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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채권 '구색 맞추기' 논란 [thebell note]

남준우 기자공개 2021-01-15 13:08:03

이 기사는 2021년 01월 13일 11:5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사실 ESG 채권이라는 게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제한되긴 합니다만 사용처를 이것저것 가져다 붙이고 포장만 잘하면 사회적채권, 지속가능채권, 녹색채권 종류 상관없이 어떻게든 만들어낼 수는 있어요."

한 업계 관계자에게 ESG 채권에 대해 묻자 돌아온 답변이다. 친환경 전환, 사회적 책임 강조 등 시장 분위기 변화에 맞춰 민간 기업 중심으로 발행량은 증가하지만 '진정성'이 의심되는 사례도 있다는 뉘앙스였다.

롯데글로벌로지스 ESG 채권은 진정성보다는 '구색 맞추기'에 초점이 맞춰진 듯하다. 롯데글로벌로지스를 비롯한 택배업계는 최근 택배 근로자 과로사 등 노동자 처우 개선과 관련된 부분에서 항상 비판을 받아왔다.

처음에 사회적채권을 발행하려고 했던 이유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사회적채권으로 조달한 자금을 중부 메가 허브터미널 물류 첨단화에 사용하려고 했었다. 현장에서 고된 노동에 힘들어하는 근로자의 열악한 근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까대기' 논란이 ESG 채권 발행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 같았다. 까대기는 택배 상하차 작업을 의미하는 업계 속어다. 최근 택배업계에서 자주 발생한 근무자 과로사의 주요 원인으로 알려졌다.

ESG 채권 사전검증을 담당한 한국신용평가는 '발행기업 환경·사회적 공헌 활동' 섹터에 관련 내용을 담을 예정이었다. 평가에 부정적인 내용이 담기는 만큼 롯데글로벌로지스 입장에서는 부담이었다.

곧바로 지속가능채권으로 변경 작업에 들어갔다. 친환경 전기 화물차, 물류 BPO와 차세대 택배 시스템 확충이라는 새로운 사용처를 제시했다. 여기에 30억원 정도를 직원 식당 복지, 지역 사회 홍보 등에 투자하는 방안으로 지속가능채권 구색을 맞췄다.

하지만 지역 사회 홍보가 아니라 회사 홍보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 지속가능채권 발행이 불가능했다. 결국 친환경 전기화물차, 물류 BPO, 차세대 택배 시스템에 녹색채권 500억원을 조달하기로 했다.

롯데글로벌로지스 입장에서는 필요한 투자다. 하지만 채권 조달 이유에 '사회적 가치'가 배제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는 점은 아쉽다. 첫 ESG 채권 발행이라 신중했던 점은 이해 가지만 꼭 해결해야 하는 택배 기사 근무 환경은 뒷전으로 밀렸다.

ESG 채권 발행이 진정한 의의를 가지려면 재무적 성과 외에 사회적 가치를 기준으로 투자해야 한다. 기업의 윤리성이 강조되기에 금리나 비용, 조달 규모 같은 결과만으로 성공 여부를 따질 수 없다.

물론 녹색채권 발행으로 친환경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물류 시스템 효율화로 택배 기사들의 과중한 업무 부담도 일부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채권→지속가능채권→녹색채권'으로 변화무쌍하게 의사결정을 진행한 점에서 사회적 가치 실현에 대한 진정성은 느끼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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