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bell

피플&오피니언

SK루브리컨츠와 베니스

한희연 M&A부 차장공개 2020-10-05 06:40:00

이 기사는 2020년 09월 29일 07:4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인수·합병(M&A) 거래 당사자는 통상 딜을 진행할 때 직접 매물명을 언급하기 보다는 프로젝트명을 활용한다. 보안 유지를 최우선으로 하는 M&A딜의 특성이 반영된 관례다.

프로젝트명은 매각 주관을 담당하는 IB 고위임원이나 매각을 추진하는 전략적투자자(SI)나 재무적투자자(FI)의 임원급 인력들이 정하곤 한다. 회사와 같은 앞글자를 쓰는 국가나 지명을 따기도 하지만 특별한 의미를 담는 경우도 종종 있어 딜의 결과에 따라 프로젝트명과의 관련성이 회자되기도 한다.

실제로 최근 있었던 M&A시장의 주요 딜중 아시아나항공 매각의 프로젝트명은 'Genesis'였다. 제네시스는 성경의 구약성서 첫장이다.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로 시작돼 이스라엘 최초 족장들의 이야기를 담으며 존재의 기원을 설명하고 있다.

물론 당시 프로젝트명을 큰 의미없이 지었을 수도, 다른 의미를 생각하고 지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HDC현대산업개발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이후에도 1년여간 눈치싸움이 이어졌고 끝내 딜이 결렬되자 일각에서는 프로젝트명 대로 딜이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초 M&A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NXC(넥슨) 매각의 경우 프로젝트명은 'Nova'였다. NXC 매각은 거래규모가 10조원까지 예상되며 당시 가장 주목받던 딜이었다. 몇달에 걸쳐 주요 인수후보들과 프로세스를 진행했으나 결국 가격갭을 좁히지 못하고 매각측은 의사를 철회했다.

물론 노바(Nova)는 넥슨의 첫글자인 N을 따 지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가장 주목을 받던 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딜이 중단되자 이 또한 딜의 운명이 프로젝트명을 따라간 것 아니냐는 얘기가 회자됐다. 노바는 망원경으로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던 별이 갑자기 밝아져 수일내에 광도가 수만배까지 이르다가 광도가 극에 달한 후에는 급격히 원래의 어두운 밝기로 돌아가는 별이다.

지난해 웅진그룹이 코웨이를 인수한 후 3개월만에 눈물의 재매각을 시도했을 때 프로젝트명은 'code'였다. 코드(code)는 암호, 부호를 뜻한다. 실제로 코웨이 딜은 예비입찰 단계에서 기존에 인수를 검토했던 원매자들이 모두 응찰을 하지 않아 딜이 난항에 빠질 뻔 했다. 하지만 넷마블이 깜짝 후보로 등장하며 우여곡절 끝에 딜이 성료된 케이스라 '복잡한 암호를 푸는 것'처럼 딜이 이뤄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최근 SK루브리컨츠 지분 매각을 위한 마케팅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SK루브리컨츠는 지난 7년간 3번의 기업공개(IPO)와 1번의 매각시도를 해 왔던 딜이다. 그만큼 이번 매각추진의 성료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경영권이 아닌 지분 49% 매각건인데다 딜의 규모도 큰 편이라 대형 PEF 위주의 참여가 전망된다. 다만 인수 가능 지분율이 애매하고 원매자의 희망가격 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인식은 인수전 참여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되기도 한다.

현재 매각측은 셀링 포인트를 담은 티저레터 등을 배포하고 있다. 주로 프리미엄기유 시장 내 지위와 긍정적 업황 전망 등을 어필하며 인수전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물론 현재 국내외 기유와 윤활유 시장에서 SK루브리컨츠의 시장 지위는 매우 탄탄하며 이는 당분간 유지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내연기관 수요가 줄어들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상황에서 원매자들의 계산기 두드리기가 한창 진행되는 모습이다.

SK루브리컨츠의 이번 지분 매각 프로젝트명은 베니스(Venice)다. 이탈리아 북동부의 항구도시인 베니스는 유럽과 중동 전역에 걸친 교역과 비즈니스의 중심지로 오랜기간 번영을 누렸다. 현재도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 전세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사주 위에 지어져 기본적으로 지반이 약한 탓에 해수면 상승과 지반침하로 수몰 위기에 놓인 도시이기도 하다.

때문에 일각에선 프로젝트명 베니스를 두고 '이러다 이번 딜 또한 가라앉는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그만큼 이번 딜의 난이도가 높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훗날 SK루브리컨츠의 프로젝트명은 '지반침하' 혹은 '번성한 도시' 중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궁금해진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주)더벨 주소서울시 종로구 청계천로 41 영풍빌딩 5층, 6층대표/발행인성화용 편집인이진우 등록번호서울아00483
등록년월일2007.12.27 / 제호 : 더벨(thebell) 발행년월일2007.12.30청소년보호관리책임자김용관
문의TEL : 02-724-4100 / FAX : 02-724-4109서비스 문의 및 PC 초기화TEL : 02-724-4102기술 및 장애문의TEL : 02-724-4159

더벨의 모든 기사(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copyright ⓒ thebell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