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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민의 Money-Flix]<귀멸의 칼날>에서, 은행원 한자와 나오키를 만나다일본 역대 최고 극장 흥행과 TV 시청률을 기록한 두 작품에서 발견한 공통점들

이철민 VIG파트너스 대표공개 2021-02-18 11:34:23

[편집자주]

많은 영화와 TV 드라마들이 금융과 투자를 소재로 다룬다. 하지만 그 배경과 함의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는 참인 명제다. 머니플릭스(Money-Flix)는 전략 컨설팅 업계를 거쳐 현재 사모투자업계에서 맹활약 중인 필자가 작품 뒤에 가려진 뒷이야기들을 찾아내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려 한다.

이 기사는 2021년 02월 18일 11:30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해 10월 일본에서 개봉된 <귀멸의 칼날>(부제 <무한열차>)은, 동명의 원작 만화의 일부 내용을 극장판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기존에 만들어진 TV판이 팬데믹 와중에 OTT에서 큰 호응을 얻긴 했지만, 극장판이 개봉되던 시점에는 그리 큰 주목을 끌지 못했었다. 그러나 개봉 직후부터 엄청난 흥행을 시작하더니, 12월말엔 역대 일본 극장 수익 기록을 깨는 대사건을 이뤄냈다.

개봉 후 지난 2월 14일까지 <귀멸의 칼날>이 벌어들인 일본 내 극장 수익은 372억엔(약 3900억원). 이는 기존 1위였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년)의 317억엔, 2위였던 <타이타닉>(1997년)의 262억엔 그리고 3위였던 <겨울왕국>(2013년)의 255억엔을 한참 뛰어넘은 금액이다. 이 추세라면 조만간 400억엔을 넘기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전대미문의 흥행에도 불구하고 <귀멸의 칼날>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별다른 경쟁작이 없는 상태에서, 일본 정부의 잘못된 소비진작 정책이 한창일 때 개봉된 덕을 봤다는 것이다. 액션 장면의 뛰어난 작화와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흥행 요인인 것은 맞지만, 걸작으로 추앙받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능가할 만한 수준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평가가 어떻든 <귀멸의 칼날>이 일본 극장 흥행 1위 기록을 매일 다시 쓰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체 그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흥미롭게도 이 애니메이션과는 전혀 관계 없어 보이는 TV드라마 <한자와 나오키>에서 그 해답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일본인들의 정신세계 깊숙이 박혀 있는 이른바 ‘소년의 복수 집착증’이 공통적으로 발견되기 때문이다.

버블 붕괴 이후 일본 은행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뤄 역대 최대 시청율을 기록한 <한자와 나오키>

<한자와 나오키>는 경제 소설의 대가 이케이도 준의 소설을 원작으로, 도쿄중앙은행이라는 가상의 은행에 다니는 주인공인 한자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룬다. 2013년 시즌1 방영 당시 최종화 시청률이 무려 42.2%로, 헤이세이(平成) 시대(1989~2019) 1위를 기록했다. 2020년 방영된 시즌2 역시 최종화 시청률이 32.3%로, 레이와(令和) 시대(2019~)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드라마는 고등학생이던 주인공 한자와가 제조업체 사장이던 아버지의 자살을 목격하면서 시작된다. 은행이 무리하게 대출금을 회수하면서 그런 비극이 일어난 것을 알게 된 한자와는, 그 복수를 위해 바로 그 은행에 입사한다. 그 뒤 거듭되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동료들의 도움을 통해 극복해가며,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몬 임원을 포함해 은행 내 부정한 인물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

그렇다면 <귀멸의 칼날>은 어떨까? 주인공 탄지로는 일본 다이쇼(大正) 시대(1912~ 1926) 산골마을에 사는 소년이다. 어느 날 가족들이 혈귀들에게 몰살당하는 비참한 사건을 겪게 된다. 그 복수를 위해 탄지로는 혈귀들을 처단하는 귀살대에 합류하고, 수련을 통해 차츰 자신의 기량을 길러가며 주위 동료들과 함께 하나씩 혈귀들을 처단해 나간다는 것이 내용이다.

전혀 다른 시대를 무대로 전혀 다른 주인공들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놀랍도록 유사한 이 두 작품의 공통점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소년의 복수 집착증’이다. 가족의 희생을 목도한 소년이 그 원흉에게 복수하기 위해 실력을 갈고 닦아서 완벽한 복수를 이뤄내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인공의 과도한 감정 표현이 난무하는 것도 똑같다.

중요한 것은 이 두 작품에서만 이런 공통점이 발견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에반게리온>, <직격의 거인> 등 한 시절을 풍미했던 애니메이션들은 물론이거니와, <거짓말의 전쟁> 등 인기 TV드라마들도 매우 유사한 설정을 가지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일본의 경우처럼 큰 인기를 끈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이에 대하여 2차대전의 패망 과정을 청소년기에 경험하고 부흥기를 거쳐 버블시대까지 살아간 주류 세대들의 트라우마가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경제 성장을 통해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복수에 성공한 자신들의 경험을 투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세대들이 모두 은퇴한 최근까지 이런 작품들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그보다는 버블 시대가 끝나고 경제사회 전반의 침체를 극복하고 재기하고 싶어하는 이른바 포스트-버블시대 일본인들의 잠재적인 욕구를 반영하고 있다는 해석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한국을 비롯한 경쟁 상대가 더 많아지고 강해진 상황을 탈출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탄지로와 한자와에게 깊게 투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엔 그런 욕구가 실현될 가능성이 매우 낮아 보이지만 말이다.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편> 예고편: https://www.youtube.com/watch?v=o9FX-0luJog
<한자와 나오키> 예고편: https://www.youtube.com/watch?v=2BPdodckpFw (시즌1,2 모두 왓챠에서 시청 가능; 처음 가입시 2주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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