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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세권과 15분 도시 [WM라운지]

홍지은 세빌스코리아 상무공개 2021-01-27 10:07:39
2021년이 밝았다. 2020년보다 나은 한 해를 바라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와 함께 전하는 "건강하시고요"가 이렇게 간절하고 진심으로 와닿은 적이 없었다.

지난해부터 이어온 거리 두기가 다시 2주간 연장됐다. 갈 수 없는 곳, 모일 수 없는 인원, 외식할 수 없는 시간들이 늘어나며 타인에게 피해 주게 될까 우려하지 않고 온전히 나의 자유의지로 할 수 있는 실외활동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한 동네 한 바퀴 밖에 없다.

이삼 년전에 부동산 업계에서 '슬세권(슬리퍼+세권)'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집 근처에서 일상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주거 트렌드를 지칭하는 말로 '맥세권(맥도날드+세권)'과 '스세권(스타벅스+세권)'에 이어 등장했다. 슬리퍼와 세권의 합성어로 실내복이나 슬리퍼와 같은 편한 복장으로 마트, 쇼핑몰, 영화관, 커피전문점, 은행 등과 같은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편리한 주거 권역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 당시 슬세권의 유행은 기본적으로 젊은 세대 중심의 1~2인 가구 증가와 맥락을 같이 했다. 온라인 쇼핑에 익숙하고 가족들을 위해 대형마트에서 다량으로 구매하기 보다는 편의점에서 내가 필요로 하는 물건을 그때 그때 구매하는 것이 익숙한 젊은 세대들이 주거지를 결정할 때 집주변의 편의시설 여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이렇게 특정 소비자에게만 한정된 유행으로 생각되던 슬세권이 지난해 다시 부각됐다.

'코로나19'사태 장기화로 소비자들의 행동반경이 급격히 쪼그라들자 전통 상권 지형이 구조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외출이 줄고 대신 근거리 쇼핑은 잦아지면서 거주지역에서 슬리퍼를 끌고 다닐 만한 거리에 있는 여러 편의시설이 있어 이용이 가능한 슬세권의 중요성이 자연스럽게 확산됐다. 상권의 중심축이 유흥가나 도심에서 주택 밀집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은 전국에 퍼져 있는 편의점 매출에서 실제로 확인됐다.

국내 대표 편의점 브랜드 A사의 전국 주요 상권 100개 점포씩을 무작위 샘플 채취해 2020년 1~11월 매출을 살펴본 결과, 주거지역 상권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8% 증가했다. 오피스지역 상권은 증가율이 1.1%로 지난해와 비슷했다. 반면 대학가 유흥지역 상권은 6.2% 떨어졌고, 리조트나 관광단지 등 여행지역 상권은 8.4%나 급감했다.

우리나라의 슬세권이 확대된 모델이 프랑스 파리를 비롯, 캐나다 오타와, 미국 포틀랜드, 호주 멜번 등 해외 도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15분 도시'라고 생각된다. 15분 도시는 주민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도보, 자전거 또는 대중교통으로 15 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도시 설계에 대한 접근 방식이다.

이 개념은 이웃 수준의 세심한 계획에 중점을 두어 각 지역이 음식, 오락, 녹지 공간, 주택, 의료, 소규모 사업체, 일자리까지 포괄해 완전한 삶을 지원하는 데 필요한 기능을 근거리에서 제공하고 그리고 중요한 목표의 하나는 궁극에는 자동차가 필요 없는 삶을 지향하고 있다.

2019년까지는 15분 도시 개념은 기후 변화에 대한 대안으로 나타났으나 2020년에 코로나19를 겪으며 이동 제한, 통금, 도시 봉쇄를 경험한 사람들이 생활의 불편함을 뛰어넘어 생존을 위협받게 되자 새롭게 주목하고 있다. 15분 도시가 과연 가능한가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하지만 코로나19이후 회복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준비하면서 그 도시와 지역에 맞게, 긴 통근과 자동차 우선 대중교통을 자전거와 보행으로 대체하면서 배기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주민의 건강을 높이며 다른 용도로 도로와 주차 공간을 확보해가며 점점 더 호응을 얻고 있다.

출퇴근 시, 밀집된 대중교통시설 내에 갇혀 장시간 이동하면서 혹시 모를 감염 우려에 마스크를 제대로 썼는지 가방에 손소독제는 있는지 다시 확인하는 것이 버릇이 됐다. 더구나 이번 1월에는 예기치 못한 폭설로 퇴근 못하고 근처 호텔에서 자고 나왔다거나 아직 퇴근 중인데 벌써 출근시간이라는 등의 사태를 보고 겪다 보니 슬세권이나 15분 도시가 시도에 그치지 않고 정착시켜야 할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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