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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 고발한 교보생명, 업황 악화 활용하나 공정가치 애초 고평가 주장...ICC 중재절차 영향, 시간끌기 작전 지적도

김현정 기자/ 이장준 기자공개 2020-04-02 14:41:22

이 기사는 2020년 03월 31일 16:57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교보생명이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의 공정가치 산출을 문제삼고 뒤늦게 소송에 나선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교보생명은 최대주주인 신창재 회장과 재무적투자자(FI)간 소송이 미치는 영향을 공시해야 했고 손해를 산정하는 작업이 구체화된 만큼 소송 준비에 나섰다는 설명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막다른 길에서 국제상사중재위원회(ICC)의 중재 결과를 최대한 지연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31일 교보생명에 따르면 미국 회계감독기구(PCAOB)에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고발을 시작으로 미국 뉴욕주 법원에 소 제기까지 준비를 마쳤다.

안진회계법인이 산정한 공정가치가 적절한 것이냐는 문제가 처음 불거졌던 것은 2018년 10월에서 2019년 2월까지다. 그로부터 1년 이상이 흐른 뒤 교보생명이 갑작스레 소 제기에 나선 것을 두고 안진회계법인 측에서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안진회계법인 관계자는 “FI와의 용역계약에 따라 전문가 기준에 부합하도록 주식가치 산정업무를 수행했다”며 “법인 내부적으로 교보생명의 고발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보생명은 금융당국의 요구에 따라 공시를 준비하면서 손해가 큰 점이 드러나 소송을 준비했다는 설명이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변동이 예상되지만 올 6~7월 교보생명을 대상으로 금융감독원의 종합검사가 예정돼있다. 교보생명은 종합검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금감원과의 질의를 통해 주주간 소송이 미치는 영향을 실적 공시에 공개할 것을 요구받았고 이런 작업을 정리해왔다.

교보생명은 주주간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경영 안정성과 평판이 저하되는 등 유무형의 영업상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같은 손해는 안진회계법인의 풋옵션 산정에서 문제가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즉 FI와의 갈등이 야기된 근본 배경이 회계법인의 잘못된 공정가치 평가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그간 교보생명 설계사들을 비롯해 고객들,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들이 주주간 분쟁에 따른 여파를 우려하면서 회사에 피해가 초래됐다”며 “만일 ICC 중재 판정부가 최대주주에게 안진회계법인이 산정한 40만9912원에 FI의 주식을 매수하라고 결론을 낼 경우 지배구조 변동 가능성 등 큰 혼란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교보생명 측은 이번 고발 및 추후 소 제기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ICC의 중재 절차와는 완전히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엄연한 회사의 피해에 관해서 교보생명이 주체가 되어 고발을 진행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은 사뭇 다르다. ICC의 중재 판결을 놓고 최대주주에게 최대한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보기 위한 밑작업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ICC의 중재 결과는 올해 말 또는 내년쯤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최대주주가 IPO 계약을 이행하지 못해 여기까지 온 만큼 중재 결과는 최대주주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현재 최대주주는 중재결과가 나오기 전 다른 재무적투자자(FI)를 우군으로 끌어들이든, 자본 확충에 나서는 등 다양한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백기사를 찾든 신 회장이 자금을 한 푼이라도 더 끌어모으든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같은 맥락에서 가처분소송까지 염두해둔 ‘명분쌓기’라는 시선도 있다. ICC의 결과가 최대주주에게 불리하게 나오면 교보생명은 국내 법원에 중재판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번 고발은 추후 가처분소송까지 제기할 경우를 대비해 일관성 있는 액션을 취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밖에 ICC 판결 자체에 영향을 주기 위한 시도로도 풀이되고 있다. ICC가 내린 판결들을 살펴보면 그동안 소송을 제기했을 당시 기업가치가 아니라 판결을 내리는 시기의 기업가치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론이 나왔다. 보통 재판은 몇 년이 지나도 소를 제기한 당시 시점을 바탕으로 판단하는데 ICC 재판은 다르다. ICC와 일반 재판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꼽힌다.

이런 점에서 최대주주 입장에서는 판결을 오래도록 끌고갈수록 유리하다. 생명보험 업황을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교보생명 지분가치는 하락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저금리로 운용수익을 내기 어려운데다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에 따른 자본 부담도 커졌기 때문이다.

소송전이 길어질수록 공정가치를 산출하는 시점도 뒤로 밀린다. 업황이 악화되면 될수록 피어그룹(peer group) 주가와 비교할 때 교보생명 가치가 심각하게 고평가됐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구조다.

보험업 관계자는 "사실 지금 상황에서는 주당 41만원 가격이 말이 안된다"라며 "ICC가 당시 상황만을 갖고 판결을 내리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한다면 시간을 끌수록 판도를 바꿀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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