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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가 리픽싱, 주주가치 '훼손' vs 투자 '유인책' [CB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④기존주주 '지분율 희석' 문제…저신용 성장기업 유동성 공급 통로

이효범 기자공개 2019-12-05 08:09:24

[편집자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관 중심으로 형성된 국내 CB 시장은 헤지펀드의 진입으로 개인들도 간접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주식과 채권의 중간형태인 CB는 밑이 막히고 위가 열린 투자자산으로 한동안 각광받았다. 그러나 최근 라임자산운용 사태가 불거지면서 CB 투자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또 메자닌 시장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들이 제기되면서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벨은 메자닌 중에서도 투자 비중이 높은 CB를 둘러싸고 시장에서 제기되는 문제와 개선방향 등에 대해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19년 11월 27일 16:1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메자닌 발행시 부여되는 전환가 리픽싱 조항은 항상 논란의 대상이다. 메자닌 발행시 투자자에게 부여되는 조건으로 전 세계적으로 전환가 리픽싱이 붙는 경우는 우리나라와 일본을 제외하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전환가 리픽싱이 기존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제도라고 입을 모은다. 이로 인해 코스닥 시장에서 장기투자를 가로막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메자닌 투자자들은 그러나 전환가 리픽싱을 신용등급이 낮지만 성장성이 높은 기업들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인책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환가 리픽싱이 없다면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오히려 유동성 위기에 처할 수 있는 기업이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또 유상증자와 비교하면 오히려 CB 발행이 기존주주 입장에서 나쁘지 않은 선택지라는 주장이다.

◇주가 하락만 반영하는 리픽싱…코스닥 장기 투자 '걸림돌' 지적

국내에서 발행된 메자닌채권은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 리픽싱 조항을 두고 있다. 최근 10년간 발행된 메자닌채권중 발행 이후 리픽싱을 실시한 비율은 64.8%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리픽싱이 이루어진 이후 주가가 계속 하락할 경우 추가로 리픽싱을 하는 경우도 다수라는 게 자본시장연구원의 분석 결과다.

증권의 발행 및 공시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발행사의 주가가 하락하는 경우 CB 전환가액의 70% 한도에서 전환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최초 전환가액의 70% 이하로 리픽싱하는 것도 가능하다. 리픽싱 횟수 제한이 없기 때문에 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면 또 한번 리픽싱을 실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주가가 상승하더라도 전환가 상향 조정은 이뤄지지 않는다.

가령 발행사의 CB 전환가가 1만원으로 책정된 가운데 발행시점의 주가를 1주당 1만원으로 가정해보자. 투자자가 CB에 1만원을 투자했을때 생각해 볼 수 있는 유리한 상황은 주가가 5000원으로 하락해 전환가격이 연이어 리픽싱되고, 이후 주가가 다시 1만 5000원으로 반등하는 경우다.

한번 낮아진 전환가는 다시 상향 조정되지 않기 때문에 전환권을 행사하면 5000원에 주식 2주를 확보할 수 있다. 이후 전환해 받은 주식을 1주당 1만5000원에 매도하면 총 3만원의 현금을 거머쥐게 된다. 원금 1만원을 빼면 2만원이 투자수익인데 수익률만 200%에 달하는 셈이다.

이처럼 투자자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인해 시장에서는 전환가 리픽싱이 기존 주주들의 주주가치를 훼손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CB 투자자의 전환권 행사는 기존 주주 입장에서는 날벼락이다. 전환권 행사시 발행사는 신주를 발행해 투자자에 지급한다. 발행 주식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은 희석된다.

유상증자 역시 신주를 발행하기 때문에 기존주주들의 지분율 희석은 불가피하다. CB에는 전환가 리픽싱 조항이 달려있기 때문에 주가가 하락하는 만큼 CB 투자자의 지분율은 더욱 늘어난다.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 희석이 더욱 심해지는 셈이다. 특히 리픽싱이 계속 이뤄지면 신주 물량이 증가한다는 점에서 경우에 따라서 주가를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발행사 주가가 하락할수록 발행 주식수가 늘어나고 기존 주주 지분율 희석은 심해지는데, 결과적으로 주가 하락 리스크가 기존 주주들에게 전가되는 것"이라며 "이로 인해 코스닥 투자의 위험성만 부각되고 건전한 장기투자자에게는 피해를 주는 부적절한 제도"라고 비판했다.

◇2002년 리픽싱 70% 제한…기존주주, 유상증자 보다 CB 발행 유리

전환가 리픽싱 제도가 주주가치를 훼손한다는 지적에 대해 메자닌 투자자들은 부정적 측면만 부각된 주장이라는 지적이다. 국내에 전환가 리픽싱에 대한 증권의 발행 및 공시에 관한 규정이 도입된 것은 2002년이다. 이 규정이 도입되기에 앞서 전환가 리픽싱이 없었던 건 아니다. 더욱이 당시에는 한번에 리픽싱할 수 있는 범위도 정해지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규정을 도입하면서 리픽싱 범위를 기존 전환가액의 70% 이상으로 제한했다. 당시 이같은 규정을 도입한 건 신용등급이 낮지만 성장성이 높은 기업에게 CB가 유용한 자금조달 수단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조치였다. 이 때문에 전환가 리픽싱 자체를 막기보다 무분별한 리픽싱에 제동을 걸기 위해 규정을 도입했다.

메자닌 전문 운용사 관계자는 "애초에 우리나라는 전환가 리픽싱 제한이 없었는데 2002년부터 전환가격의 70%까지 리픽싱이 가능하도록 조치했다"며 "당시 금융당국은 CB를 유상증자와 성격이 비슷한 자본조달이라고 보고 일반 공모 유상증자에서 발행가격 할인율을 30%까지 적용하는 규정을 준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유상증자와 마찬가지로 30% 수준의 리픽싱에 무리가 없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입장에서 CB는 유상증자에 비해서 상당히 유용한 자금조달 수단이다. 유상증자 소식이 주식시장에 퍼지면 당장 지분율 희석 가능성을 우려한 매물이 쏟아져 주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CB를 발행하면 최소 1년 이상 주식으로 전환할 수 없기 때문에 유상증자에 비해서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또 CB 발행사는 대부분 신용등급이 낮아 은행 대출이 막히거나 고금리에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대신 CB를 발행하면 최저 0%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에 조달비용을 낮출 수 있다. 기존 주주 입장에서도 투자기업이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는 것보다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하는 게 기업가치 측면에도 긍정적이다. 또 조달한 자금을 활용한 발행사의 매출증대, 나아가 주가 상승도 기대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사실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이 주로 CB를 발행하다보니 국내 시장은 투자자들이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다"며 "전환가 리픽싱이 없다면 아무래도 지금처럼 코스닥 기업에 대한 투자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확실히 투자자에게 유리한 조건은 맞지만 성장성이 높은 기업에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전환가 리픽싱이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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