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1년 10월 19일 07:4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974년생 이은형 하나금융그룹 부회장(하나금융투자 대표)은 올해 초 취임하자마자 복장 자율화에 나섰다. 불필요한 격식을 없애는 방향으로 조직 문화에 과감히 변화를 주고 있다. 주니어 직원을 중심으로 슈트와 구두를 하나둘씩 벗기 시작했다.신한금융투자 역시 지난달 복장의 전면 자율화를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기존 관행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혁신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증권가에서는 엄격한 정장 차림을 경직된 기업 문화의 산물로 지목하고 있다.
하나금투 WM센터의 한 센터장도 점심식사 자리에서 이제 양복을 벗겠다고 선언했다. 복장 자율화가 도입된 지 수개월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출근 때마다 정장을 갖춰 입던 인사다. '그래도 내가 이 센터의 지배인인데…"라는 생각에 차마 넥타이와 양복 차림을 벗어던질 수 없었다.
결심의 계기는 도넛을 파는 카페 노티드(knotted)였다. 이 도넛을 사고자 기본 1시간을 기다리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행렬에 충격을 받았다. 글로벌 브랜드인 던킨과 크리스피도넛 간판이 뒤덮은 한국 시장에서 도넛 장사에 나선다면 검토 보고서도 보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 이미지로 승부를 건 마케팅이 먹혀들자 흔한 도넛 하나에 젊은층이 열광하기 시작한다.
그는 비즈니스 트렌드 변화의 일선에 서있으면서도 어느새 사고의 틀이 굳어진 것을 절감한다고 했다. 새로운 세대의 전혀 다른 소비 성향과 사고 흐름을 읽지 못하는 건 단지 세월 무상의 감상에서 끝나지 않는다. 증권맨이자 센터장으로서 돈 벌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신호로 여겼다. 이 경각심이 커지자 일단 틀에 박힌 옷차림부터 바꿔 나가기로 했다.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으로는 도무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인사도 있다. 나이가 지긋한 고객이 무례하다고 느낄까 봐 걱정된다. 아직 상사 눈치를 살피는 입장에서 스스로를 옥죄기도 한다. 어쩌면 전장에 나서면서 사회 초년병부터 함께 한 전투복을 벗는 심정일지 모른다. 그만큼 고정 관념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는 건 쉽지 않다.
오랫동안 관행에 젖어 있을수록 당연히 그 관습과 작별하는 게 어렵다. 그 대신 그만큼 그 도전도 값질 수밖에 없다. 우버(Uber)가 글로벌 시장을 장악한 시대에 '타다 금지법(개정 여객자동차법)'이 통과된 게 한국 시장이다. 하지만 이 복잡한 사회 구조 속에서도 누군가 안주하기보다 거듭나고자 발버둥치고 있다. 50세가 훌쩍 넘은 그도 기어코 새로운 흐름에 올라탈 것이다.
몇 달 뒤 이 센터장과 간만에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떠올려본다. 아마도 빳빳한 와이셔츠에 넥타이 대신 캐주얼 정장을 입는 정도로 스스로와 타협하지 않을까 싶다. 세월의 무게감에 멋쩍게 웃는다면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고 화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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