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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의 분리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19-06-11 09:55:18

이 기사는 2019년 06월 11일 09:5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올해부터 코스피 상장기업들은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공시해야 된다. 지난해 12월 결산법인 중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200개 법인이 공시를 마쳤다. 비금융사는 161개인데 이들 대형 상장사 중 70%에서 대표이사(CEO)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CEO와 이사회 의장의 분리는 기업지배구조개선 논의에서 단골 메뉴다. 연전에 삼성그룹이 앞장을 섰고 올해는 SK가 새로 동력을 제공했다. SK는 CEO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했을 뿐 아니라 사외이사인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으로 이사회 의장을 보했다. 전직 CEO가 이사회 의장을 하던 은행권의 관행과 다르다. 이렇게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는 경우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분리다.

미국의 대기업에서는 CEO가 이사회 의장을 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에 의하면 2017년 기준으로 S&P500 기업의 52%가 겸직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CEO와는 별도의 이사회 의장을 두고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으며 CEO와 이사회 의장의 분리가 주가에 플러스 효과를 발생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기업지배구조 평가기관들도 CEO와 이사회 의장의 분리 체제를 더 호의적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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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디즈니의 CEO였던 마이클 아이스너 회장은 2004년에 본인의 재선이 결정되는 주주총회를 앞두고 대다수 기관투자자들이 CEO에 대한 불신을 표명하자 이사회 의장직을 CEO와 분리하는 것으로 사태를 무마하려 했다.

그런데 아이스너는 기업의 경영에 가장 어두운 사외이사 전 상원의원 조지 미첼을 본인의 고사에도 불구하고 이사회 의장에 추대했다. 시장과 일부 이사들은(심지어는 미첼조차도) 아이스너가 미첼을 컨트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악수를 둔 것으로 평가했다. 아무도 아이스너의 진정성을 믿지 않았다. 43%의 주주들이 주주총회에서 CEO의 재선에 찬성하지 않았고 아이스너는 22년간의 CEO 자리에서는 물론이고 이사직에서도 결국 퇴임하게 되었다.

후일 국무장관이 된 렉스 틸러슨이 CEO로 있던 2008년에 엑슨모빌에서는 CEO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는 문제가 치열하게 논의되었다. 주주들은 회사의 친환경 정책이 미온적이라고 생각해서 CEO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주주총회를 앞두고 일부 주주들이 CEO와 이사회 의장 분리를 위한 주주제안을 회사에 제출했다. 캘퍼스(CalPERS)를 포함한 대형 연기금들도 지지했다. 그러나 주주제안은 주주총회에서 39.5%의 찬성 밖에는 얻지 못해 부결되었다. 당시 78명의 주주가 록펠러의 직계 후손들이었고 이들 중 72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나 회사 총지분의 0.06%에 불과했다.

미국에서 CEO와 이사회 의장의 분리는 회사의 ‘오너'가 회사의 경영에 밝지 못하거나 그다지 열정이 없는 경우 이사회 의장으로서 인사권만 행사하는 데 주로 활용된다. 이사회가 최종적인 책임을 지기는 하지만 경영판단은 CEO이 몫이다. 오너가 없는 회사의 경우 두 지위가 분리되는 이유는 이사회가 CEO를 영입하기 때문이고 사외이사들 중에서 CEO가 발탁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두 회사가 대등하게 합병하는 경우 양측의 수장이 CEO와 이사회 의장을 나누어 맡는 경우도 많다.

두 지위를 분리하는 것은 이사회가 CEO를 견제하고 감독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와 같이 오너가 경영 일선에 나서는 경우 두 지위를 분리하는 데 사실 큰 의미는 없다. 오너 CEO에 대해 이사회가 인사권을 행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두 지위의 분리는 큰 이점도 없이 회사 운영 상의 비용만 발생시키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지위의 분리에는 적지않은 의미를 부여해야 할 것이다. 올해 주총시즌부터 이 제도를 도입하는 회사들의 기업지배구조개선 의지와는 무관하게 제도라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 그 자체 동력을 가지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이 바뀌고 자본시장의 제반 환경도 변하게 된다. 현재의 지배구조가 미래에는 다른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제도 자체를 개선해 두면 미래의 어떤 시점에서 제도가 본래의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두 지위를 분리하는 경우 CEO나 이사회 의장 공히 그 자리에서 각자 독립적인 무게를 가진 인물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너 이사회 의장과 독자적인 존재감 없는 CEO는 사실상 분리하지 않은 것과 같고 오너 CEO와 ‘의전용' 이사회 의장도 사실상 분리하지 않은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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