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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을 움직이는 사람들]외환위기 M&A 자문 급성장…합병으로 라인업 확장②이문성·이규하 등 주축…박우동·한승헌 합류

최익환 기자공개 2019-07-05 08:49:36

[편집자주]

1977년 한미로 출발한 법무법인 광장은 합병을 거쳐 국내 대표적인 대형 로펌으로 성장했다. 설립 초기부터 송무의 중요성을 인지하면서도 기업자문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워온 것이 광장의 전략이었다. 1세대들의 퇴진 이후에도 탄탄한 조직력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더벨은 옛 한미와 현 광장의 기업자문그룹 변호사들을 세대별로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19년 07월 04일 07: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997년 금융시장을 덮친 외환위기는 기업자문에 강점을 보여온 광장의 전신 한미에게도 변곡점이었다. 당장 기업들의 구조조정 관련 업무와 외국계 기업의 한국 투자 업무를 맡았다. 밀려드는 자문 요청에 로펌들이 호황을 누리던 시기, 한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외환위기의 상흔이 아직 남아있던 2001년 한미는 옛 광장과의 합병을 통해 현재의 모습으로 재탄생 했다. 이를 통해 대법관을 지낸 박우동 변호사를 포함해 한승헌·서정우 등 송무에서 높은 승률을 자랑했던 시니어들이 합류했다. 송무가 명실상부한 광장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밤낮없이 일했던 외환위기 시절…국내 최초 타이틀 잇따라

광장의 2세대 주축을 이루는 변호사들은 현재 M&A팀 모태가 되는 옛 한미의 JV(조인트벤처)팀 출신이다. 1980년대부터 M&A 자문과 외국인 투자유치 업무를 수행한 2세대 변호사들은 1990년대가 되자 본격적으로 전면에 나섰다. 고도성장기 이후 신사업을 해외에서 찾는 국내 대기업과 한국 진출을 노리는 해외 투자자들이 한미 JV팀을 찾았다.

1997년 찾아온 IMF 외환위기는 이들 변호사들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애타게 자본유치를 원하던 국내 기업을 인수하려는 해외 투자자들이 국내 법무법인을 찾던 시기다. 당시 한미는 대우자동차 인수를 추진하던 미국 포드(Ford) 측 인수자문을 맡았고, LG그룹의 엘리베이터 사업과 에어컨 사업 매각 등에서도 자문을 맡았다.

1998년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의 합병과 이듬해 있었던 제일은행의 M&A도 한미 JV팀의 작품이다. 이문성 변호사는 추후 3세대로 분류될 김상곤·이형근 변호사와 함께 두 거래를 연거푸 성사시켰다. 두 거래는 각각 국내 최초 은행 간 대등합병과 해외 매각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당연히 모든 실무와 작업이 처음이나 다름없었고 밤을 새는 일이 허다했다.

거래에 참여했던 김상곤 변호사는 "제일은행 매각 당시에는 월요일 아침에 집에서 일주일치 셔츠와 속옷·양말을 챙겨나오는 것이 일이었다"며 "그만큼 일이 많았고 정신없었지만 2세대 선배들과 밤을 새는 일이 싫지만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이후 한미 JV팀은 IMF 외환위기를 거친 뒤 M&A 그룹으로 재편됐다. 1·2팀으로 나뉘어졌던 편제도 2001년 기업자문그룹 내 M&A팀으로 통합됐다. 현재는 150여명에 육박하는 변호사들이 M&A 전문가로 광장에 소속돼 있다.

◇ '1호 어쏘 변호사' 이문성부터 2세대 막내 안용석, 성장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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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문성·방현·이규화·안용석 변호사(제공=법무법인 광장)

이 시기 자문업무 주역으로 나섰던 2세대 변호사들은 1990년대 초중반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던 인물이다. 이들은 1980년대 한미의 설립 초기에 합류한 어쏘시에트 변호사 출신이다. 1호 어쏘시에이트인 이문성 변호사를 시작으로 방현·이규화 변호사를 포함해 현재 대표변호사를 맡고있는 안용석 변호사 까지가 2세대로 분류된다.

이문성 변호사는 한미합동법률사무소의 1호 어쏘시에이트 변호사로, 제16회 행정고시와 제18회 사법고시까지 합격한 고시 2관왕 출신이기도 하다. 1982년 한미에 합류한 뒤로는 △뉴브리지캐피탈의 제일은행 인수 △LG와 필립스의 LCD 합작 △북한 경수로 사업 등 굵직한 딜을 주도했다. 특히 2006년부터는 ‘봉사하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광장의 파트너직을 그만둔 뒤 제주지방법원의 판사로 8년간 재직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방현 변호사 역시 비슷한 시기에 한미에 합류한 케이스다. 서울대 법대에서 조세법을 전공한 그는 검찰을 나온 뒤 한미에서 기업자문과 조세분야 전문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미시간주립대 로스쿨에서 법학석사를 취득하고 모리슨&포스터에서 연수를 마쳤다. 주요 거래로는 진로그룹의 구조조정과 포스코의 해외진출 등이 있다.

이규화 변호사는 기업자문의 이론과 실무를 모두 겸비한 인물로 정평이 나있다. 1983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미국 유학길에 올라 조지워싱턴대 로스쿨 석사와 튤레인대 법학박사를 취득했다. 이후 1991년부터는 한미에서 본격적인 변호사 업무를 시작했다. 이후 LG그룹과 한화그룹의 구조조정 거래와 포드의 대우자동차 인수 시도 등을 주도했다. 2000년대에는 하이마트 매각자문과 부실저축은행 정리작업을 이끌었다.

2세대의 막내로 분류되는 안용석 변호사는 1989년 한미에 합류한 이래로 굵직한 국경간(Cross-border) M&A에 참여했다. 사실 그는 공정거래 관련 사건대리로도 유명하다. 2014년엔 삼성전자가 애플을 상대로 낸 특허침해소송이 공정거래법 위반이 아니라는 공정거래위원회 판정을 받아내는 등 대형 사건도 그의 손을 거쳤다. 대한항공과 델타의 조인트벤처(JV) 설립 역시 그가 주도했다. 2010년부터 운영위원회에 진입한 안 변호사는 2018년부터 광장의 경영대표를 맡고 있다.

◇박우동 변호사 등 옛 광장 '송무 드림팀'과 합쳐져 완전체로 거듭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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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박우동·한승헌·서정우·김병재 변호사 (제공=법무법인 광장)

기업자문 분야에서 옛 한미의 2세대 변호사들이 존재감을 발휘했다면 현재의 광장을 만든 가장 큰 변곡점은 2001년에 있었던 한미와 옛 광장의 대등합병이다. 기업자문을 중심으로 송무분야 1위를 노리던 한미는 박우동 전 대법관이 이끌던 광장과의 합병을 추진하기에 이른다. 양측은 2001년 2월 합병을 전격 발표하고 국문명칭은 광장으로, 영문명칭은 한미의 'Lee&Ko'로 정했다. 국내 첫 로펌간 대등합병으로 주목을 받은 광장은 로펌 합병의 성공사례로 평가받는다.

합병 다음해인 2002년부터는 옛 광장과 한미의 송무 건수를 단순 합산한 것 보다 50%가 넘는 사건이 광장의 손을 거치기 시작했다. 자문으로 시작한 업무가 송사로 이어질 경우 고객들이 송무가 강한 다른 로펌을 찾아가는 일이 줄어들며 생긴 시너지였다. 합병 이후 자문분야와 송무분야 변호사들이 짝을 지으며 업무능력 역시 배가되기 시작했다. 당장 옛 광장 출신의 송무 드림팀이 합병 법인의 명성을 이어갔다.

시너지의 중심에는 옛 광장의 대표였던 박우동 변호사와 ‘송무의 신'으로 불리던 서정우 변호사가 있었다.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던 두 변호사는 송무분야에서 후진양성에도 힘쓰며 분야별 드림팀을 일궈놓은 터였다. 두 변호사는 이태희 변호사 등 한미의 경영진과 밤샘 협상을 지속하며 합병법인의 기틀을 마련했고, 후배들보다 앞서 강북의 한미 사무실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대법관을 역임한 박우동 변호사는 동서법률사무소에 합류하기 전까지 정통 판사의 길을 걸었다. 1993년엔 사법부 재산공개 파동에 이은 당시 윤관 대법원장의 사임으로, 후배가 대법원장에 오르자 대법관 자리에서 내려왔다. 이후 동서법률사무소에 합류한 뒤 광장을 재창업했다. 이때 당대 최고의 송무 변호사들이 광장에 합류한 것은 그의 명망 때문이었다.

박우동 변호사의 동기 한승헌 변호사의 역할도 눈에 띈다. 박 변호사는 군사정권 시기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고초를 겪었던 한 변호사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감사원장을 지낸 한승헌 변호사를 1999년 광장으로 영입했다. 한 변호사는 광장에 영입되자마자 '정도(正道)'를 강조했고, 합병 이후에도 정도경영이 광장의 모토로 확립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이후 광장에서 모든 직위를 내려놓은 한 변호사는 현재 전북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중이다.

부친도 변호사였던 서정우 변호사는 박우동 변호사와 옛 광장을 함께 이끌었다. 서 변호사는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과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법복을 벗은 뒤 광장에 합류해 송무 전문 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삼풍백화점 사고 △한보비리사건 △성수대교 붕괴사고 등에서 변호인으로 활약했다. 정치자금 사건에 연루된 2000년대 이후엔 고문변호사로 물러났다.

합병 당시 대표변호사를 맡았던 김병재 변호사는 2005년 법무법인 광장의 대표에 오른 뒤, 6년간 경영 관련 업무를 맡았다. 그는 대표 재임기간 동안 제일국제특허사무소를 인수해 특허법인 광장리앤고를 출범시키는 등 외연확장에도 신경썼다. 판사 출신인 그는 현업에서도 △현대건설의 대북송금사건 △동부·동아그룹의 전직대통령비자금관련사건 등을 맡아 소송을 승리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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