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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보다 양' 창업지원책의 그늘

이광호 기자공개 2020-06-01 08:07:44

이 기사는 2020년 05월 29일 07:4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그야말로 창업하기 좋은 시대다. 마음만 먹으면 창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지원책이 예비창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창업진흥원을 비롯한 정부기관들이 지속적으로 정책자금을 풀고 있다. 해가 갈수록 지원금 규모가 늘어난다.

창업자는 사업계획을 제출한 뒤 심사결과에 따라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 이상의 창업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중복 수혜도 가능해진다. 정책이 벤처·창업 지원에만 쏠려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스타트업 특별 저리 대출과 특례 보증을 포함해 올해 말까지 총 2조2000억원의 자금을 추가로 지원한다.

정부는 벤처 4대 강국 실현을 위해 'K-유니콘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토종 유니콘 기업을 육성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겠다는 목표다. 현재 11개인 유니콘 기업을 내년까지 20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유니콘 기업 진입을 목전에 둔 '예비유니콘'에 이어 예비유니콘이 될 가능성이 있는 '아기유니콘'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지원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업계에선 기대보다 우려가 크다. 규모와 숫자에만 매달리는 낡은 사고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원받는 창업팀을 선발하는 과정이 졸속이라 창업 생태계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창업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공무원과 교수들이 앉아있기 때문이다. 자금만 집행하면 된다는 분위기가 만연해있다.

스타트업과 운명을 함께하는 벤처캐피탈이 참여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최근 한 창업경진대회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투자심사역은 들러리 역할만 했다고 토로했다. 50개 후보 중 20개 업체를 선정해야 했지만 지원금을 줄만한 곳은 3~4곳뿐이었다. 유망 기업에 지원금을 몰아주자고 의견을 냈지만 해당기관은 무조건 20곳을 선정하라고 선을 그었다.

진입장벽이 낮다보니 '스펙용 창업'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저 창업을 하나의 발판으로 활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 해보자 식으로 덤비다 보니 비슷한 업종의 스타트업들만 불필요하게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창업을 적극 권하고 있지만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 기업들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얼마 전 한 심사역은 자신이 직접 투자한 스타트업 대표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더 이상 사업을 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였다. 지분 전량을 넘길테니 대표직을 맡아달라는 황당한 부탁이었다. 이때부터 심사역은 주변 사람들에게 창업을 권하지 않고 있다. 투자를 해달라는 수백 통의 메일도 일일이 확인하지 않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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