아들들은 조조에게 멸망을 당헸다. 반면 적벽대전에서 더욱 큰 대패를 당한 조조는 퇴각 후 '패배는 더 큰 승리의 과정'이라며 실의에 빠진 장졸들을 되려 위로하며 전열을 정비했다. 이후 조조의 위나라는 빠르게 패자의 지위를 되찾았다.

100세 시대에서 인생이라는 축구게임은 이제 막 전반전을 끝냈을 뿐이다. 이미 끝난 스코어에 집착해 봐야 다음 경기에 악영향만 미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현실은 인정하되 긍정적 마인드를 잃지 않고 차분히 전략을 다시 짜면 후반전에 얼마든지 상황을 뒤집을 수 있다. 응답하라 1994에서 칠봉이가 쓰레기에게 던진 말처럼 '끝날 때까지는 결코 끝난 게 아니니까'



곽재혁 KB국민은행 KB골든라이프 선임연구위원

KB국민은행 IPS본부 투자솔루션부
투자자산운용사, 공인재무설계사(CFP)
한국FP협회 저널 편집위원
저서 : 4차산업혁명 어떤 기업에 투자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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