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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금융그룹을 움직이는 사람들]파생상품 베테랑 엄준흠, '신뢰'로 승부하다⑥신요환 대표와 '호흡 척척'.."은행과 경쟁해야"

허인혜 기자공개 2019-12-05 13:02:02

[편집자주]

신영금융그룹은 신영증권이 중심이다. 신영증권은 지난 2016년 환갑을 넘긴 한국 증시와 함께 성장한 3대 장수 증권사 중 하나다. 무리한 사세 확장보다는 보수적 성장을 추구했고 오너와 전문 경영인의 장점을 결합시켜 내실있는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안정 속에서도 변화를 추구하는 신영금융그룹은 최근 강력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부동산신탁업 예비인가까지 획득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신즉근영(信則根榮)' 철학아래 신영금융그룹의 조용한 성장을 이끌고 있는 핵심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봤다.

이 기사는 2019년 11월 28일 08: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엄준흠
엄준흠 신영증권 부사장.
'증권가 보수경영의 아이콘' 신영증권에서 파생상품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신영증권다운 파생상품은 수익과 더불어 고객과의 신뢰를 절대적으로 지키는 상품이어야 했다.

엄준흠 신영증권 부사장(사진)은 '은행 같은 증권사'라는 기조 아래 파생상품도 '믿을만 하다'는 이미지를 심는 데 성공했다. 그 배경에는 파생상품 투자도 기초공사가 중요하다는 그만의 신중론과 파생상품 뚝심 15년의 세월이 힘이 됐다. 오랜 기간 신영맨으로, 파생상품 전문가로 자리를 지키며 '신즉근영(信卽根榮)'을 금과옥조로 삼은 덕이다.

◇'사원 신화' 예비 후보…신요환 대표와 '이인삼각'

엄 부사장은 신영증권 대표이사 후보군으로 언급되는 인물 중 가장 젊다. 2005년 부서의 수장이 된 이후 인사철마다 승진의 계단을 차근히 밟아온 덕이다. 신영증권의 고위 임원은 엄 부사장을 두고 '나이를 따질 필요 없이 뛰어난' 사람이라 평했다.

1965년에 태어나 서강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가 신영증권 부장 자리에 오른 해가 2005년, 갓 사십 줄에 접어든 때다. 3년 뒤인 2008년 이사에 올랐다. 2010년 상무로 다시 한번 직함을 바꿔 단 그는 2011년 파생상품본부 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3년 전무가 됐고, 2015년 부사장으로 뛰어 올랐다. 2015년부터 부사장 겸 세일즈앤트레이딩(Sales&Trading)부문장을 담당했다. 선배 임원들의 전철을 차근하면서도 빠르게 밟으며 차기, 차차기 '사원 신화'로 꼽힌다.

파생상품 영역에서는 늘 신요환 대표와 족적을 함께 했다. 그가 구조화상품(Structured Products)의 부장을 맡은 이듬해 신 대표가 같은 팀의 상무로 승진했다. 2008년 신 대표가 파생상품본부 본부장으로 일한 뒤 2011년 엄 부사장도 파생상품본부 본부장이 됐다. 2011년 신 대표가 리테일 영업과 멀티채널 영역으로 떠나기 전까지 신 대표의 뒤를 똑같이 따른 셈이다.

엄 부사장은 신 대표의 뒤를 따라 묵묵히 신영증권의 전설을 만들어 냈다. 신 대표와 함께하던 시절 신영증권의 첫 주가연계증권(ELS)을 발행했고 신 대표가 자랑으로 꼽은 '1000호 ELS' 출범 시기에도 그와 함께 했다. 2005년 파생상품 후발주자로 뒤늦은 출발을 했던 신영증권의 파생상품 부문은 출범 15년만에 수익으로 신영증권의 48년 흑자행진을 뒷받침하는 중이다.

◇최우선가치 '신중'…"은행 같은 증권사"

2000년대 초, 엄 부사장은 일찌감치 '증권사도 은행과 경쟁해야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증권사와 은행, 자산운용사의 업무 영역이 크게 넓어진 요즘과 달리 2000년대 초반은 투자업계가 각자의 영역에서 고군분투하던 때 였다. 고성장이 이어지던 2000년대 초반 국내 증권사들은 증권사끼리의 경쟁가도로 뜨거웠다. 그런 상황에서 안정을 최우선무기로 여기던 은행과 어깨를 견줘야한다는 엄 부사장의 통찰력은 신중함에서 비롯됐다.

엄 부사장은 '증권사도 은행과 경쟁해야 한다'면서도 그 길은 첩첩산중이라 했다. 신뢰를 추구하는 신영증권에서 위험도가 높은 상품인 장외파생상품을 취급하는 일은 여타의 업무보다 배로 어려웠을 터다. 신영증권이 엄 부사장을 구조화상품 팀장, 파생상품부문장으로 낙점한 이유도 '공부가 파생상품 투자의 출발'이라는 엄 부사장의 평소 지론 덕분이었다.

엄 부사장은 '파생상품에 투자하려면 기초 4가지부터 공부하라'는 뚝심을 설파해 왔다. 그가 꼽은 좋은 파생상품은 변동성이 낮고 만기가 짧게 남은 안정적 상품이었다. 그는 파생상품 트레이더라고 해서 수익만 쫓다가는 신영증권의 장점인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고민으로 파생상품이 저비용, 고수익의 '투기장'으로 치환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엄 부사장은 "ELW(주식워런트증권)에 들어온 투자자 중 7~8할은 돈을 잃는다"는 솔직한 답을 내놓기도 했다.

2005년은 신영증권에게 도전의 해였다. 2004년 말 금융당국이 증권사의 장외 파생금융상품 겸업기준을 완화하며 신영증권에도 길이 트였다. 과거 파생상품은 지주사 아래 대형 금융사나 메릴린치 등 해외 증권사의 전유물이었다. 2005년 12월에는 ELW 시장이 문을 열었다.

신영증권은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높은 상품들은 후발주자로 들어가며 위험성을 최소화했다. 잠시 시장 주도권을 내어 주더라도 고객과의 신뢰를 최우선으로 지키겠다는 다짐이다. 토지 작업만 단단하면 시장 주도권을 다시 탈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작용했다. 신영증권은 삼성과 LG, 대우, 굿모닝, 동원, 하나, 우리증권에 이어 뒤늦게 장외파생상품에 뛰어들었다.

엄 부사장이 신영증권 장외파생상품의 첫 운전대를 잡았다. 엄 부사장은 장외파생상품 시장에 뛰어들기 훨씬 전부터 시장을 파악하고 부하 직원을 훈련했다. 팀 출범 1년 전부터 신영증권의 직원 6명을 선발해 직접 파생상품을 가르쳤다.

차근한 그의 접근법은 통했다. '태평성대에 사서 난세에 팔아라'는 투자법 아래 진득하게 버티는 작전은 파생상품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거래소에서 최우수 기관상을 연거푸 받으며 시장의 신뢰를 증명했다. 엄 부사장도 신영증권의 파생상품이 좋은 평가를 받을 때마다 "고객의 신뢰를 우선한 결과"라고 자평했다.

15년 전 앞다퉈 파생상품에 뛰어든 증권사 중 지금도 확실한 명맥을 잇고 있는 증권사는 한 손에 꼽는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엄 부사장은 업계 최상위 헤지 트레이더로서 신영증권의 파생상품 부문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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