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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주도 펀드의 성공 조건 [thebell note]

조세훈 기자공개 2018-12-17 10:09:28

이 기사는 2018년 12월 13일 08:1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정책금융기관의 흑역사가 다시 한번 조명됐다. 이번엔 녹색성장펀드, 자원외교 관련 펀드 손실 내용이다. 이 펀드들은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녹색성장', '자원외교'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정책금융기관이 중심돼 조성한 것들이다.

KDB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등은 2009년 해외자원개발펀드에 3000억원 규모를 투자했다. 그러나 현재 해당 펀드의 누적 손익률은 마이너스 96%에 달한다. 펀드 만기는 내년 12월 25일로, 저유가 기조가 지속된다면 역대급 손실로 막을 내릴 전망이다.

녹색성장 펀드도 암울하기는 마찬가지다. 수은은 2009년 9월 탄소펀드를 조성했는데, 현재 손익률은 마이너스 65%이다. 이처럼 10년 만에 수천억원의 손실이 발생하자 여야 국회의원들은 한목소리로 '혈세 낭비'를 질타했다. 정책금융기관이라는 명분으로 국가 정책 지원 펀드에 무작정 자금을 출자해줬다는 지적이다. 정치적 판단이 투자의 원칙인 손익계산을 뛰어넘었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정책금융기관이 이제 정부 정책 지원 펀드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그러나 정책금융기관의 투자를 꼭 부정적으로 규정짓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사회·경제적으로 꼭 필요한 사업이지만 민간 금융기관이 쉽게 투자하기 어려운 영역들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갈수록 글로벌 문제로 부각되는 친환경 이슈나 자원 하나 없는 나라의 자원 확보 노력은 꼭 필요하지만 민간 영역에서 쉽사리 진입하기 어려운 곳들이다. 이런 영역에 정부주도펀드를 조성, '마중물' 역할을 하는 일은 정책금융의 설립 목적상 적합한 행위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도 마찬가지다. 기업 구조조정을 돕고, 성장단계의 중소벤처·중견기업 등을 지원하는 일은 정부의 국정철학과 우리경제에 모두 필요한 사항이다. 정책금융기관이 녹색성장펀드, 자원외교펀드, 기업구조혁신펀드, 성장지원펀드 등에 돈을 내는 게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관건은 투자금 조성 이후의 관리다. 큰 그림이 그려졌다면, 그 투자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운용하는지가 성패를 결정짓는다. 산은캐피탈의 성공 사례를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산은캐피탈은 3년 연속 1000억원의 당기순이익 달성이 유력하다. 이익 규모뿐 아니라 수익률과 리스크 관리도 업권 최상위 수준이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매각 이슈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이룬 성과다. 수익의 상당 부분은 바이오 투자의 결실에서 비롯됐다. 산은캐피탈 관계자는 "10년 전 투자한 바이오 부문의 성과가 최근에 큰 수익으로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비결은 투자 조건으로 전문성을 인정하는 데에 있다. 바이오 분야는 김대중 정부 때부터 주목한 미래 먹거리 산업이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며 바이오분야에 대한 관심이 최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2005년 말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논문이 조작된 것으로 밝혀지자 국내 바이오 투자 열기는 급속히 가라앉았다. 바이오 산업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와 관심이 떨어지자 즉각 자금 조달이 막혔다. 바이오 투자 심리가 꽁꽁 얼어붙자 바이오 벤처 열풍도 사그라들었다.

산은캐피탈은 바이오 암흑기인 2006년 펀드를 조성해 바이오기업에 투자했다. 정치적 판단이 배제된 투자라고 보긴 어렵다. 그러나 다른 펀드들과 달리 펀드 운용을 외부 전문가에게 맡겼다. 바이오분야는 장기 투자가 필요하며, 전문적인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동안 외부 전문가를 꾸준히 채용해서 펀드 관리를 철저하게 했다. 그해 투자된 테고사이언스는 2015년 3배 이상 수익을 냈다. 이밖에 큐리언트, 레고켐바오사이언스 등에서도 큰 수익을 냈다. 바이오 생태계 활성화의 마중물 역할을 하면서도 높은 수익을 낸 모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도 출범 이후 국정철학 이행을 위해 여러 정부주도펀드를 만들었다. 정부의 철학에 맞게 사업방향을 정했다면, 그 운용은 정치적 색채를 빼고 전문가에게 온전히 맡겨야 한다. 적폐청산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다. 이전에 답습해오던 정부, 정치 개입 유혹을 뿌리뽑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전임 정부의 실패를 복기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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