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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재벌시스템]오너 떠난 유한양행, 50년간 안정 이어온 비결은①창업자 유일한 박사, 혈연 아닌 적임자에 경영권 승계…우리사주 통해 거버넌스 완성

강인효 기자공개 2020-07-27 07:10:22

[편집자주]

세계 최대 농업·식품회사인 카길은 비상장이고 가족지배 기업이지만 현재 가족이 경영하지 않는다. 세계적 플랫폼 기업 구글도 창업자들이 1선에서 모두 퇴진, 인도 출신 순다르 피차이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소유·경영의 분리 사례다. 자본시장의 역사가 짧은 한국 기업은 태생적으로 소유·경영의 융합모델이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고도 성장과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너경영 3·4세 시대에 접어들며 변화를 요구받는다. 국내 대표 기업 삼성이 그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다. 지배구조 뿐 아니라 이사회·내부통제·조직구성에 까지 영향을 줄 사안이다. '포스트 이재용 선언'은 곧 '포스트 재벌시스템'이다. 이재용 선언 이후의 재벌시스템, 나아가 4차산업혁명 이후의 재벌시스템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7월 14일 15:02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 / 사진=유한양행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유한양행은 국내 제약업계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을 통틀어서 모범적인 지배구조를 구축한 기업으로 손꼽힌다. 1926년 고(故) 유일한 박사가 세운 유한양행은 창업주 뜻에 따라 오너 일가가 경영에서 완전히 빠진 지배구조를 갖췄다. 현재 유 박사가 설립한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이 20% 넘는 지분을 갖고 있지만 경영엔 관여하지 않는다.

오너십이 없는 상태에서 유한양행은 100년 가까운 업력동안 경쟁력을 잃지 않고 제약업계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깨끗한 기업 이미지와 함께 혁신적인 기술 개발과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까지 선보이고 있다. 재벌로 시작했지만 재벌이 아닌 거버넌스를 보여주는 대표 기업이다.

유한양행의 이같은 거버넌스는 창업주의 유지에서 비롯된다. 오너 체제는 아니지만 오너의 뜻에 따라 ‘비오너 거버넌스’ 체제가 만들어진 셈이다.

◇“창업자 또는 대주주가 기업 경영 독점 안 돼”, 국내 제약사 최초 IPO 사례

유한양행은 유일한 박사가 ‘건강한 국민만이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1926년 설립한 제약사다. 유 박사는 일제 치하에서 ‘일본보다 앞선 제약회사를 만들겠다’는 결심으로 유한양행을 세웠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려는 목적을 찾아 회사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신념이 바로 유일한 박사의 철학이었다.

유일한 박사는 “기업은 개인의 재산을 늘리거나 기업주의 소유를 증진시키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며 “기업은 언제나 사회로부터 성장 발전해 그 혜택을 사회로 환원시키지 않으면 기업의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는 기업이념을 밝혀 왔다.

그의 철학은 확고했다. 지나칠 정도의 순수성이 묻어난다. 그의 경영이념은 ‘기업과 기업인은 엄격히 구별돼야 한다. 설령 기업인이 기업의 창업주이고,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진 소유주라고 해도 기업의 경영을 독점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기업을 키우고 보존하는 길이다’는 말로 요약된다.

유 박사는 창립 10년 만에 유한양행을 주식회사로 전환했다. 개인 소유 회사를 ‘사회를 위한 기업’으로 전환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그는 “기업이 영세할 때는 개인 소유 회사로 머물러도 괜찮다”며 “그러나 기업이 크게 성장해서 사회적 위치와 기여도가 커지면 응당 주식회사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유한양행은 1962년 기업공개(IPO)에도 나섰다. 국내 제약사 중 최초의 사례이자 국내 기업으로는 경방 이후 두 번째다. 기업공개 당시 회사 일부 임원들은 반대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비상장기업을 공개법인으로 바꾸는 것은 경영의 합리화, 자본과 경영의 분리, 나아가 자금 동원의 여력을 넓히는데 그 목표가 있다. 하지만 당시 유한양행의 공개된 주가보다 상장 전 기업가치가 5~6배 정도 높았다. 비상장으로 두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기업공개는 유 박사를 비롯한 오너 일가의 재산에 손해를 끼치는 것을 의미했다.

그는 “우리나라 기업이 한두 사람의 손에 의해 좌우돼서는 장족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회사가 다소 시끄러워질망정 많은 사람을 참여시켜야만 회사와 국가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초록색 부분이 전문경영인 / 자료=유한양행

◇50년간 이어온 전문경영인 체제

유한양행은 1969년을 기점으로 최고경영자(CEO)의 색이 바뀐다. 그 이전까진 창업주 일가와 전문경영인이 번갈아 가며 CEO를 맡았다. 하지만 1969년 이후 유 박사 일가의 이름은 CEO 자리에서 자취를 감춘다.

유 박사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 유일선씨(부사장)에게 유한양행을 맡기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에서 변호사로 일해온 유씨는 한국보다 미국에서 더 오래 살았고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미국인이었다. 유 박사는 조국(국가)보다 자신(개인)을 우선시하는 아들이 유한양행의 경영이념에 부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유씨가 사장의 아들이자 유한양행의 후계자라는 선민의식에서 벗어나 유한양행의 간부로서 겸손하게 일해주기를 바랐다고 한다. 유일선씨는 1966년부터 1969년까지 3년간 유한양행 부사장을 지냈다. 오너 일가의 경영 참여는 이것이 마지막이다.

유 박사는 1969년 10월 말 이사회를 열고 유일선 부사장을 직책에서 해임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사장직을 내려놓고 유한양행의 경영권을 조권순 부사장에게 넘겼다. 유 박사는 이듬해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500명의 주주들 앞에서 조 부사장이 그의 후계자임을 선언했다.

유한양행은 지금까지 50년간 전문경영인 체제를 이어오고 있다. 1969년부터 10명의 공채 출신 사장이 선임됐지만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중도 하차한 대표는 없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견실하면서도 합리적인 기업문화를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며 “우량 장수기업으로 발전해 가는데 중요한 기반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유 박사는 또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그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유한양행 주식 14만941주를 유한재단에 기증하며 경영 일체에서 손을 뗐다.

1971년 유 박사가 작고한 후 유한양행의 주식 분포를 보면 55.4%가 일반인의 소유였다. 44.6%는 모두 공익기관에 환원됐다.

지분이 분산된 형태로 50년간 영속된 거버넌스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 중 하나론 우리사주가 꼽힌다. 1969년 이후 유한양행의 CEO들은 모두 공채 출신이다. 우리사주를 통해 전 직원이 주인인 회사를 만들고 임직원들 중에 CEO를 뽑는 전통을 만들다 보니 거버넌스의 안정도 꾀할 수 있었다.

유한양행은 1973년 완성된 형태의 ‘우리사주제’를 이뤄냈다. 1974년에는 직원 977명이 회사 주식을 소유한 사원이자 주주가 됐다. 앞서 1936년에는 국내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도입했고, 1966년에는 ‘전원 사원제’도 도입했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유 박사 영면 이후 현재 이정희 사장에 이르기까지 전문경영인에 의한 내실 중시의 경영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며 “기업주의 독단을 사전에 차단하고, 회사 내부에서 성장해 온 ‘준비된 인재’에게 경영을 맡기는 선진적 경영환경을 조성해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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