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1(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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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물시장 관치 논란]명분에 가로막힌 외화 조달, 시장 성장 저해①녹록지 않은 기재부 승인, 사용처·일정 등 규제 뚜렷…외화 펀딩 수단 제한 부작용

피혜림 기자공개 2020-06-05 09:05:37

[편집자주]

대한민국 자본시장에서 정부의 입김이 가장 강하게 작용하는 곳이 바로 한국물 시장이다. 외채 부채 관리를 전담하는 기획재정부는 기업 조달을 좌지우지하는 그야말로 막강한 권력자다. 한국물 발행을 위해서는 기재부를 향한 간곡한 읍소가 필수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온다. 자금 사용처와 프라이싱 일정 등도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 한다. 외화 건전성을 위해 일종의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달라진 시대 상황을 고려할 때 지나친 '관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율성 확보를 통한 한국물 시장의 성장 전략 등을 모색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6월 03일 07:52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국물(Korean Paper) 시장의 질서유지를 책임졌던 정부가 오히려 성장의 장애물로 지목되고 있다. 조달을 제한하는 각종 규제 탓에 외화 자금이 필요한 기업조차 쉽사리 한국물 발행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화채 조달 여건이 개선돼도 외화채권 발행시장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던 배경이다.

한국물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건 기획재정부다. 국내 이슈어들은 외화채 발행 전 기재부와의 협의를 통해 조달 시기 등을 조율한다.

관련 업계에서는 기획재정부의 지나친 규제로 국내 기업의 외화채 발행이 제약을 받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조달 자금의 사용처를 차환과 해외 투자 등으로 제한하고 있는 데다, 발행을 승인 받는다 해도 일정 확보 등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외화 펀딩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만큼 시장 내 자율성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연간 이슈어 35곳 안팎…시장 호황기에도 발행시장 성장 제한

더벨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지난해 공모 한국물 발행에 나선 이슈어는 총 32곳이었다. 이중 대한항공과 두산인프라코어, 롯데물산, 한화에너지USA홀딩스 등이 보증채 방식을 활용해 국내 은행 크레딧으로 발행에 나섰다는 점에서 사실상 28곳의 이슈어가 시장을 찾았다.

한국물 시장을 찾는 이슈어는 연간 35곳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국제 신용등급을 기준으로 발행이 이뤄지기 때문에 조달에 나설 수 있는 크레딧을 보유한 이슈어가 한정돼 있다. 이마저도 주요 발행사는 대부분 은행과 공기업 등으로 국한돼 있다.

다만 지난해가 한국물 시장의 역대급 호황기로 지목된다는 점에서 발행사가 다변화 되지 못한 점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글로벌 금융시장은 저금리 기조와 안전자산에 대한 높은 선호로 한국물에 대한 인기가 급증했다. 대외신용도를 가늠하는 지표인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2019년 연초부터 줄곧 최저점을 경신하기도 했다.

한국물 기관별 발행 비중

기재부 규제, 성장 걸림돌 지목…시장 경직성 심화

관련 업계에서는 관료주의로 인해 한국물 시장이 경직돼 있다는 점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한국물 발행을 위해서는 기획재정부로부터 소위 '윈도우(window)'를 받는 절차가 필수적이다.

발행사는 기획재정부로부터 외화채권 발행을 허가받고 프라이싱(pricing)을 할 수 있는 날짜를 받아야 한다. 기재부는 윈도우 날짜를 이슈어에 지정해주는 등의 방식으로 한국물 발행 시기를 분산한다. 국내 이슈어끼리의 경쟁을 제한하는 등의 긍정적 기능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윈도우는 외환위기 이후 기재부가 외화 부채 관리에 사활을 걸며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윈도우를 받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기획재정부는 차환 발행과 해외투자 목적등에 한해 외화채 조달을 용인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자금 사용처 등에 대한 각종 제약이 상당해 외화 자금이 필요한 기업들은 쉽사리 채권 발행에 나설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책은행 크레딧을 활용한 보증채 발행사를 제외하면 매년 뉴이슈어로 이름을 올리는 곳은 두세 곳에 불과하다.

기획재정부 측은 외화채 발행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설정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거시건전성과 외화부채 등에 대한 관리 역할이 막중한만큼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유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관련 업계에서는 기재부의 외화채 발행 제약이 도를 넘었다고 지적한다. 자금사용처 제한 등으로 조달에 나서지 못하는 기업이 상당한 데다 윈도우를 쥔 기재부의 소위 갑질 행위 역시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기획재정부가 시장 관계자들을 소환해 보험사에 대한 신종자본증권과 후순위채 발행 등에 대한 조달 금지 등을 선언했던 사건은 유명 일화로 남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시장내 달러채 발행이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급증하는 등 기업들이 유동성 확대에 총력을 다 하고 있지만 한국물 시장만큼은 상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외화채 발행을 위해서는 조달 방식에 대한 고민은 물론 기재부 눈치보기에 집중해야하는 등 외환관리 규정에 명시됐다곤 보기 힘든 일들이 행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기업 자금조달 수단 제한과 함께 투자 의욕이 감퇴하는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외화 자산 성장세 뚜렷, 대응 펀딩 수단은 '글쎄'

외화채 발행시장의 유연성 감소는 외화자산에 대응하는 펀딩 수단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우려를 사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 송금액은 618억 5000만달러로, 전년(511억달러) 대비 21% 증가했다.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1980년 이후 최대치다.

해외 투자와 더불어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도 활발하다. 이에 따라 기업의 외화 자산이 증가해 외화 조달에 대한 고민 역시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가장 대표적인 외화 조달 수단인 한국물 발행 등이 정부 제약 등으로 녹록지 않은 모습이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화에 나서는 기업들이 늘며 해외자산 비중도 증가하고 있어 이에 대응할 부채 펀딩 수단 마련 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자산성장에 따른 외화 수요가 상당해질 수밖에 없는데 현재와 같이 자금 사용처가 제한될 경우 이같은 부분을 충족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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