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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의 글로벌 오토게임]윌리엄 듀런트와 알프레드 슬론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19-06-24 10:02:00

이 기사는 2019년 06월 17일 10:00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알프레드 슬론(Alfred Sloan, 1975~1966)은 세계사에서 가장 잘 알려진 전문경영인 모델이다. 23년간 제너럴 모터스(GM)의 CEO였고 후반 9년간은 이사회 의장을 겸했다. 슬론은 가족경영 기업 안에서의 전문경영인이 아니라 그야말로 전문경영인 회장이었다. 슬론이 그런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GM이 소유가 분산된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GM의 창업자 듀런트(William C. Durant, 1861~1947)는 19세기 말 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마차제작회사를 일군 사람이다. 1904년에 경영난을 겪고 있던 뷰익(Buick)을 인수해서 자동차업에 진출했다. 금방 포드, 캐딜락, 올스모빌을 추월했고 1907년에 GM을 출범시켰다.

듀런트는 회사를 키우기 위해 자신의 위치에는 별로 개의치 않았던 사람이다. GM이 가족기업이 되지 않은 이유다. 은행에서 사업자금을 빌리고 외부에서 투자자를 유치했다. 그리고 M&A를 통해 회사를 성장시켰다. 1909년에 캐딜락과 올스모빌, 폰티악, 그리고 다수의 부품제조사를 인수해서 GM에 통합시켰다. 포드를 인수하려고도 했다. 과도한 M&A의 후유증으로 1910년에 회사가 어려워지자 회사에서 축출되었다가 몇 년 후 복귀해서 1920년까지 회사를 이끈다. 1921년에 개인 자동차회사(Durant Motors)를 세웠는데 성공적이지 못했고 대공황의 여파로 도산했다.

슬론은 듀런트를 "창조적이지만 관리를 못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예컨대 듀런트는 자신이 M&A로 열심히 사들이는 회사의 제품군이 기존 제품군과 중복되는 문제에 둔감했다. 포드는 Model T가 궁극적인 자동차 모델이라고 생각한 반면 듀런트는 미래의 소비자들이 어떤 모델을 선호할지 알 수 없고 그에 필요한 기술은 가급적 다양한 모델을 통해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M&A를 일종의 보험으로 보았다. 여기서 시너지 보다는 조직상의 비용이 증가했다. 결국 나중에 그 때문에 고전했던 것이다.

역사가들은 일이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듀런트가 기술에 그다지 밝지 못했다는 데 있다고 본다. 그 때문에 M&A 과정에서 고급 인재들도 많이 잃었다. 시장 동향에도 둔감했다. 투자자들이 있는 주식시장에는 민감했으나 정작 고객들이 있는 자동차 시장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슬론은 1875년에 예일대학교가 있는 뉴헤이븐에서 출생했고 17세인 1892년에 MIT를 졸업했다. 더 일찍 졸업할 수도 있었는데 MIT는 슬론이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입학 허가를 몇 년 보류했었다고 한다. 이제 MIT 경영대학원 이름은 Sloan School of Management다.

슬론은 졸업 후 작은 베어링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24세에 그 회사 사장이 되었다. 하얏트 롤러베어링회사다. 자동차 회사들 중에서는 올스모빌이 첫 고객이었다. 1916년에 이 회사는 다른 자동차 부품회사들과 합병해서 United Motors Corporation이 되었다. 2년 후인 1918년 이 회사를 GM의 일부로 편입시키면서 슬론은 GM의 중역이 되었고 1923년에는 듀퐁(Pierre du Pont)의 뒤를 이어 GM의 CEO에 취임, 무려 23년간 회사를 이끈다. 지분은 없지만 ‘오너' 역할을 한 것이다.

사실 슬론은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기업들은 거대화 되었다. 사주들은 감당할 수 없을만큼 엄청난 부를 축적했고 하루하루 회사를 경영하고 관리하는 따분한 일보다는 더 재미있는 일들을 찾아 인생을 살았다. 슬론처럼 그들을 대신해 회사를 맡을 사람들이 필요했다. 이렇다 할 사주가 없는 회사들은 더 그랬다. 이른바 전문경영인의 시대가 도래했던 것이다. 뉴욕 맨해튼의 마천루는 회사 경영에 필요한 경영자와 관리인력을 좁은 공간에 차곡차곡 쌓아 넣기 위해 지어진 것이다. 대학들은 경영대학을 속속 개교해서 ‘남의 회사'를 맡아줄 인재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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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론은 경영학 교과서에 기록된 여러 가지 혁신을 남긴 사람이다. 포드가 모든 일을 중앙집권화 해서 처리하려 했던 것과 달리 오늘날 사업부제의 원형이 된 분산화 조직을 도입했다. 분산화된 조직은 아무리 거대해져도 효과적으로 관리된다. CEO의 능력과 개성에 크게 좌우되는 포드형 조직에 비해 객관적인 원칙에 의해 운영될 수 있다. 최초로 어셈블리라인을 공장에 도입해 생산을 효율화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포드의 관리조직은 비효율 때문에 재무, 회계, 세무 같은 방면에서 엄청난 비용을 초래했다.

자동차 측면에서는 슬론은 쉐보레, 폰티악, 올스모빌, 뷰익, 캐딜락을 서로 경쟁하지 않는 가격대로 펼치고 고객들이 나이와 구매력이 늘어감에 따라 순차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GM가족' 개념을 창안했다. 이 전략이 GM이 1920년대에 포드를 추월해서 그 후 거의 70년 동안 왕좌를 지키는 동력이 되었다. GM은 슬론의 경영 하에 자동차 회사로서뿐 아니라 세계 최대의 기업이 되었다. 헨리 포드 2세는 GM과 경쟁하는 것이 마치 코끼리를 쓰러뜨리려는 것과 같다고까지 했다.

슬론이 쓴 회고록 ‘My Years With General Motors'는 기업경영에 관해 씌여진 책들 중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피터 드러커는 이 책이 재미있다고 뉴욕타임스에 서평을 썼는데 슬론은 재미있으라고 쓴 책이 아니라며 드러커에게 못마땅해했다고 한다. 전문경영인의 개념을 확립하고 그 역할을 정립하기 위해 썼다는 것이다. 슬론은 이 책을 1956년 은퇴할 무렵에 거의 완성했지만 당시 법무부와 벌이고 있던 독점금지 소송에서 회사에 불리하게 활용될까 봐 GM의 변호사들이 출판을 만류했고 타계 2년 전인 1964년에야 빛을 보았다.

슬론은 자녀가 없었다. 이렇다 할 취미도 없었다. 회사를 경영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였다. 만년에는 청력이 떨어져 보청기에 의존했는데 당시의 보청기는 대형 밧데리가 착용자의 가슴 앞쪽으로 매달려 있고 귀에는 깔때기를 꽂는 모양이었다. 말을 할 때는 스위치를 꺼야 했는데 확성기가 부착되어있었다. 그래서 슬론이 말을 시작하면 마치 최후의 심판 날 천둥소리 같은 것이 났다고 한다. 그러면 회의실 안의 모두가 말을 멈추고 주목했다. 그러나 슬론은 모든 사람들이 발언을 끝낸 후에만 스위치를 켰다. 드러커는 슬론의 보청기가 역사상 완벽한 경영수단이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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