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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의 잃어버린 시간

길진홍 기자공개 2021-12-06 08:06:33

이 기사는 2021년 12월 02일 07:5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 2년. 연초 공포 속에서 포스트코로나 희망을 안고 숨가쁘게 달려온 유통업계가 한해를 마감한다. 연일 쏟아지는 주요기업 임원인사가 올해 끝이 왔음을 실감케 한다.

'떠나는 자와 남는 자' 연명부가 담긴 서류 한장에 희비가 교차한다. 돌이켜보면 한치 앞이 안보이는 안개 속에서 앞사람 발뒷꿈치를 보고 따라 걸으며 생명선을 유지해온 듯 싶다.

특히 유통업계 터줏대감인 롯데그룹은 작년과 올해 누구보다 큰 어려움을 겪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소비가 폭발하는 가운데 이커머스로의 소비자 대이동이 불씨가 됐다. 대규모 실탄을 쏟아붓고 백방으로 뛰었으나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역부족이었다.

무엇보다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소비 트렌드의 급격한 변화 속에 비용이 눈덩이 처럼 불어나고 현금창출이 둔화되면서 재무가 급격히 훼손됐다. 코너에 몰리면서 주력 계열사 희망퇴직과 점포철수 카드를 꺼냈다.

많은 이들이 반세기 넘게 고착화된 오프라인 중심 기업문화와 사업구조를 원인으로 꼽는다. 롯데의 위기때 마다 체질개선과 인적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이것만으로 유통왕국 롯데의 부진을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오프라인을 근간으로 하는 신세계와 현대백화점그룹도 처한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았으므로. 시간을 거슬러 롯데일가 형제의 난으로 촉발된 경영권 분쟁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롯데는 2015년 창업주의 장남인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이사직 해임을 시작으로 4년 남짓 경영권 분쟁에 시달렸다. '신동빈·신동주' 서로를 겨냥한 대표이사 해임과 소송전으로 얼룩진 형제갈등이 지속됐다. 당시 신동빈 회장의 대국민 사과에 이어 가족간 중재 시도가 있었지만 사태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 싸움은 2019년 초 신 회장이 롯데홀딩스 회장으로 복귀할 때까지 이어진다.

당시 격동의 혼란 속에서 임직원들이 보여준 응집력은 대단했다. 37개 주력 계열사 사장들이 잇달아 신 회장을 지지하고 아래 임직원들이 일산분란하게 움직였다. 그룹 컨트롤타워인 정책본부와 재무, 홍보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가신들이 온몸으로 방어막을 쳤다. 50여년간 유지돼 온 '롯데왕조'와 '새로운 주군'을 그렇게 지켜냈다.

그러나 비즈니스세계에서 4년은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그사이 이커머스 선두주자로 대변되는 쿠팡은 비대해졌다. 어느새 오프라인 무대의 경쟁사들은 이커머스에 한발을 걸치고 있었다. 그리고 2020년 벽두 코로나19를 맞는다. 결과적으로 비대면으로 가는 길목에서 골든타임을 놓친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분쟁의 소용돌이에서 소방수 역할을 하던 주역들이 줄줄이 짐을 싸고 있다. 이미 소진세 부회장과 황각규 부회장, 허수영 부회장 등이 떠났고 올해는 그룹의 CFO를 지냈던 이봉철 호텔BU 사장이 고문으로 물러났다.

형제간 갈등으로 밤낮으로 분주하던 홍보맨들도 일부 계열사로 흩어지거나 퇴직수순을 밟았다. 체질개선을 위한 인적쇄신과 세대교체 명분 속에 하나둘 무대에서 사라지고 있다. 뒤집어 보면 반세기 넘게 지속된 순혈주의와 축적한 인적자원이 가져올 순기능을 놓치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강희태, 이봉철, 윤종민, 민명기, 황범석, 정경문, 김현식, 기원규, 이병희, 류경우, 정원헌.
롯데의 2022년 정기인사에서 직함을 떼고 물러난 임원들이다. 이제 올드보이(OB)로 남은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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