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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사에 '호부호형'을 허하라 [thebell note]

조영갑 기자공개 2020-09-25 07:33:34

이 기사는 2020년 09월 23일 07:3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 가지만 부탁드립니다. 기사를 쓰는 것은 기자님의 자유지만 주요 고객사(엔드유저) 상호를 직접적으로 명기하는 것만은 재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만 기사에서 그 고객사와의 거래가 잘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꼭 드러났으면 좋겠습니다.”

코스닥 디스플레이 관련 장비업체 담당자와의 대화 내용이다. '고난도'의 청탁 아닌 청탁을 받고는 아찔했다. '서자' 홍길동의 처지를 대변하는 명대사가 떠올랐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지만, '주요 가족 구성원'과는 잘 지내고 있으니 제 처지에 대해서는 과히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요 고객사.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등장하는 용어다. 보통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를 의미한다. 벤더사(협력사)로 관계를 맺고 있는 코스닥 반도체, 디스플레이 관련 기업에게는 홍길동의 아버지나 형 같은 존재다. 부르고 싶지만 차마 부르지 못하는.

그 중심에는 NDA(비밀유지협약)가 있다. 품질이나 수급 시스템의 관리가 엄격한 삼성전자나 삼성디스플레이, SK하이닉스 등의 대기업은 보통 협력사와 파이프라인 개발을 진행할 때 폭넓은 수준의 NDA를 걸어둔다. 관련 기술개발의 내용은 물론 계약주체(상호 등) 역시 포함된다. 공급계약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는 국가 핵심산업인데다 기술 유출의 위험성이 커 이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다. 거래 사실 자체도 제품 '레시피(recipe)'에 포함된다는 시각이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기술격차의 갭(gap)이 날로 얇아지는 상황에서 의도치 않은 레시피 공개는 경쟁력과 직결된다. 특히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겨냥한 중국 파운드리의 추격은 전방위적이다. NDA는 큰 틀에서 'made in korea' 원천기술에 대한 정보보안이다.

하지만 자본시장 내에서 '재무활동'을 영위해야 하는 협력사에게 NDA는 딜레마로 작용하기도 한다. 보유기술과 파이프라인에 대해 시장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조차 차단 당하기 일쑤다. 공급계약 공시가 있지만 기업의 유망성과 방향을 가늠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코스닥 반도체 업체를 취재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말씀드리고 싶어도 NDA 때문에 곤란하다"는 말이었다. '주요 고객사' 호칭은 눈물겨운 IR 용어다.

자물쇠는 기술개발에 단단히 걸어두면 된다. 자본시장에서 기업공개의 원칙은 '투명함'이다. 이것이 건강한 재무활동으로 이어진다. 협력사 입장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거래한다는 사실은 보유 기술이 세계 일류 수준이라는 말과 같다.

그보다 좋은 홍보, IR 소스가 없다. 공개하는 협력사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거래처가 다수일 때나 가능하다. 최소한의 '호부호형'을 허하는 아량이 필요하다. 협력사들이 주요 고객사의 서자는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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