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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을 움직이는 사람들]이태희가 꿈꾼 고객맞춤형 로펌 '한미'로 태동①고광하·유경희 초석 다져…합병후 1세대 전원 빈손 퇴임

최익환 기자공개 2019-07-04 08:26:58

[편집자주]

1977년 한미로 출발한 법무법인 광장은 합병을 거쳐 국내 대표적인 대형 로펌으로 성장했다. 설립 초기부터 송무의 중요성을 인지하면서도 기업자문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워온 것이 광장의 전략이었다. 1세대들의 퇴진 이후에도 탄탄한 조직력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더벨은 옛 한미와 현 광장의 기업자문그룹 변호사들을 세대별로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19년 07월 03일 14:1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977년 겨울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 한진빌딩 16층. 국내 최대 로펌 중 한 곳인 법무법인 광장이 이곳에서 출발했다. 설립자 이태희 변호사는 하버드대학교에서 법학박사(J.D.)를 취득한 뒤 국내로 돌아와 장인인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의 회사가 있던 건물에 사무소를 차렸다. 이 변호사는 설립 당시 조 회장의 사업을 법률적으로 보좌하며 기업자문을 주요 업무로 삼았다.

당시 이 변호사가 내세운 목표는 '고객 맞춤형 로펌'이었다. 이제 광장은 △기업자문 △금융 △조세 △공정거래 △노동 △지적재산권(IP) △송무 등 7개 그룹·총 40여개 분야의 전문가가 포진한 종합 로펌으로 성장했다. M&A(인수합병) 팀을 포함한 150여명의 기업자문그룹은 국내외 시장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고, 130여명의 각 분야 전문팀이 담당해온 송무 분야 역시 국내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한진그룹 등 대기업 자문…이태희-고광하 변호사 합심 'Lee&Ko'로 출발
이태희 변호사
이태희 변호사의 모습(제공=법무법인 광장)

1940년 부산에서 태어난 이태희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뒤 14회 고등고시(사법과)에 합격했다. 이후 서울중앙지법의 모태가 된 서울민사지법과 서울형사지법에서 판사로 재직했다. 그러던 중 1968년한진그룹 조중훈 회장의 맏딸인 조현숙 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후 아내와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하버드대학교에서 1년만에 법학석사(LLM)를 취득한 이 변호사는 법학박사(JD)를 꿈꿨다. 그러나 법원은 이 변호사의 학구열을 받아주지 않았고, 결국 당시 판사직에서 사직해야했다.

우여곡절 끝에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 변호사는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로펌에서 4년간 재직한 뒤 1976년 귀국했다. 이듬해 겨울에는 한진빌딩에 터를 잡고 ‘변호사 이태희 법률사무소'를 개소했다. 법무법인 한미의 모태이자 추후 광장과 합병한 새 법인의 출발점이었다.

설립 직후부터 이 변호사는 기업자문을 주된 업무로 삼았다. 한진그룹을 포함해 △한국전력 △포항제철 △한국은행 △외환은행 등 대기업들의 사건을 도맡아 처리한 것은 물론이고, 고객들에게 각종 계약과 경영상의 법률자문도 수시로 제공했다. 점점 그에게 자문을 맡기는 기업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사세는 날이 갈수록 확장하기에 이르렀다.

특히나 1년의 절반을 해외에서 보내며 외국 로펌과의 친분관계를 쌓을 정도로 이 변호사의 글로벌 행보는 시대를 앞서갔다. 외국 로펌과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당시 증가하고 있던 외국계 기업들의 한국 진출 업무를 중심으로 자문영역을 대폭 확대해나갔다.

이때 이 변호사와 손을 잡은 건 2살 후배이자 보험·해상업무에서 이름을 날리던 고광하 변호사(고등고시 15회)였다. 이 변호사는 자신과 고 변호사의 성을 차용해 ‘Lee&Ko'라는 영문 이름을 붙였다. 한글 명칭은 ‘한미'(韓美)로 당시 한국과 미국 사이의 법률적 이슈가 많던 것에 착안했다. 영문명칭 Lee&Ko는 고 변호사가 일신상의 이유로 독립한 뒤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판사 출신 유경희 변호사 합류 …자문·송무 성장세 본격화

유경희 변호사
유경희 변호사.(제공=법무법인 광장)
고 변호사가 떠난 뒤 한미에 새로 합류한 인물은 유경희 변호사다. 사법고시 2회 출신인 유 변호사는 서울민사형사지방법원과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쳐 전주지방법원과 서울가정법원의 부장판사로 공직생활을 끝마쳤다.

유 변호사는 사실 김·장 법률사무소의 설립자인 김영무·장수길 변호사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기이다. 친형인 유경현 전 국회의원은 이태희 변호사와 대학동기로, 부장판사를 재직하던 유 변호사에게 직접 한미 행을 제안했다고 전해진다. 법률시장에서 초창기 로펌이 태동하던 시기에 유 변호사는 도전을 택했다.

그의 합류로 한미는 송무를 강화하며 종합로펌의 면모를 갖췄다. 당시 경쟁관계에 있던 1세대 로펌들이 기업자문에 초점을 맞추고 있던 시기에 한미의 송무부문 리더를 맡아 송무를 본격적인 법률 비즈니스의 영역으로 만들었다. 그간 한미가 특수관계에 있던 한진그룹 및 대기업과 관련한 해사법과 금융업무에 관련한 송무가 주된 영역이었다.

이때 한미는 2세대 변호사들을 받아들여 △기업자문 △금융 △송무 △지적재산권 △보험 등 5대 전문분야별 그룹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각각의 전문팀에 속한 변호사들은 기업자문을 주로 수행하며 때때로 이에 관련된 송무에도 참여했다. 1호 어쏘시에이트(Associate: 소속 변호사)인 이문성 변호사와 검사 출신의 방현 변호사는 이태희 변호사를 도와 기업자문을 수행했고, 윤용석 변호사는 해상과 보험업무의 전문팀을 이끌기 시작했다. 김수창 변호사는 금융·증권·파이낸스팀을 이끌었고 지적재산권(IP) 팀은 김재훈 변호사가 이끌었다. 전문팀 체제의 시작이었다.

분야별 전문팀 제도를 도입하고 송무를 강화하기 시작한 한미는 설립자 이 변호사가 내세운 목표인 '고객맞춤형 로펌'이라는 목표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었다. 전문팀 제도가 자리잡기 시작한 1990년 50억원의 매출을 내던 한미는 추후 옛 광장과의 합병 이전까지 매출 500억원을 달성했다. 송무가 강력했던 옛 광장과의 합병 이후 매출 성장세는 더욱 가팔라졌다.

안용석 대표변호사는 "유경희 변호사의 합류와 전문팀 구축으로 한미가 고객들에게 자문과 송무 두 영역에서 종합적인 서비스를 할 수 있는 로펌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며 "옛 광장과 합병을 진행한 뒤 1세대 변호사들이 모두 퇴임한 이후에도 자문과 송무를 두 축으로 한 성장이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 "한국 최고의 로펌으로 키워달라" 말 남겨…운영위원회 중심 경영체제 확립

현재 이 변호사를 포함한 한미 출신의 광장 1세대 변호사들은 모두 현업에서 물러나있다. 설립자로 영문 명칭에 이름을 올린 고 변호사는 80년대 초 일신상의 이유로 독립한지 오래고, 성장기를 이끌었던 유 변호사 역시 고문변호사를 끝으로 광장에서의 모든 직위를 내려놓았다.

2001년 한미와 합병한 옛 광장 출신의 1세대 변호사들 역시 현업에서 모두 물러났다. 합병 당시 대표를 맡고 있던 박우동 변호사는 각각 고문변호사 직을 마지막으로 광장에서 물러났다. 그는 이태희 변호사 등과 함께 이따금씩 광장의 설립기념 행사에 얼굴을 비추고 있다. 당시 옛 광장의 공동대표였던 권광중 변호사만이 지금도 사무실에 남아 현업과 후진양성에 힘을 쏟고있는 정도다.

퇴임한 1세대 설립자들은 모두 광장에 지분을 남기지 않았다. 특히 2009년 퇴임한 이 변호사는 자신이 가졌던 모든 지분을 후배들에게 나눠준 뒤 더 이상 경영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때 후배들에게 "광장을 한국 최고의 로펌으로 키워달라"며 물러났다.

윤용석 김재훈
(왼쪽부터) 윤용석·김재훈 변호사(제공=법무법인 광장)
1세대 변호사들의 뒤는 그들과 함께 로펌을 일궜던 어쏘시에트 변호사들이 이어갔다. 한미와 광장의 합병 과정에서 실무 담당한 윤용석 변호사는 어쏘변호사로는 처음으로 경영총괄대표에 오른 케이스다. 뒤이어 대표가 된 김재훈 대표는 광장의 지적재산권(IP)팀을 만들고 국내 최고 수준의 지식재산권 팀으로 성장시켰다. 어쏘시에이트 변호사로 입사해 대표변호사가 된 두번째 케이스로 광장의 전문화를 이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준 설립자 이 변호사의 근황은 유달리 눈에 띈다. 아내와 함께 해외여행을 다니며 ‘제2의 인생'을 즐기고 있다는 그는 설립자 예우 차원에서 논의된 경제적 지원을 뿌리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대한변호사협회에서 변호사 등록까지 말소하며 돌아갈 수 있는 다리를 모두 끊었다. 후배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파격적인 행보였다.

퇴임 이전부터 시스템에 의한 로펌 경영을 강조해온 이 변호사는 1999년 운영위원회를 도입하기도 했다. 파트너십과 유학제도, 그리고 운영위원회를 통해 후진 양성을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2009년 설립자가 떠난 광장은 운영위원회 제도를 통한 의사결정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특히 선배 변호사들의 입김이 경영에 영향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해 운영위원회 정년을 60세로 정한 사실이 이채롭다. 조직의 미래와 성장을 고려한 규정이라는 게 광장 측의 설명이다.

운영위원회
법무법인 광장 운영위원회 구성원(제공=법무법인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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