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9(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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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 아산 정주영 레거시]한국의 아우토반 경부고속도로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19-12-26 10:00:00

이 기사는 2019년 12월 26일 10:00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아산은 기업인으로서 영리 목적의 사업을 영위한 사람이지만 아산이 현대를 성장시킨 시기가 한국사의 매우 독특한 시기여서 아산은 기업을 국가관에 접목시켜 경영했다. 동시대의 다른 기업인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크게는 다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대표적인 사업이 현대건설의 경부고속도로 건설이었는데 이 사업은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인물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기념비적 대형 프로젝트다.

아산이 박 대통령으로부터 경부고속도로 건설 이야기를 처음 들은 시점은 1967년 11월쯤이었다고 한다. 경부고속도로는 박 대통령이 그 전해 선거에서 내놓았던 공약사업 중 하나였다. 1964년에 차관을 얻으러 서독을 방문했을 때 아우토반(Autobahn)에 큰 인상을 받고 구상한 사업이다.

당시 서독은 이미 총연장 3,000km가 넘는 아우토반을 보유했다. 아우토반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였던 1920년대에 구상되었는데 정치, 경제 상황이 여의치 않던 당시 잘 진척되지 않았고 아우토반 건설은 1933년에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후에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독일이 완전고용을 달성했던 1936년에는 13만 명이 동원되었다. 독일은 나치 시대에 3,736km의 아우토반을 보유했었다.

박 대통령으로부터 현대건설이 공사 방안을 강구해 보라는 영을 받고 아산은 바로 계획안 작성에 들어갔었다. 박 대통령은 현대건설이 1965년 태국에서 2차선 98km의 파타니 나라티왔 고속도로 공사를 해 본 경험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사업에는 반대가 많았지만 1968년 2월 1일 첫 발파음과 함께 착공되었다. 아산은 ”그 순간 벅차오르던 흥분과 감동을 나는 잊지 못한다. 대통령도 나와 같은 느낌인 것 같았다“고 회고한다(이 땅에 태어나서, 118).

서울-수원과 대구-부산 간 핵심 구간을 포함해서 40%를 현대건설이 시공했다. 그 외, 15개 업체와 육군 건설공병단 3개 대대가 참여했다. 2년 5개월간 연인원 890만 명이 일했다. 77명이 순직했다.

이 공사는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였다. 약 430억 원의 건설비는 1967년도 국가예산의 23.6%였다. 박정희, 정주영 두 사람은 이 공사가 인생의 소명인 것처럼 몰입했다. 박 대통령은 고속도로에 관한 얘기를 하고자 시도 때도 없이 밤중이건 새벽이건 아산을 찾았다. 두 사람은 식사도 같이 많이 했고 막걸리도 함께 많이 마셨고 나라 경제 얘기도 많이 나누었다고 한다(121).

공사는 강행군의 연속이었고 어려움도 많이 겪었지만 1970년 6월 27일 밤 11시에 최대 난공사였던 당재터널 공사가 끝나 7월 7일에 예정되어 있던 경부고속도로 준공식이 거행될 수 있었다. 토사퇴적층 구간이었던 당재터널 공사는 희대의 난공사였다. 3명의 인명손실도 치렀을 정도다. 단양시멘트 공장에서 20배 빨리 굳는 고가의 조강시멘트를 공급받아서 가까스로 마무리 지었다.

금강휴게소 남동쪽에 있는 이 터널은 지금은 이름이 옥천터널인데 2002년 선형 개량 구간이 개통하면서 고속도로에서 은퇴했다. 터널 상행선 구간은 김치제조업체가 옥천군에서 임대해서 김치 숙성 저장고로도 사용 중이다. 상행선 구간에서는 영화 ’터널‘(2016)이 촬영되었다.

지금은 교통체증으로 상황이 달라졌지만 차가 별로 없던 개통 당시 서울-부산은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4시간에 주파되는 거리였다. 경부고속도로 준공을 알리는 대한뉘우스 제784호는 걸어서 보름이 걸리는 거리가 4시간 거리로 단축되었다고 보도했다. 개통 10주년 맞이로 촬영된 뉴스영상에도 차량이 뜸하다. 첫 10년간 1억900만 대가 도로를 이용했는데 그중 53%가 화물차량이었다. 유지와 관리 비용은 높았겠지만 상당 기간 높은 산업 부가가치를 창출했던 것 같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사업은 아산과 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긴밀히 협동했던 프로젝트였다. 아산은 박정희 대통령을 높이 평가했다. 아무리 국가관이 확실한 기업인이라도 정작 국가 지도자를 별로로 생각했었다면 파트너십이 견고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산은 박 대통령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비록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는 지울 수 없는 약점을 가진 지도자이기는 했지만, 나는 박정희 대통령의 국가 발전에 대한 열정적인 집념과 소신, 그리고 그 총명함과 철저한 실행력을 존경하고 흠모했다. 사심 없이 나라만을 생각하던 대통령을 도와 한푼이라도 적은 예산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시키는 목표 외에 나에게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없었다.“(122)

아산은 1972년에 박 대통령이 유신체제를 도입한 후에는 다소 부정적으로 돌아섰었던 듯하다. 아산재단 정몽준 이사장의 책에는 그 당시 아산이 집에서 아침 면도를 하면서 ”국민은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나는 독재의 도구 노릇이나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나라 꼴이 이게 뭐냐?“고 불만스러운 심기를 내비친 적이 있다고 한다(나의 도전 나의 열정, 113). 그렇긴 했어도 만년에는 긍정적인 역사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박 대통령도 나처럼 농사꾼의 아들이었다. 박정희 대통령과 나는 우리 후손들에게는 절대로 가난을 물려주지 말자는 염원이 서로 같았고, 무슨 일이든 신념을 갖고 ’하면 된다‘는 긍정적인 사고와 목적의식이 뚜렷 했던 것이 서로 같았고, 그리고 소신을 갖고 결행하는 강력한 실천력이 또한 서로 같았다. 공통점이 많은 만큼 서로 인정하고 신뢰하면서 나라 발전에 대해서 같은 공감대로 함께 공유한 시간도 꽤 많았던, 사심이라고는 없었던 뛰어난 지도자였다“(253).

고속국도 노선 번호 1번인 416km의 경부고속도로 준공 이후 약 5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고속도로의 총연장은 2018년 기준으로 4,766km다. 평균 주행속도 142km, 최고 주행속도 기록 432km를 자랑하는 독일의 아우토반은 2017년 기준으로 총연장이 12,996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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