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9(월)

people & opinion

[김화진칼럼]돈에도 캐릭터가 있어야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19-11-04 10:09:50

이 기사는 2019년 11월 04일 10:00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10년 4월 멕시코만에서 작업하던 BP의 석유시추시설 딥워터 호라이즌(Deepwater Horizon)이 폭발했다. 사상 최악의 원유유출사건이 발생했다. 약 5개월 동안 거의 8억 리터가 유출되었는데 위성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멕시코만 거의 전역이 오염되었다. 작업 중이던 11인이 실종되는 인명사고도 났다. 해양오염 제거 비용을 포함해서 BP는 약 650억 달러를 써야 했다. 그중 벌금이 187억 달러다.

사고 원인 중 하나가 작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안전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것이다. 비용을 줄이려다 인명 손실을 포함한 천문학적인 손해를 발생시켰다. 결과는 BP 주가 하락에 그치지 않는다. 일대의 수산업과 관광업을 포함해서 경제생태계 전부가 큰 피해를 입었다.

사실 작업장에 안전표지판 하나 설치하는 데도 돈이 든다. 그러나 인명을 위험하게까지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할까. 사실 대다수의 위험 상황은 그냥 아무 일 없이 종결되는데 그 때문에 작업을 중단하거나 비용을 썼다면 나중에 아까운 것이다. 현장 책임자들은 그런 유혹에 약하다. 이 문제는 경영진에서 확실한 방침을 정해주어야 해결된다.

그런데 경영진이 실적 압력 때문에 안전을 소홀히 하는 경우는 누가 통제할 수 있을까. 전주, 즉, 투자자들이다. 투자자들이 열쇠를 쥐고 있다. 투자자들이 수익 희생해도 좋으니 안전에 소홀하지 말라고 확실한 시그널을 주면 경영자들도 당연히 그를 감안한다. 누군들 사람 다치게 하면서 돈 벌고 싶을까.

clip20191031105211
군소 투자자들은 그런 목소리를 낼 기회도 없고 전달도 되지 않을 뿐 아니라 힘도 크지 않기 때문에 대형 기관투자자들이 그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 예컨대 어떤 글로벌 기관투자자에는 투자대상 기업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24시간 내에 그룹 최고위층까지 보고가 되고 이사회에도 정보가 공유되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사고가 하청, 재하청 업체에서 발생했어도 마찬가지다. 법률적 책임이 누구에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런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고 작동한다는 것을 투자대상 회사 경영진이 아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진다. 자기 자리와 보수를 좌지우지하는 큰 손이 회사에서 발생하는 사고와 그 수습, 그리고 방지 조치에 그 정도의 비중을 두고 있는데 변하지 않을 경영자는 없다.

착한 자본(Good Capital)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지 오래다. 자본의 정체성과 '행동'에 대한 윤리적, 규범적 평가가 거론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최근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기업경영과 투자의 새로운 지표로 자리 잡은 것과 궤를 같이한다. 기업들이 아무리 ESG를 의식해도 투자자들이 무관심하면 실효성이 없다. 그래서 블랙록을 포함한 대형 글로벌 기관들이 앞장서고 있다.

어떤 자본이 착한 자본일까. 법률이 주주에게 특정한 방향성이 내포된 행동을 요구할 수는 있는가. 예컨대 법률이 주주에게 장기적 관점에 의한 투자자로 머물 것을 요구할 수 있는가. ESG를 구현할 책임을 다하는 방향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것을 요구할 수 있는가. 다른 이해관계자를 배려할 것을 요구할 수 있는가. 회사가 동반성장이나 공정거래 이념을 준수하도록 주주권을 행사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가. 사모펀드나 헤지펀드가 구조조정을 자제할 것을 요구할 수 있는가. 주주가 이러한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그 주주에게 제재를 가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은 지금까지는 부정적이었다. 주주는 권리만 있고 의무는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만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서 기업가치를 높여야 할 윤리적 의무 정도가 논의되었고 그렇게 하는 주주는 착한 주주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주주의 정체성이나 주주권 행사에 대한 규범적 평가나 요구가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주주, 투자자, 자본의 정체성이나 성향에 관한 이념적 요구는 가능할까. 국민연금에게 환경친화적 기업이나 환경산업, 재생에너지사업에 투자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가. 즉 국민연금은 생래적으로 착한 자본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이런 종류의 이념적 요구에 부응하지 않는 자본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나 정부의 불이익 처분, 자본시장에서의 사실상의 차별대우, 법관의 심증에서 발생하는 사법적 홀대가 정당화 될까.

최근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패러다임 변화는 이런 문제들을 새로 제기하고 있고 기업과 투자실무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 이는 결국 법률과 제도의 변화로까지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ESG가 향후 더 확산되면 일정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것이고 그로부터 생성되는 규범에 따라서는 자본의 행동에 더 큰 제약이 발생할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처럼 글로벌 자본이 이 프로세스를 주도해주면 가장 바람직하다.

돈에도 캐릭터가 있어야 한다. 돈 가진 큰 손 투자자가 바뀌면 투자대상 회사의 문화가 바뀌고 사회가 바뀐다. 그렇게 바뀐 사회에서는 착한 자본이 돈을 더 많이 번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더벨 서비스 문의

02-724-4104

유료 서비스 안내
(주)더벨
주소서울특별시 중구 무교로 6 (을지로 1가) 금세기빌딩 5층대표/발행인성화용편집인이진우등록번호서울아00483등록년월일2007.12.27 / 제호 : 더벨(thebell)
발행년월일2007.12.30청소년보호관리책임자이현중
문의TEL : 02-724-4100 / FAX : 02-724-4109서비스 문의 및 PC 초기화TEL : 02-724-4103기술 및 장애문의TEL : 02-724-4159

더벨의 모든 기사(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copyright ⓒ thebell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