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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재벌시스템]'52살 포스코' 지배구조 모델, 현재도 유효할까'디지털 디스럽션' 시대 이상적 지배구조 '고민', 회장의 오판, 연속성 끊김 개선 필요

구태우 기자공개 2020-06-05 08:25:25

[편집자주]

세계 최대 농업·식품회사인 카길은 비상장이고 가족지배 기업이지만 현재 가족이 경영하지 않는다. 세계적 플랫폼 기업 구글도 창업자들이 1선에서 모두 퇴진, 인도 출신 순다르 피차이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소유·경영의 분리 사례다. 자본시장의 역사가 짧은 한국 기업은 태생적으로 소유·경영의 융합모델이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고도 성장과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너경영 3·4세 시대에 접어들며 변화를 요구받는다. 국내 대표 기업 삼성이 그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다. 지배구조 뿐 아니라 이사회·내부통제·조직구성에 까지 영향을 줄 사안이다. '포스트 이재용 선언'은 곧 '포스트 재벌시스템'이다. 이재용 선언 이후의 재벌시스템, 나아가 4차산업혁명 이후의 재벌시스템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6월 03일 17:2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디스럽션(Disruption)'은 업계의 참가자들 사이에서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시장 점유율의 변화를 일컫는다. 시장은 고객이 원하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에 따라 빠르게 바뀐다.

2000년대 이전에는 코닥과 후지의 필름카메라가 주로 팔렸지만, '밀레니엄' 이후부터 디지털카메라의 강자인 캐논과 소니, 올림푸스의 카메라가 대세를 이룬 게 한 예다. 이렇듯 시장을 바꾸는 요인은 첫째도 둘째도 '고객'이다. 오너십과 지배구조는 기업을 효율적으로 경영하기 위한 '수단'이다. 지배구조가 어떻든 고객을 읽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카메라가 더 이상 '디바이스'로 여겨지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스마트폰은 카메라의 역할을 대체했다. 디지털 카메라의 강자였던 올림푸스가 한국 시장을 철수한 건 '고객에 의한 시장 파괴의 상징적 사건'이다. '디커플링'의 저자인 탈레스 테이셰이라 교수는 "시장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기술이 중시되지만, 시장을 파괴하는 건 고객"이라고 강조했다.

노키아의 몰락은 '디스럽션'에 해당되는 사례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과거 노키아는 세계 핸드폰 시장의 40%를 점유했던 글로벌 기업이었다. 핀란드 수출 물량의 20%를 책임질 정도로 국가 경제에 기여했다. 하지만 애플 '아이폰'의 등장은 2g 폰의 시대에 종말을 고했고, 스마트폰에 대응하지 못한 노키아는 순식간에 몰락했다.

당시 노키아의 CEO였던 스티븐 엘롭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내가 몰랐던 부분이 무엇인지 미처 몰랐다"며 "우리가(노키아)가 특별히 잘못한 건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무너지고 말았다"고 호소했다. 스티븐 앨롭은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의 부서장을 역임할 정도로 능력있는 전문경영인이었다.

노키아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기업으로 최대주주는 모건 스탠리와 캐피털 그룹 등 기관 투자자들이었다. 노키아 소유주들은 전문경영인이 안정적인 실적을 내고, 배당을 꾸준히 받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디지털 시장의 변화에는 상대적으로 둔감했다.

만약 노키아가 삼성전자처럼 소유와 경영이 결합됐다면 미래가 뒤바뀌었을까. 삼성전자는 아이폰의 돌풍이 거세지자마자 전담조직을 구성했고, 재빠르게 스마트폰 '갤럭시'를 출시했다. 현재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는 아이폰과 갤럭시만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키아와 삼성전자, 두 기업의 사례는 지배구조 모델이 '디스럽션'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여준다. 전문경영인은 단기적인 실적을 중시하지만, 오너 경영인은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을 우선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디지털 디스럽션이 업종과 지역, 시장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나타날 것으로 진단한다. 결국 가족기업은 고객의 변화와 이상적 지배구조 모델을 끊임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다.

◇포스코의 '대표이사 회장' 체제와 '100 경영'

포스코의 소유주는 '주주'다. 국민연금공단이 12.06%의 지분을, 시티은행이 8.8%의 지분을 갖고 있다. 주주 수는 18만1321명이다.

포스코는 정관에 따라 사내이사가 대표이사 회장을 맡는다. 회장의 임기는 3년으로 연임도 가능하다. 포스코의 '산파'였던 고 박태준 명예회장부터 '황경로·정명식·김만제·유상부·이구택·정준양·권오준' 회장이 그룹의 사령탑을 맡았다. 포스코는 대표이사 회장이 전문경영인으로서 그룹 전반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는다. 소유와 경영이 완벽하게 분리된 구조는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최정우 회장은 포스코그룹의 9대 회장으로 2018년 취임했다.

고 박태준 명예회장이 1973년 쇳물이 쏟아져나오자 환호하고 있다. 출처 : 포스코 50년 사

포스코의 역대 회장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건 '매출 100조'와 '100년 기업'이었다. 이 두가지 키워드는 '상호보완적' 역할을 한다.

포스코는 조강생산량 기준 세계 5위의 제철소다. 포스코가 설립된 1968년부터 세계 경제가 초호황을 누렸다. 세계화가 시작되면서 상품은 국경을 넘나 들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의 세계 경제는 불황과 호황, 공황을 반복해 왔다. 포스코가 성장하던 시기 세계 경제에는 '번영과 풍요'가 이어졌다. 1996년 포스코의 별도 매출은 8조원에 달했는데, 현재 30조원을 넘는다.

철강 제품은 산업의 '쌀'로 불리는데, 자동차를 만들든 TV를 만들든 건물을 짓든 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쇳물을 녹여 열연과 냉연을 만드는 족족 팔려나갔다. 이 같은 호황이 계속되지 않을 것이란 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1992년 박태준 명예회장은 광양제철소 준공을 앞두고 연간 1조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신사업을 찾아내라고 지시했다. 철강업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구택 전 회장은 당시 신사업본부장을 맡으면서 완성차와 이동통신사업, 사료 사업까지 검토한 일화가 있다.

이후 포스코는 1994년 이동통신 사업, 건설업(현 포스코건설)에 진출했다. 2010년 IT 서비스업(현 포스코ICT)과 상사 사업까지 나섰다. 같은해 대우인터내셔널 인수를 통해 상사 부문에 진출할 수 있었다.

포스코의 지난 50년 역사는 철강 사업을 안정화하고, 비철강 부문을 발굴한 역사다. 역대 회장이 강조했던 매출 100조원은 비철강 부문이 받춰줘야 가능하다.

◇박태준 명예회장 "전임 회장 계획 구체화되지 않아"

현 지배구조 모델은 포스코그룹의 '매출 100조원, 100년 기업'을 달성하는데 최적일까. 이 물음은 포스코 스스로도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포스코의 이사회는 지난해 10월 사외이사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이상적 지배구조 모델을 논의했다. 사내이사 출신의 임원이 한시적으로 대표이사 회장을 맡는 구조는 장점도 단점도 뚜렷하다.

최고경영자의 오판이 기업의 성장동력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전문경영인의 경우 단기적인 경영 성과를 중요시한다. 통상적으로 장기적인 발전전략을 짜기보다 단기 성과에 치중하려는 경향이 있다. 전문경영인의 연임이 가능한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포스코의 경우 대표이사 회장이 그룹 전반의 경영전략을 짠다. 하지만 이구택 전 회장(2003년 ~ 2009년)과 정준양 전 회장(2009년 ~ 2014년), 권오준 전 회장(2014년 ~ 2018년)의 포스코를 보면 알 수 있다. 이구택 전 회장은 철강 부문에 투자를 집중했다. 그의 경영전략은 '미래를 위한 설비 투자가 주주가치를 높이는 것'이었다.

국내에서는 스테인리스와 자동차강판 설비를 확장했고, 친환경 파이넥스 공법을 구축했다. 중국과 인도, 브라질 등에 생산공장을 건설했다. 해외 광산개발에 참여해 제철 원료의 공급사슬을 안정화했다. 정준양 전 회장은 신사업을 대대적으로 확충하고 나섰다.

정준양 전 회장이 대우인터내셔널 인수계약을 체결했다. 출처: 포스코 50년 사

정 전 회장이 포스코의 사령탑을 맡았을 때 유동비율은 500%가 넘었고, 현금성 자산은 6조원이 넘었다.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2차전지 소재(음극재, 양극재) 사업은 정 전 회장 시절 M&A를 통해 시작했다. 당시 포스코그룹은 2차전지 소재 부문을 육성하지 않았는데, 권오준 전 회장 때부터 중요도가 높아지면서 주목받았다.

2차전지 소재 사업처럼 잘 된 사업도 있지만 재무적 손실만 끼치고 손 뗀 사업도 많다. 1조원 규모의 손실을 끼쳤던 합성천연가스(SNG) 사업과 순천에코트랜스 사업, 성진지오텍 등이 대표적인 예다. 정 전 회장은 포스코의 신사업으로 에너지를 꼽았고 관련 사업에 투자했지만 손실을 끼쳤다. 정 전 회장이 회장직에서 내려왔을 때 유동비율은 300% 초반으로 낮아졌다. 임기 동안 대우인터내셔널 인수를 비롯해 11건의 대형 M&A가 있었고, 규모는 7조원에 달했다.

권오준 전 회장은 전임 회장의 부실을 치우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후 현재까지 포스코는 대형 M&A가 한 건도 없었다. 지난해 2차전지 소재인 동박 제조업체 KCFT(현 SK 넥셀리스) 인수를 검토했지만 결국 고사했다. 과거 포스코의 전임 회장들은 대우조선해양과 대우인터내셔널 등의 인수를 추진했을 정도로 과감하게 M&A를 추진했다. 하지만 현 회장은 전임 회장과 비교해 M&A에 조심스럽다는 평이다.

포스코의 전문경영인인 대표이사 회장은 독자적인 경영권을 갖는다. 하지만 회장이 바뀔 때마다 전임 회장의 사업이 지속되지 않는 단점이 있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2008년 한 언론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1992년부터 중국 등 동남아 진출을 추진했는데 이듬해 포스코를 떠나면서 흐지부지됐다"며 "포스코를 떠나며 생긴 큰 아쉬움은 당시의 계획들이 구체화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아쉬움은 포스코의 지배구조 모델이 갖는 근본적인 한계를 꼬집는다. 포스코의 지배구조가 '디지털 디스럽션'에 적합한지는 스스로 결론을 내릴 문제다. 탈레스 테이세이라 교수는 "인터넷 시대는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고 있고 경영진은 비교적 편하게 비즈니스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 간극을 포스코의 지배구조가 메워줄지는 시간이 답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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