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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초정밀화학기업으로 변신한 KCC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0-08-13 13:54:27

이 기사는 2020년 08월 13일 13:5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막냇동생 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은 1958년에 영등포의 양평동에서 건자재회사 금강스레트공업을 창립했다. 당시 스물셋이었다. 아산이 한강인도교 복구 공사로 고령교 공사의 후유증에서 겨우 빠져나온 해가 1958년이었으므로 정상영 명예회장은 형과 같이 사업을 성장시키다가 독립해 나왔다기 보다는 일찌감치 독자 창업한 셈이다. 다만 아산은 1958~59년 첫 1년간 회사의 대표를 맡아 동생의 사업이 자리잡히는 것을 지원했다. 후일인 1970년대 초에 현대자동차가 위기를 맞았을 때 아산이 정상영을 2년간 구원투수로 투입하기도 한 것을 보면 경영능력을 많이 신임했던 것같다.

정상영 명예회장이 현대차에서 복귀한 1973년에 기업을 공개한 금강스레트는 1976년에 ㈜금강이 되었다가 2000년에 고려화학(1974년 창립)과 합쳐져 금강고려화학이 되었다. 금강고려화학은 2005년에 사명을 KCC로 바꾸어 오늘에 이른다. 그룹매출 8조 원대, 임직원 수 1만3천 명을 넘는 기업이다. 2000년부터 정상영 명예회장의 장남 정몽진 회장이 이끌어 왔다. KCC는 삼성물산의 8.9% 주주이기도 하다.

고려화학은 1990년대에 세간의 화제였던 인기 광고의 주인공 바로 그 회사다. 고려페인트 광고인데 여러 가지 색깔의 도미노가 쓰러지면서 예쁜 그림들이 차례로 나타난다. ‘도미노로 그림 그리기’라 불렸다. 유튜브에서 검색해서 볼 수 있다. KCC는 소비자친화적이다. 2019년에는 박찬호 선수를 광고모델로 기용했고 최근에는 ‘기안24의 페인트 교실’이라는 광고로 신세대 네티즌들의 인기를 끌었다. 웹툰작가 기안24가 화가 밥 로스로 분장해서 쉽게 페인트 인테리어를 하는 영상이다.

자연은 원래 휘황찬란한 컬러의 세계지만 인간이 산업활동으로 만드는 모든 물체는 무채색에 가깝거나 보기에 아름답지 않다. 역사가 4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페인트가 그 문제를 해결해 준다. 건물과 시설물, 자동차, 선박, 항공기, 그리고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페인트가 필요치 않은 생산 현장이 없다. KCC는 국내에서 압도적 1위의 페인트회사다. 우리가 사는 도시의 외관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기업이다. 빌딩과 길에 다니는 차들이 모두 회색이라면 우리의 기분이 어떨까.

그러나 KCC는 도료회사에서 그치지 않고 첨단소재와 정밀화학 분야 사업확장도 진행해왔다. KCC는 IMF위기 때 실리콘사업에 착수해서 2004년에는 한국을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실리콘의 상업적 생산에 성공한 나라로 만들었다. 같은 해 영국의 실리콘회사 바실돈을 인수했고 2019년에는 미국의 유서깊은 실리콘기업인 모멘티브(Momentive)를 인수했다. 모멘티브는 에디슨이 창업한 GE에서 분할되어 나왔던 회사로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 신은 실리콘 소재 부츠를 제작한 회사다. 모멘티브 인수가는 30억 달러로 삼성의 하만, 두산의 밥캣 인수에 이은 국내기업 3대 해외 M&A다. 모멘티브는 미국의 다우코닝에 이어 독일의 와커와 함께 세계 2대 실리콘·석영기업으로 외형이 27억 달러를 넘는다.

KCC는 산학협력과 청년 교육지원에도 아낌이 없다. 특히 2019년 9월에는 정상영 명예회장과 KCC의 170억 원 기부로 아산이 창학했던 울산대학교에 새 기숙사가 준공되었다. ‘KCC생활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4층 건물이 504명을 수용할 수 있다. 200KW 태양광 발전설비도 갖추고 빗물을 조경용수로 활용하는 등 친환경 기술과 설비가 적용됐다. 친환경은 사회공헌과 함께 KCC의 중점가치다. 139건의 친환경인증을 보유한다. 준공식에 참석한 정몽진 회장은 KCC생활관이 단순한 기숙사를 넘는 교육, 문화의 공간으로 “젊은 인재들이 미래를 꿈꾸는 요람”이 되기를 희망했다.

‘스레트’는 점판암 슬레이트(slate)의 옛 표기다. 골슬레이트는 가옥, 창고 등의 지붕재로 가장 많이 쓰인다. 아직도 ‘스레트지붕’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 슬레이트는 625전쟁 후 전후 복구와 국가재건에 큰 몫을 했던 소재이고 스레트지붕은 1970년대에 농촌의 초가지붕을 걷어내고 주택을 개량하던 새마을 운동의 대표적 이미지이기도 하다. 이 슬레이트 생산에서 출발해 개발시대를 지원했던 건자재 회사 KCC가 한국 최대의 도료회사를 거쳐 이제 약 8천 종의 실리콘제품을 생산하는 디지털시대 첨단소재의 글로벌 강자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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