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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재벌시스템]韓日롯데 절연의 의미, 새로운 지배구조 서막③위협 공존하는 日롯데, 버릴 수 없는 정통성…韓롯데 중심 개편 가능성

최은진 기자공개 2020-07-15 08:05:44

[편집자주]

세계 최대 농업·식품회사인 카길은 비상장이고 가족지배 기업이지만 현재 가족이 경영하지 않는다. 세계적 플랫폼 기업 구글도 창업자들이 1선에서 모두 퇴진, 인도 출신 순다르 피차이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소유·경영의 분리 사례다. 자본시장의 역사가 짧은 한국 기업은 태생적으로 소유·경영의 융합모델이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고도 성장과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너경영 3·4세 시대에 접어들며 변화를 요구받는다. 국내 대표 기업 삼성이 그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다. 지배구조 뿐 아니라 이사회·내부통제·조직구성에 까지 영향을 줄 사안이다. '포스트 이재용 선언'은 곧 '포스트 재벌시스템'이다. 이재용 선언 이후의 재벌시스템, 나아가 4차산업혁명 이후의 재벌시스템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7월 10일 07:30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위·부(富)·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쥘 수 있는 왕좌의 승계는 명분이 필요하다. 법적인 문제나 여론은 둘째로 두더라도 조직을 지배할 힘을 갖기 위해선 누가, 왜,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가지게 됐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뒷받침 돼야 한다. 역대 왕조들이 '적자혈통'에 목숨을 걸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핏줄로 이어진, 그 중에서도 가장 연장자라는 배경 그 한마디만으로 정통성을 설명할 수 있는 명분이 됐다.

정통성이 뒷받침 되지 못한다는 것은 조직을 아우르는 힘의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 외에도 계승자 스스로 느끼는 태생에 대한 불안이라는 리스크가 따른다. 광해군은 부친인 선조의 왕위계승 교서를 끝내 받지 못한 데 따라 왕위계승자로서의 불완전함에 늘 전전긍긍 했다. 정통성에 대한 불안은 왕권강화에 대한 집착이 되면서 실정(失政)으로 이어졌다.

◇日롯데 지켜야 하는 의미 '정통성'…지배력 흔드는 위협 작용

롯데그룹 승계에 있어서도 정통성은 중요한 과제가 됐다. 최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일본 롯데그룹의 단일 경영자로 오르면서 창업주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의 유언장을 공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1월 22일 오전 롯데월드몰 콘서트홀에서 엄수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영결식

'후계자는 신동빈이다'라는 유언 한마디가 갖는 승계의 명분은 조직을 아우르는 힘을 갖게 하는 것은 물론 신동빈 회장 스스로 느끼는 태생적 불안을 감출 수 있는 무기가 됐다. 신동빈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회장직에 취임하면서 전한 메시지에서 부친이 인정한 '후계자'는 본인이라는 점을 여러번 반복해 말했던 것도 이의 일환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정통성에 대한 집착은 승계명분에 대한 불완전함을 의미한다. 이미 지분 및 경영구도의 원톱 체제를 구축한 한국 롯데그룹은 안정권에 접어들었지만 문제는 일본 롯데그룹이다. 일본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위치한 광윤사, 실질적 경영주체인 롯데홀딩스의 종업원 지주회라는 주주의 존재가 불안의 배경이다.


일본 롯데그룹은 '신동주→광윤사→롯데홀딩스→L투자회사등'으로 연결된다. 지배구조 정점에 위치한 광윤사, 그 정점에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이 있는 한 일본 롯데그룹에 대한 신동빈 회장의 불완전한 지배력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한국 롯데그룹과 일본 롯데그룹의 연결고리를 끊는 작업을 빠르게 진행한 것도 이 때문이다.

롯데홀딩스 지분 28%를 쥐며 광윤사와 동률의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는 종업원 지주회는 일정 직급 및 근속년수 이상이 되면 확보할 수 있는 주식이지만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없고 의결권도 하나로 모아서 행사해야 한다. 롯데그룹을 퇴직하면 내놓고 나간다. 의결권은 대표의 의중대로 결정한다. 신격호 명예회장 생전엔 그의 의사가 곧 의결권이 됐다.

롯데홀딩스의 단일 대표이사 사장으로 신동빈 회장이 오른 데 따라 종업원 지주회의 지지는 일단 확실하게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종업원 지주회의 지지를 앞으로도 계속 담보할 수 있느냐 한다면 그렇지 않다.

신동빈 회장이 롯데홀딩스의 단일 사장으로 오르면서 정통성을 의식하듯 신격호 명예회장의 유언장을 공개한 것을 감안하면 종업원 지주회는 '신동빈'보다는 '신격호'에 대한 신뢰가 밑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 신동빈 회장은 그간 일본 롯데그룹의 경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던 만큼 무엇보다도 부친의 후광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물론 신동빈 회장이 얼마나 역량을 보여주느냐가 앞으로의 지지를 유지하는 데 관건이 되겠지만 지지를 철회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사라지기는 어렵다. 신동빈 회장 이후인 3세 시대를 단언할 수 없는 것도 물론이다.

◇韓日 지분관계 절연…양국 지배력 위한 새로운 지배구조 관측

이러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볼 때 신동빈 회장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많지 않다. 계속되는 경영권 위협으로부터 한국과 일본 롯데그룹의 원톱 체제를 지켜내기 위해선 끊을 것은 확실히 끊어내는 결단이 필요하다.

우선 한국과 일본의 지분관계에 선을 긋는 작업이 중요하다. 이는 이미 호텔롯데 상장을 공표하면서 그 속내를 드러냈다. 호텔롯데 주주는 일본 롯데그룹 계열사들로 구성된다. 호텔롯데는 다시 롯데지주·롯데물산·롯데제과·롯데칠성음료 등의 계열사 지분을 소유한다. 호텔롯데가 일본 롯데그룹과 한국 롯데그룹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는 한 경영권 분쟁에 있어 한국 롯데그룹 지배력까지도 흔들릴 수 있다.
신동주 회장이 운영하는 '롯데의 경영 정상화를 요구하는 모임' 웹사이트

한국 롯데그룹이 완전한 롯데지주 내로 편입되게 되면 그 다음은 일본 롯데그룹이 타겟이 된다. 일본 롯데그룹에 존재하는 광윤사와 종업원 지주회라는 주주들로 인한 분쟁의 위협 가능성을 인정하며 공존을 택할 것인지 완전히 끊어낼 대안을 추진할 것인지 신동빈 회장의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다만 일본 롯데그룹이 롯데라는 그룹을 만들게 한 모태인데다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의 역사가 담겨 있는 곳인만큼 사실상 이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 롯데그룹과 별개의 지배구조를 구축하며 나름의 대안을 찾거나, 지금과는 반대로 한국 롯데그룹이 일본 롯데그룹을 지배하는 형태의 새로운 지배구조를 구축하는 전략 등이 펼쳐질 수 있다. 양국의 지배력이 신동빈 회장 체제라는 안정권에 들어올 때까지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는 계속 변화할 가능성이 남아있는 셈이다.

따라서 오늘날 논의되고 있는 '포스트 재벌시스템'이 삼성그룹이 선언한 소유와 경영의 분리 등 소위 선진경영기법이라고 불리는 전략들이라면 롯데그룹이 이를 취하기까지는 상당히 오랜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롯데그룹 내에서도 투명화 및 효율화 등의 고민이 있기는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선진화'는 신동빈 1인 지배력이 갖춰진 이후에나 가능할 수 밖에 없다. 일본 롯데그룹과 확실한 선이 그어진 이후가 그 시작점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은 심플하게 보면 한국과 일본의 선을 긋는 것"이라며 "이는 경영권 분쟁 위협이 도사리는 상황에서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후 일본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를 어떻게 정리할 지가 관건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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