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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의 서막 '범한진家 형제의 난' [범한진家 흔들리는 수송보국 꿈]③'유산' 놓고 소송전…반목하는 4형제, 분리된 '육·해·공'

임경섭 기자공개 2019-02-11 13:32:00

[편집자주]

'육·해·공' 전 영역에서 물류사를 설립, 국내 최대 수송기업으로 자리매김 했던 범한진가(家)가 수빅조선소마저 매각하거나 잃을 상황에 처하며, 수송 분야 삼각편대의 한 축인 '해상' 운송 기능을 완전히 잃을 위기다. 범한진그룹은 한진해운의 파산에 이어 한진중공업의 상선 건조 기능마저 잃게 될 경우 해상운송과 관련한 산업에서는 완전히 손을 떼게 된다는 의미가 있다. 창업자 조중훈 회장의 꿈이었으나 지금은 위기에 처한 '수송보국의 꿈'에 대해 들여다봤다.

이 기사는 2019년 01월 29일 11:1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조중훈 창업회장 별세 뒤 조양호·조남호·조수호·조정호로 이어지는 2세 승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조 창업회장은 아들들의 승계 문제를 생전에 완전히 매듭짓지 못했다.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둘러싸고 한진가(家) 4형제는 사분오열하며 소송전을 벌였다. 조중훈 회장이 쌓아올린 '육·해·공 삼각편대'도 갈라졌다. 한진가 불운의 서막이었다.

범한진가를 두루 거친 한 임원은 "그룹이 와해 되기 전에는 조선·해운이 한 몸으로 움직이고, 한불종금(메리츠종금 전신)이 신조발주 등에 대한 금융제공을 하고, 동양화재(메리츠화재 전신)가 사고보험을 책임지며 그룹 전체의 사업이 순항하도록 각 계열사 간 긴밀히 협력했다"며 "한진중공업이 배를 대고, 한진해운이 대양을 뛰고, 육상운송은 ㈜한진이, 항공운송은 대한항공이 하면서 수송그룹으로서 종합물류사업을 벌이기 위한 전후방산업이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진家 가계도

◇후계작업 시작, 장자 승계 원칙…흩어진 4형제

조중훈 창업회장은 1990년대 초반부터 4형제에 대한 후계작업을 준비했다. 4형제는 모두 한진그룹의 주력 계열사로 성장한 대한항공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이후 조 창업회장은 본인이 구상했던대로 4형제를 주요 계열사에 배치했다. 계열분리를 염두에 두고 4형제가 각자 몸담은 회사와 함께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승계로 이어지도록 준비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1974년 미주지역본부 과장으로 대한항공에 입사했다. 장남으로 한진그룹의 모태인 대한항공을 승계받도록 일찌감치 결정됐다. 입사 이래 대한항공을 떠나지 않고 경영인으로 발돋움했다. 1992년에는 대한항공 사장에 올랐고, 1996년부터는 한진그룹 부회장으로 부친의 뒤를 이었다.

반면 대한항공에서 경영수업을 시작한 차남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이하 3형제는 각각 중공업·해운·금융으로 흩어져 저마다의 영역을 구축했다. 조남호 회장은 1989년 한일레저 사장으로 부임하면서 독자 영역 구축에 나섰다. 1993년 한진건설(한일개발) 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1999년 한진건설과 한진중공업이 통합하면서 한진중공업 부회장을 맡았다.

삼남인 고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은 1979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1985년 한진해운에 상무로 첫 발을 들였다. 이후 한진해운에서 후계 작업을 이어가면서 한진해운 경영자로 성장했다. 1994년 한진해운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고, 2003년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계열 분리해 독자 노선을 걸었다.

막내인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은 1983년 대한항공에 입사했다. 형들이 중공업·해운을 물려 받으면서 조정호 회장은 옛 한일증권(한진투자증권) 부장으로 이동해 금융업에서 승계작업을 시작했다. 1997년 옛 한진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데 이어 1999년 대표이사 부회장에 취임했다. 조 창업회장이 사망하고 2003년 메리츠증권(전 한진투자증권)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

한진家

◇갈라진 '육·해·공'…유산 놓고 사분오열

조 창업회장은 생전에 후계작업을 진행한대로 4형제의 승계를 결정했다. 장자승계 원칙에 따라 조양호 회장이 한진그룹 회장직과 가장 큰 계열사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동생들 사이에서 불만이 싹트기 시작했다. 승계 이후 틀어지기 시작한 4형제의 관계는 다시 회복되지 못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다툼은 '형제의 난'으로 격화됐다.

형제의 난의 발단은 재산분할을 결정한 조 창업회장의 유언장 진위여부에 있었다. 조양호 회장의 대한항공과 정석기업에 재산 대부분을 상속한다는 내용이 문제가 됐다. 조남호·조정호 회장은 혼수상태였던 조 창업회장이 유언장을 작성하기 어려운 상태였다며 조양호 회장이 유언장을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양호 회장과 조남호·조정호 회장 간 법정다툼이 시작됐다.

한진그룹 임원 출신의 한 인사는 "차남과 삼남 쪽에서 거세게 장남의 유언장 이런 부분들에 대해 의도적으로 왜곡했다고 주장하면서 반발했다"며 "서로가 매끄럽게 정리를 못했고, 그런 부분들이 한진그룹의 사세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당시 임원들도 서로 어느 쪽의 입장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집안 어른들의 중재 끝에 형제들은 사업분할·계열분리 및 재산분할을 담은 합의안을 만들었다. 합의에 따라 조남호 회장과 한진중공업은 보유한 메리츠화재(전 동양화재) 주식 전량을 매각하고 정석기업 주식 42만6051주(20.39%)를 대한항공에 넘겼다. 이어 조정호 회장도 메리츠화재가 보유한 한진과 한국공항 주식을 장내 매도하면서 한진그룹은 2005년 한진해운을 제외한 계열분리를 완성했다.

그러나 계열분리 이후에도 형제간 분쟁은 끝나지 않았다. 정석기업을 통해 '정석기업→한진→대한항공→정석기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완성한 조양호 회장이 합의안을 지키지 않았다며 조남호·조정호 회장이 소송을 냈다. 정석기업 차명 주식 양도를 요구하며 다시 시작된 형제간 소송전은 '부암장 소송', '유언장 감정'으로 이어지며 정점으로 치달았다.

형제의 난은 2011년 모든 소송이 정리되며 일단락 됐다. 하지만 한번 틀어진 관계는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태로 회복되지 않았다. 조 창업회장이 일으켰던 재계 8위의 한진그룹은 반목과 갈등을 겪으며 갈라지고 축소됐다. 조 창업회장이 쌓아올린 한진가 '수송보국의 꿈'에도 균열이 시작됐다. 형제들의 감정 다툼에 분열한 '육·해·공 삼각편대'는 다시 한 몸으로 움직이기 어려웠다. 각자도생하며 흩어진 형제들은 순차적으로 위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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