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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만하지 않은 '산업은행'과의 관계가 범한진家 실패 잉태 [범한진家 흔들리는 수송보국 꿈]④자산 매각에만 집중…은행과 기업은 서로 믿지 못했다

이광호 기자공개 2019-02-11 13:33:00

[편집자주]

'육·해·공' 전 영역에서 물류사를 설립, 국내 최대 수송기업으로 자리매김 했던 범한진가(家)가 수빅조선소마저 매각하거나 잃을 상황에 처하며, 수송 분야 삼각편대의 한 축인 '해상' 운송 기능을 완전히 잃을 위기다. 범한진그룹은 한진해운의 파산에 이어 한진중공업의 상선 건조 기능마저 잃게 될 경우 해상운송과 관련한 산업에서는 완전히 손을 떼게 된다는 의미가 있다. 창업자 조중훈 회장의 꿈이었으나 지금은 위기에 처한 '수송보국의 꿈'에 대해 들여다봤다.

이 기사는 2019년 02월 01일 10:5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로 정리되고 있다".

한창 산업은행 주도로 현대상선을 포함한 해운사의 구조조정이 추진 중이던 어느날 산업은행 관계자는 뜻밖의 말을 했다. 대주주 일가의 사재출연 규모와 추가 자구안 합의가 지연되면서 흉흉하게 나돌던 법정관리 소문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법정관리 신청 당일까지도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해운업계 관계자는 없었다. 한 관계자는 "대한항공 일가의 지원을 더 끌어내기 위한 압박 차원일 것"이라고 했다. 다수의 관계자들도 비슷하게 생각했다.

왜 산업은행이 한진해운을 법정관리로 정리키로 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선 약 2년 반이 지난 지금도 명쾌한 게 없다. 한진해운이 파산한 이후 정부는 6조원이 넘는 해운업 금융지원 방안을 확정했다. 약 40년의 업력을 가진 세계 7위 선사를 살려내지 못하고 뒤늦게 해운업을 재건한다며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한다는 건 누가봐도 '비효율적'으로 일하는 방식이다.

해운산업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한진해운은 우리가 제시한 구조조정 원칙을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진해운은 최대 선주사인 시스팬이 산업은행의 동의를 조건으로 용선료 조정에 합의하면서 용선료 협상 역시 타결을 앞두고 있었다. 반면 현대상선은 2M과 정식 해운동맹 체결에 실패하고 향후 3년간 선복량 제한을 받는 '전략적 협력'에 그친 상태였다. 그럼에도 현대상선은 산업은행 등으로부터 1조원이 넘는 지원을 받았다.

산업은행과 한진그룹의 관계가 원만치 않았다는 건 한진 내부 관계자들이 더 인정하는 사안이다.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는 산업은행과 국토교통부의 영향력 아래 있는 한진그룹은 서로를 대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었다. 한진그룹과 일해 본 은행권 인사는 당시 "답답한게 많았다"며 "사전에 상의한다기 보다 뭘 결정한 뒤에 통보하는 경우가 더 자주 있었다"고 했다. 한진그룹 내부에 금융 관련 전문가는 적고 국토부 관련 전문가는 많은 점도 한진해운의 운명에 적지않은 영향을 주었음을 의미해주는 말이다.

한진해운 일지

한진중공업도 다르지 않다. 은행권 인사들은 꾸준히 사업구조개편과 구조조정을 요구한다. 한진중공업은 2016년 5월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과 자율협약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채권단 지원 아래 본격적인 경영정상화 기대감이 높았다. MOU 내용은 2조원대 부동산 매각, 대륜발전 등 에너지 발전계열사 매각, 채권단의 신규자금 지원 등이다. 하지만 2년도 안돼 한진중공업 수빅조선소는 필리핀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당시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5년 전 타 조선사들이 일감이 많다는 이유로 구조조정을 외면하던 시기에 영도조선소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몸집 줄이기에 들어갔다"며 "선제적인 대응으로 불황에 대비한 덕분에 자율협약 신청 이후 실사를 포함한 후속절차가 원활하게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산업은행 관리 하에서 살아나는데 실패했다. 결과적으로 산업은행과 관계를 맺고 자율협약을 체결한 범한진가 해상운송 관련 계열사들은 모두 법정관리의 길로 가게 된 셈이다.

한진해운

범한진가 관계자들은 요즘도 산업은행 얘기가 나오면 날을 세운다. 한 관계자는 "산업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고 오로지 자산 매각 등 금융논리만 요구한다"며 "은행에서 업체에 파견된 관리인만 보더라도 이분들이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고 했다.

한진해운이 파산했을 당시 해양수산개발원(KMI)의 한 분석에 따르면 당시 해운산업 지원 방식은 운영자금의 직접적인 지원보다는 간접적인 지원과 자산 매각을 통한 자구책 시행 유도가 주였다. 그나마 자금 지원책이라 할 수 있는 선박 펀드나 회사채 만기 연장 등에서는 금융 논리를 앞세워 시중보다 높은 금리(9~12%)를 적용했다. 그 결과 재정적 부담이 가중됐고, 사업 포트폴리오가 더욱 악화되면서 파산에 이르게 됐다는 지적이 있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시장의 원칙대로 한 것"이라며 "은행 자금을 지원받아 어떻게든 살아날 것이라는 생각은 모럴해저드를 낳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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