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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재벌시스템]유한양행, 재단 통한 지배력+경영 독립 묘수②유일한 박사, 재단 규제 5%룰 시행 전 지분 증여…외부 명망가 이사장 '전통'

강인효 기자공개 2020-07-28 07:10:44

[편집자주]

세계 최대 농업·식품회사인 카길은 비상장이고 가족지배 기업이지만 현재 가족이 경영하지 않는다. 세계적 플랫폼 기업 구글도 창업자들이 1선에서 모두 퇴진, 인도 출신 순다르 피차이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소유·경영의 분리 사례다. 자본시장의 역사가 짧은 한국 기업은 태생적으로 소유·경영의 융합모델이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고도 성장과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너경영 3·4세 시대에 접어들며 변화를 요구받는다. 국내 대표 기업 삼성이 그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다. 지배구조 뿐 아니라 이사회·내부통제·조직구성에 까지 영향을 줄 사안이다. '포스트 이재용 선언'은 곧 '포스트 재벌시스템'이다. 이재용 선언 이후의 재벌시스템, 나아가 4차산업혁명 이후의 재벌시스템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7월 21일 08:41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국 재벌의 소유 구조 재편을 논의할 때 대안으로 검토되는 것은 '재단' 활용법이다. 재단에 지분을 증여하고 오너 일가가 재단을 소유해 간접 지배하는 구조를 만들면 영구적인 지배구조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아이디어다. 스웨덴 발렌베리가문의 사례나 수 많은 해외 오너 기업들은 재단을 통해 소유 구조의 안정화를 꾀한다.

한국의 유사 사례로 꼽히는 곳이 '유한양행'이다. 고 유일한 박사는 1971년 3월 11일 77세로 세상을 떠나며 한 달 뒤 4월 8일 사후유언장을 통해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밝혔다.

유 박사는 자신의 전 재산인 유한양행 주식 14만941주·당시 시가 2억2500만원을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신탁기금’에 증여했다. 앞서 그는 1969년 유한양행의 경영권을 전문경영인에게 넘겼다. 이 기금은 앞서 1970년 유일한 박사가 유한양행 주식 8만3000주를 기탁하며 만들어 진 곳이다.

기금은 1977년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규정에 따라 재단법인 ‘유한재단’으로 명칭을 변경했고 소유 주식 일부를 ‘유한학원’과 분할해 보유하고 있다. 유한양행 최대주주는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으로 각각 15.56%, 7.65%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재단을 통한 소유 구조는 사실상 이때가 마지막 기회였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에 따르면 기업들의 공익법인은 개인·법인으로부터 계열사 지분 5% 미만을 인수할 경우 면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일명 ‘5%룰’이다. 다만 기획재정부로부터 성실공익법인으로 지정되면 계열사 지분 10% 미만까지 상속세와 증여세를 내지 않는다.

유한재단은 이 제도가 시행되기 전에 재산을 출연한 만큼 추가로 취득과 처분에 따른 지분 변동이 생기게 될 경우에만 소급 적용을 받는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1977년 공익법인에 관한 법률이 신설되면서 목적 사업에 맞게끔 유한재단은 공익사업을, 유한학원은 교육사업을 담당하게 됐다”며 “이에 따라 당시 지분도 나눠지게 됐는데, 유한재단이 유한양행 주식을 취득·처분하게 되면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지분 변동이 없다”고 설명했다.
유한재단 역대 이사장 / 사진=유한재단
◇유한재단, 명망가에 이사장 맡기는 전통

재단에 오너 일가의 입김이 들어가면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구조는 쉽지 않다. 유한재단은 단순하지만 강력한 '룰'로 이를 피하고 있다. 사회 명망가가 이사장을 맡는다는 룰이다.

유한재단은 1970년 출범 이후 50년간 지금까지 8명의 이사장을 배출했다. 이중 제1대 이사장인 고 유재라 여사(유일한 박사 딸)만 유일한 박사의 가문이다. 3대 이사장인 연만희 이사장, 4대 김태훈 이사장은 유한양행 대표이사 출신이다.

초기엔 유일한 박사 가문의 입김이 다소 개입될 여지가 있었겠지만 이조차 금기시 한 것이 유일한 박사의 유지였다. 2대 전영철 이사장을 포함해 5대 이사장 이후엔 유한양행 이사장은 모두 외부 출신 사회 명망가들을 위촉했다.

유한재단 현 이사장(제8대)인 한승수 전 국무총리는 2016년 선임됐다. 유한재단 이사장의 임기는 3년이고, 연임만 가능하다. 한 이사장은 지난해 연임됐다.

역대 이사장들은 교수 및 정관계 인사였다. 제2대 이사장인 전영철 씨는 동양시멘트 부사장을 지냈고 5대 한배호 이사장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세종연구소장을 지낸 인물이다. 6대 정원식 이사장은 국무총리를 지낸 인물이며 7대 이필상 이사장은 고려대 총장을 역임했다.

현재 유한재단 이사회는 이사장을 포함해 총 12인(이사 10명, 감사 2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3명은 유한양행과 관련 있는 인물이다. 이정희 현 유한양행 대표와 송두영 전 유한양행 재무팀 이사, 김성섭 전 유한크로락스 대표 등이 유한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나머지는 정·관계, 학계, 경제계 인사들로 이사진이 포진돼 있다.

경제계 인사로는 박노석 이사(전 신신제약 회장)와 정수길 이사(전 쉐링프라우코리아 대표), 관계는 심창구 이사(전 식품의약품안전청장), 학계는 박상철 이사(전 서울대 의대 교수)가 있다. 이밖에 신정승 이사(동아시아연구원장), 유일링 이사(마케팅 컨설턴트)와 고성천 감사(삼일회계법인 택스사업부 리더), 전기수 감사(전 초당약품 전무) 등이 있다.

정수길 이사가 몸담았던 쉐링프라우코리아는 유한양행과 인연이 있다. 유한양행은 20년전 이 회사와 손잡고 미국 쉐링프라우가 생산하는 전 제품의 한국 내 영업을 전담했다. 미국 국적의 유일링 이사는 유일한 박사의 손녀다. 유씨는 올해 이사회에 합류했다.

유한양행과 거래 관계에 있다곤 하지만 유한재단 이사회의 과반수 이상은 외부 인사다. 더욱이 이사장은 사회 명망가를 위촉하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사회적 명망가들은 유한재단에서 유한양행의 이익을 위해 의사결정을 하기 보다 본인 평판이 더 중요한 위치의 인사들이다. 간단하면서 쉽게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구조다.

유한 측은 “유한재단은 통상 연간 분기에 한 번씩 정기 이사회를 개최하고, 유한양행이 유한재단 정기 이사회를 통해 회사의 사업 현황 및 경영 실적 등을 보고하고 있다”며 “특별한 안건이 있을 때 임시 이사회가 열리기도 하지만 흔치는 않다”고 밝혔다.
유한재단 사업분야 / 자료=유한재단
◇유한양행 배당으로 장학사업 전념

유한재단은 △장학사업 △교육사업지원 △사회봉사자시상사업 △사회복지사업 △재해구호사업 등을 영위하고 있다. 특히 장학사업은 유한재단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이다. 대학생과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선정된 장학생에게는 특별한 결격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한 졸업 때까지 장학금이 지원된다.

지난해에는 ‘북한 출생 장학생 장학금 수여식’을 통해 남북하나재단에서 추천 선발된 70명의 대학생에게 1년분 장학금을 수여하기도 했다. 아울러 매년 간호, 교육, 복지 분야에서 헌신적인 봉사의 본을 보여 온 여성 인사를 선정해 ‘유재라봉사상’을 시상하고 있다.

재단 활동의 주된 수입은 유한양행 주식의 배당금이다. 유한재단의 2019년 기준 자산총계는 4824억원이다. 이 중 4699억원이 자본총계로 유한양행 주식이 대부분이다. 유한재단은 유한양행 보통주와 우선주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 주식가액은 4703억원이다.

유한재단의 작년 매출액은 40억원이었고, 영업손실과 순손실은 각각 79억원, 82억원이었다. 유한양행 최대주주인 유한재단은 지난해 회사로부터 배당금으로 약 38억원을 수령했다. 배당금 이자까지 포함해 유한양행으로부터 받은 수입을 모두 공익 활동에 쓴다.

회사 측은 “이는 기업의 이윤이 사회적 이익 증대로 이어지는 국내 최초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 모델’이라 할 수 있다”며 “유한양행의 성장이 유한재단을 통해 장학금과 복지 사업으로, 유한학원을 통해 교육 사업으로 흘러가며 사회적 가치를 증대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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