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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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펀드 '패스파인더' 한용남 DB운용 매니저 [매니저 프로파일]국내 최초 'DB바이오헬스케어펀드' 10년 운용…바이오 변동성 '정신력' 승부

정유현 기자공개 2020-02-19 13:01:02

이 기사는 2020년 02월 17일 07:40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용남 DB자산운용 주식운용팀장은 국내 바이오·헬스케어펀드의 살아있는 역사라 해도 무방하다. 국내 최초의 바이오헬스케어펀드를 기획하고 책임 운용매니저를 맡은 후 10여 년간 흔들림없이 한 자리를 지켜온 인물이다. 국내에 바이오 섹터에 투자하는 펀드가 두개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이 분야에서 가장 오래된 매니저이자 업계가 알아주는 스타 매니저다.

'꿈을 먹는 종목'이라고 표현되는 바이오주는 롤러코스터에 비유되기도 한다. 일시적인 기대감으로 잔뜩 올랐다가 악재 하나에 주가가 곤두박질치는 경우가 잦다. 변동성이라는 파도가 밀려올 때 한 매니저의 역량은 십분 발휘된다. 평정심을 잃지 않고 바이오주의 미래에 베팅하며 새로운 투자 기회를 찾는다. 가족과 주위 사람들이 그를 '멘탈(정신력) 갑(甲)'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국내 바이오 펀드의 패스파인더(길잡이) 역할을 하며 살아있는 역사라고 불리울 수 있는 것도 강력한 정신력이 밑바탕이다.

◇'수처작주(隨處作主)' 경영지원팀 사원→펀드 매니저

'수처작주(隨處作主).' 어떤 곳에 처하든 주인공이 되라는 뜻이다. 한용남 팀장이 매니저의 세계로 들어간 것도 이같은 마음가짐에서 비롯됐다. 한 매니저는 2002년 DB자산운용(옛 동부자산운용)의 경영지원팀 사원으로 입사했다.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전산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한 매니저는 백 오피스 직원으로서 3년간 매니저들의 운용을 지원하는 조연 역할을 했다.

IMF 이후 취업 시장이 여전히 어려운 시기였던 만큼 사실 엄청난 꿈을 가지고 운용사에 입사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경영지원팀에서 전산업무, 시스템 관리 등을 하면서 운용사의 핵심 주연은 '펀드 매니저'라고 판단했다. 이왕 발을 들인 김에 주연으로 거듭나기로 결심한 한 매니저는 약 3년여간 주말 업무 등에도 불구하고 남몰래 펀드 매니저 자격증도 준비하며 기회를 살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는 오는 법. 우연히 공석이 발생한 투자전략본부 애널리스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원했다. 2005년 10월 애널리스크가 된 한 매니저는 퀀트 애널리스트, 유틸리티·제약 바이오 섹터 담당 애널리스트 등을 거쳤고 2006년부터 운용에도 발을 담그기 시작했다. 시작점은 달랐으나 목표 했던 바를 찾았고 그 길을 향해 꾸준히 걷고 있다.

한 매니저를 지금의 자리로 올려둔 펀드를 만난 건 2009년이다. 당시 DB자산운용은 펀드 매니저가 전권을 가지면 리스크 관리가 되지 않는다는 판단하에 애널리스트 중심으로 팀을 운용해 펀드 포트폴리오를 관리했다. 한 매니저도 이 팀원 중 한명이었다. 중소형사였던 DB자산운용이 국내 최초로 바이오헬스케어펀드를 만든 것도 이 팀의 결과물이었다.

국내 바이오 산업은 황우석 박사가 1999년 우리나라 최초의 복제 송아지 '영롱이'를 탄생시키면서 일반인들도 주목했다. 21세기의 문을 '인간 게놈 프로젝트'(인간 유전자 해독)가 열며 바이오가 글로벌 시장에서 신사업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2004년 황우석 교수가 사이언스지에 줄기세포 관련 논문을 게재하면서 국내 바이오 산업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듯 했다. 하지만 2006년 논문 조작 사태가 수면위로 오르며 바이오 산업은 또 한번 출렁였다. 이 기간 바이오 종목들의 주가 변동성은 극단적으로 커졌다.

이후 바이오주 전성시기는 끝나는 듯 했지만 2009년 미국 오바마 정부가 줄기세포 연구와 바이오시밀러(바이오 복제약)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며 다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이 펀드가 나온 시기도 이 때다. 바이오 전망이 어두웠지만 글로벌 시장이 저성장·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 가장 주목받을 수 있는 산업이 바이오라는 판단이 있었다.

데이터에 근거해 과감히 상품 개발을 밀어 붙였다. 당시 최고투자책임자(CIO)였던 이좌근 상무를 중심으로 바이오헬스케어펀드 아이디어를 구체화 시켰다. 부침은 있지만 결국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당시 리서치 본부장은 '마법의 성'으로 유명한 가수이자 작곡가 김광진씨였다.

◇2009년 11월 첫 책임운용역마케팅 고비 넘기고 2000억 돌파


'DB바이오헬스케어펀드'가 세상에 나온건 2009년 11월이다. 이 펀드는 한 매니저가 운용역으로 이름을 올린 첫 펀드다. 하지만 바이오 종목에 투자하는 만큼 마케팅이 쉽지 않았다. 바이오 투자를 죄악시 하는 분위기가 여전했다.

초기 10억원으로 시작한 운용규모도 늘지 않았다. 펀드를 설정할 때만 해도 의욕적이던 회사도 시장에서 반응이 없으니 더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아무리 최초 펀드라고 해도 불신감이 팽배한 바이오 투자를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또 당시 소형 운용사라는 이유로 판매사에서 거절을 당하기 일쑤였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2013년 수익률도 좋지 않아 고민이 커졌다. 힘든 시기 맘을 다 잡게 해준건 가족이었다. "힘들면 그만둬도 돼. 내가 먹여 살릴게"라는 아내의 말에 힘을 얻은 한 매니저는 더 적극적으로 판매사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펀드가 힘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4년이다. 한 매니저가 판매사에 내놓은 마케팅 키워드는 '장기 투자·적립식 투자'였다. 바이오 종목의 시가 총액은 현재는 20조원이 넘는 기업도 있지만 당시에는 2000억~3000억원 수준의 중소형 종목이 대다수였다. 중소형 종목일 수록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헤지를 위해 적립식으로 투자하면 변동성을 이겨낼 수 있다고 판매사를 설득했다.

판매사에 이 펀드가 '어린이를 위한 펀드'라는 의견을 낸 적도 있다. 10년 장기로 투자하는 펀드도 있지만 바이오주는 10년도 사실 부족하다. 숱한 임상실험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바이오주들이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내진 못하겠지만 꾸준히 투자하다보면 성장의 열매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투자해야하는 만큼 어린이가 성장해 성과를 볼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펀드를 맡을 당시보다 운용을 하면서 공부를 하다보니 이 산업에 대한 더 큰 확신을 얻었다.

이런 마케팅 포인트는 결국 적중했다. 국내 최대 펀드 판매사인 KB국민은행이 가판대에 DB바이오헬스케어펀드를 올렸다. 2011년 8월만 해도 운용 규모가 60억원에 불과하던 DB바이오헬스케어펀드는 2015년 5월 처음으로 1000억원을 돌파했다. 2015년 내츄럴엔도텍 백수오 사태가 터지면서 한차례 고비를 겪었지만 사태 2~3개월 전부터 비중을 줄이며 펀드 성과에 크게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

자금 유입세는 이어졌고 2016년 3월 2000억원을 넘어섰다. 이후 1000억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4대 은행 1곳과 이 은행 계열 증권사 1곳 등 총 2곳을 빼고는 모든 판매사의 가판대에 올라가있다.

지난해 바이오 악재가 겹치며 설정액이 1100억원 선이지만 국내에 바이오섹터 펀드 중 1위다. The WM에 따르면 설정 후 누적 수익률은 113.98%, 3년 수익률 23.30%, 5년 31.23%다. 국내 바이오 섹터 펀드는 DB바이오헬스케어 펀드와 '미래에셋한국헬스케어'펀드 2종 뿐이다. 운용사는 많지만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영역이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는 DB자산운용 그리고 한 매니저가 강자로 꼽힌다.

◇'펀드 성장=회사성장' DB운용 18년 차 '한우물'

이직이 잦은 업계에서 한 우물을 판 한 매니저의 이력도 독특하다. 많은 사람이 회사를 옮겼고 오랜 시간 묵묵히 자리를 지킨 사람은 한 매니저 뿐이다. 최초의 바이오헬스케어 펀드를 출시하고 10여년간 운용한 경험이 있는 만큼 이직의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우직히 남아있었던 것은 펀드에 대한 주인 의식이 배경이었다.

이 펀드는 설정 후 단 한번도 운용역이 바뀌지 않은 펀드로도 유명하다. 펀드 매니저가 바뀌면 수익을 내는 방법이나 과정에 있어서 일관성 유지가 힘들고 너무 자주 바뀌면 '주인없이 운용된다'로 읽힌다. 초기 론칭부터 참여해서 끝까지 운용을 해오는 매니저들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 남이 하지 않은 펀드를 만들어 지금까지 잘 유지해오고 있는 점에 한 매니저의 자부심도 상당하다.

입사 당시 20여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소형사에서 업계 허리 역할을 하는 중견사로 도약하는 과정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회사 성장을 지켜보면서 보람도 느꼈다. 더 크고 안정된 회사를 선택하는 것도 좋지만 미래 가치를 측정하는 업을 하는 만큼 회사의 선택 기준도 다르지 않았다.

매일 롤러코스터를 타는 업의 특성상 스트레스가 많지만 푸는 방법은 일반 직장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술도 잘 못하는 터라 퇴근 후에는 운동을 하고 주말엔 낚시를 가거나 등산을 가고 영화관에도 자주간다. 요새는 가족과 함께 일요일 조조 영화를 관람하는 재미에 빠졌다. 가족에게서 힘을 얻는 만큼 어딜가나 항상 가족과 함께 하며 업무외 시간에는 일과 삶을 분리하려 힘쓴다.

DB바이오헬스케어펀드 운용역으로서의 삶은 '현재 진행형'이다. 창의력이 필요한 직업인 만큼 팀원들과 다양한 의견을 나누며 아이디어를 얻곤 한다. 고민이라면 고객이 손해를 보면서 환매를 하는 걸 볼때마다 마음이 아픈 점이다. 이같은 고객이 많지 않기를 바라는 맘을 담아 남이 보지 않는 주도주를 발굴해 좋은 주식을 적정가격에 매매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다.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DB바이오헬스케어펀드를 운용했다면 향후 목표는 일반 주식형 펀드만큼 규모를 늘리는 것이다. 바이오주 섹터에서는 가장 크지만 일반 주식형 수탁고와 비교하면 규모가 작은 편이다.

수탁고를 늘리고 수익률을 정상화 시켜서 고객에게 인정 받는 것이 목표이자 소망이다. 한 회사의 노력이겠지만 이 같은 노력이 모이면 결국 공모펀드 시장이 살아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투자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한 매니저는 오늘도 증시라는 전쟁터로 걸어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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