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30(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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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 아산 정주영 레거시]정주영 레거시 울산대학교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0-03-24 14:28:25

이 기사는 2020년 03월 24일 14:28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아산은 자동차수리공장을 할 때부터 네 살 아래의 구상 시인과 같은 문인들과 잘 어울렸다. 어릴 때 춘원 이광수의 ‘흙’을 신문에서 열심히 읽으면서 장차 문인이 되리라 결심도 했던 아산이다. 구상은 아산을 타고난 시심을 가진 만년 문학청년이라고 불렀다 한다(아산의 묘 곁에는 구상 시인의 추도시가 새겨진 비석이 있다).

아산은 학교에서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평생 아쉬움을 가졌다. 그 때문에 항상 책을 가까이하고 틈틈이 글을 썼으며 문인, 교수, 전문가들과 교분을 유지했다. 그리고 자신이 청년 시절 먼발치에서만 바라보았던 대학까지 설립했다.

아산이 지금의 울산대학교 전신인 울산공대를 설립한 것은 1969년 4월 8일이다. 현대가 한창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던 시기다. 1972년 12월에는 울산대학교 병설로 공업전문학교를 설립했다. 울산과학대학교다. 두 학교는 학교법인 울산공업학원에 속한다.

울산대는 ’공업입국‘ 실현을 위한 인재양성을 목표로 개교한 학교다. 1972년 국내 최초로 영국의 산학협동교육제도인 샌드위치 교육 시스템을 도입해서 장·단기 산업체 현장학습과 인턴십을 정착시켰다. 이 산학협동교육은 조선·화학·자동차산업이 밀집해 있는 지역에 위치한다는 이점과 현대중공업그룹의 지원으로 국내 타 대학의 전범이 되었다. 30년 동안이나 변함없이 대학 운영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한 현대중공업그룹 권오갑 회장의 기여도 빼놓을 수 없다. 울산대는 1974년 2월 18일에 제1회 졸업식을 가졌는데 모두 103명의 공학사를 배출했다. 1985년 3월 1일자로 종합대학이 되었다.

울산대는 사학이기는 하지만 재단이 학교 운영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 특별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울산대에서는 총장이 모든 권한을 가지고 책임을 진다. 이는 결국 모두가 설립자의 창학이념을 바로 새긴 결과일 것이다.

학교 교육을 많이 받지 못했지만 항상 공부에 천착했던 아산의 공력은 후손들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예컨대 울산공업학원 정몽준 명예이사장은 정치인이지만 필자나 필자 주변의 진지한 학자들 뺨치게 치밀하고 분석적이며 무엇보다도 책과 글을 좋아하고 즐겨 논한다. 거기에 교수들에게는 잘 없는 세상사에 대한 높은 시각이 더해진다.

울산대학교출판부에서 1982년에 처음 발간되었던 정 명예이사장의 저서 ’기업경영이념‘에는 오늘날 논의되는 기업경영의 정치, 사회적 문제들이 이미 다 잘 정리되고 깊이 있게 해설, 분석되어 있다. 이 책은 같은 제목(Business Ideology)의 1982년 MIT 경영대 졸업논문을 보완한 것이다. 아산과 정 명예이사장이 88올림픽을 유치하느라 정신없이 보냈던 1981년 바로 다음 해인 1982년에 나온 책이다. 거의 40년 전이다. 저자가 전공하는 기업지배구조 분야가 아직 제대로 탄생하기도 전에 나온 이 책은 특히 제3부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해 약 70페이지에 걸쳐 깊이 있게 논하고 있다. 책의 머리말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기업의 대형화 및 국제화와 더불어 프로젝트의 장기화, 경영의 전문화 등은 소유개념의 소극화, 사회적 책임의 강조 등 경영 외부여건의 변화와 함께 거의 동시적으로 기업에 밀어닥치면서 기업의 사회경제적 기능과 역할은 이 땅의 기업인들이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혁명적이라 할만한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기업인들은 이 같은 변화를 어떻게 수용하고 어떻게 대응하여야 하는가? 우리 사회가 이들 기업과 기업인에게 요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산은 아들 정몽준에게 ”니가 쓴 논문 읽어봤다. 니 말이 다 옳다. 기업은 지 혼자 저절로 크는 게 아니다. 기업하는 사람은 처음 물건 팔릴 때의 고마움을 잊으면 안된다. 배운 너야 유식한 말로 썼다마는 그게 다 그말 아니냐? 그만하면 아버지가 보기엔 노벨상감이다“라고 칭찬했다고 한다(나의 도전 나의 열정, 93~94).

정 명예이사장은 그로부터 11년 뒤에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논문의 제목은 ’일본의 정부-기업 간 관계‘(The Government-Business Relationship of Japan)였다. 총 369페이지에 걸친다. 정 명예이사장은 논문을 진행하던 중에 울산에서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첫발을 내딛게 되면서 논문완성을 사실상 포기하다시피 했던 듯하다. 그러나 위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얼마 후 아버지가 학위는 어떻게 됐냐고 물으셨다.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가 크게 꾸중을 들었다. 뜻을 세웠으면 끝까지 해보아야지, 중간에 그만두면 되겠느냐고 호통을 치셨다. 아버지 말씀에 용기를 얻고 다시 시작했지만 시간을 내기가 너무 힘들었다. 논문은 5년이나 걸려서 가까스로 마칠 수 있었다. 박사학위 공부를 시작한지 8년만인 1993년에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은 1992년의 다음 해다. 1992년은 아산이 정계에 진출하면서 통일국민당을 창당하고 대선에 나섰던 해다. 그 와중에 논문을 완성해서 다음 해에 학위를 받았다는 계산이 된다. 해 본 사람들은 알지만 학위 바로 전해가 대학원 학생의 인생에서 가장 바쁘고 힘겨운 때다.

아산은 이렇게 자녀들의 학업에 남다른 열의를 쏟았을 뿐 아니라 어렵게 사업을 하던 현대의 초창기에 동생들 공부까지 다 뒷바라지했다. 정 명예이사장의 박사학위 논문 커버를 열면 맨 앞 페이지에 ’To My Parents’라는 헌사가 있다.

울산대는 2020년 3월 16일에 개교 50주년을 맞았다. 오연천 총장은 기념사에서 "울산대는 한국경제의 선각자이신 정주영 선생께서 뿌린 인재양성의 밀알이 50년 지나 결실을 이룬 자랑스러운 지적 공동체"임을 강조하고 교직원, 학생들에게 "글로벌 가치를 선도하는 대학으로 나아가자"고 당부했다.

울산대 창학 50주년 기념사를 오연천 총장이 했다는 사실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오 총장은 대학교 1학년 때 아산을 만난 적이 있다. 교양과정 학부 강당에 피아노를 한 대 마련하고 싶었던 오연천 학생은 경제학과 친구 정몽준에게 얘기해서 부친 아산을 찾아갔다. 50만 원을 요청했는데 아산은 그 절반인 25만 원을 구해오면 매칭펀드를 해 주겠다고 했다. 아마도 기특한 젊은이를 테스트해 보려고 그랬던 것 같다.

미래의 서울대학교 총장 오연천은 다른 학우를 통해 정일권 총리를 찾아가 25만 원을 장만했고 다시 아산을 찾아가 약속된 25만 원을 받아 결국 50만 원으로 학교 강당에 피아노가 놓였다. 그때 아산은 오 총장에게 ”너 참 기특하구나. 네가 그것을 쉽게 구해 올 줄 몰랐는데..“라고 했다 한다(함께하는 긍정, 56~57). 그로부터 45년 후인 2015년 3월에 바로 그 청년이 자신이 설립한 대학교의 총장이 된 것이다.

오 총장의 ’결정의 미학‘에는 서울대 총장을 지낸 후에 울산대 총장으로 가는 결정을 함에 있어서 서울대 교수들에게 그 결정을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328~331). 울산대행이 ’시선 의식하지 않은 결정‘이었다고도 되어있다.

그러나 아산의 창학 동기를 새겨보면 어떤 대학이든 그 운영 책임을 맡게 되는 것은 보람있는 일이고 의미가 큰 일이다. 따로 설명이 필요없다. 서울의 한 일급 대형병원 원장이 은퇴 후에 지방의 한 병원을 맡아 환자를 돌보겠다고 하는데 설명이 필요없는 것과 같다. 전 원장에게 그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그 대형병원 의사가 있다면 의사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대학은 국가와 사회의 지도자도 양성하지만 그 이전에 선량한 시민을 길러내는 곳이고 아산처럼 공부할 기회가 전혀 없었던 청년들에게는 우선 그 존재 자체가 큰 의미를 가진다.

울산대는 대학평가에서 비수도권 사립대학 1위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다. 2019년 영국 THE 세계대학평가에서 국내 13위, 세계 601위로 평가되면서 글로벌 대학으로도 자리잡았다. 네덜란드 라이덴연구소의 세계대학연구력평가에서는 국내 5위, 세계 651위다. 중소벤처기업부 지원 ’2020년 초기창업패키지사업‘ 주관기관으로 선정되었다. 올해부터 2022년까지 23억 원을 지원받아 바이오 분야를 특화한다. 울산대 홈페이지에는 창학정신으로 아산의 설립사가 새겨져있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해내는 법이다. 젊은 시절, 어느 학교 공사장에서 돌을 지고 나르면서 바라본 대학생들은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나에게는 한없는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때 이루지 못했던 배움에 대한 갈망이 여기에 배움의 주춧돌을 놓게 하였으니, 젊은이들이여! 이 배움의 터전에서 열심히 학문을 익혀 드높은 이상으로 꾸준히 정진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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