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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민의 Money-Flix]본질을 애써 외면한 직장 판타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재벌기업 실제 사건 모티브…'해외 자본' 안일한 악당을 선택한 영화

이철민 VIG파트너스 대표공개 2020-11-03 11:25:35

[편집자주]

많은 영화와 TV 드라마들이 금융과 투자를 소재로 다룬다. 하지만 그 배경과 함의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는 참인 명제다. 머니플릭스(Money-Flix)는 전략 컨설팅 업계를 거쳐 현재 사모투자업계에서 맹활약 중인 필자가 작품 뒤에 가려진 뒷이야기들을 찾아내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려 한다.

이 기사는 2020년 11월 03일 11:23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 3월 11일, <다크 워터스>라는 제목의 영화가 국내에서 개봉됐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환경 관련 소송’ 사례로 꼽히는 듀폰의 PFOA 유독성 은폐 사건을 다룬 영화다. <파 프롬 헤븐>, <캐롤> 등의 작품을 통해 사회파 감독으로 호평받는 토드 헤인즈가 감독하고, 마크 러팔로와 앤 헤서웨이 등 스타들이 대거 출연해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영화는 2016년 <뉴욕 타임스>에 실린 특집기사 ‘듀폰에 최악의 악몽이 된 변호사’를 기초로, 듀폰을 상대로 한 15년간의 소송에서 승리한 변호사 롭 빌럿의 이야기 다룬다. 충격적인 것은 영화 중반에 PFOA가 프라이팬을 비롯해 다양한 생활용품에 사용된 코팅제 테프론(Teflon)의 원료라는 것이 밝혀지고, 그 독성을 대대적으로 다룬 우리나라 TV뉴스 장면까지 등장한다는 것이다.

재벌기업의 화학물질로 일으킨 환경오염 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2000년에 개봉되어 줄리아 로버츠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긴 <에린 브로코비치>에서도 다뤄졌다. 한가지 큰 차이점이라면 <에린 브로코비치>의 경우, 변호사가 아니라 변호사 사무실에서 서류 정리 업무를 하던 유쾌한 싱글맘이 주인공이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을 고졸 여사원들이 파헤친다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설정은 <에린 브로코비치>와 유사하다는 면에서 기대를 갖게 하기 충분했다. 한 재벌기업의 운명을 바꾸고, 새로운 산업을 탄생시킨 심각한 사건을 상업 영화로 탈바꿈 시키는데 있어 적절한 접근방법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 사건이 시작된 것은 1991년 3월 14일, 구미공업단지 안의 두산전자(현재 ㈜두산의 전자BG)에서 페놀 30여톤이 유출돼 상수원 취수장에 유입되면서부터 였다. 수돗물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대구 시민들의 신고가 빗발치자, 취수장에서 냄새를 없애겠다고 다량의 염소 소독제를 투입하면서 문제가 커진다. 페놀이 염소와 반응해 클로로페놀이 되면서 독성이 더욱 강해졌기 때문이다.

온 나라가 떠들썩할 정도로 사태가 심각했음에도, 고의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두산전자의 조업은 20일만에 재개됐다. 그리고 며칠 뒤인 4월 22일 또 다시 페놀 1.3톤이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로 인해 악화될 대로 악화된 여론을 등에 업은 검찰의 수사결과, 1990년 11월부터 정화 비용을 아끼기 위해 페놀 폐수를 무단 방류해온 사실까지 드러난다.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을 모티브로 했으나 큰 아쉬움을 남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그 결과 대구 환경처 직원 7명과 두산전자 직원 6명 등 13명이 구속되고 환경처 장관까지 경질됐다. 시민들의 반발도 아주 거셌다. OB맥주 등 소비재 분야에 집중하던 두산그룹에 대한 불매운동이 퍼지면서, 두산그룹 회장이 사퇴를 결정해야 했다. 이를 틈타 만년 2위였던 크라운맥주는 1993년 ‘깨끗한 천연 암반수’를 내세운 하이트를 출시하면서 사상 최초로 OB맥주를 제치게 된다.

이 사건은 당시엔 불법이었던 생수 판매가 허용되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수돗물에 대한 불신으로 불법 생수 시장이 만들어졌는데, 지속적으로 위생 관련한 문제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1994년 헌법재판소가 국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생수판매 금지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8000억 규모에 이르는 현재와 같은 생수 시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이런 사실들을 다큐처럼 다뤄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힘겹게 실체적 진실을 파헤친 주인공이 존재하지 않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다만 환경에 대한 낙후된 인식을 가지고 있던 재벌그룹의 오너와 경영진들이 아니라, 뜬금 없이 국내 기업을 사냥하려는 해외 펀드를 등장시켜 사건의 주범이자 악당으로 설정하는 우를 범한 것이 너무 안타깝다.

이 때문에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적대적 M&A 시도와 이를 막아내는 과정이 전혀 개연성 없이 전개되고, 재벌기업 오너들을 오히려 피해자로 보이게 만드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 결과 고졸 여사원들이 주체적인 커리어 우먼으로 당당하게 자리를 찾는 과정이, 결정적인 순간에 힘을 잃은 것이다. 어설프고 안일한 선택이 가져온 필연적 결과라 안타까울 따름이다.

MBC 낙동강 페놀 오염(1991): https://www.youtube.com/watch?v=hZkYhPmv5aQ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예고편: https://www.youtube.com/watch?v=Vg8VH4BH6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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