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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걸이 코걸이' 건설사 중대재해처벌법 [thebell desk]

김장환 건설부동산부장공개 2022-01-24 07:35:42

이 기사는 2022년 01월 14일 07:5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A 건설사는 지난해 본사에 주요 사업장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CCTV 관제센터를 만들었다. B 건설사는 공사 현장 인부들의 안전모에 카메라를 설치해 본사에서 현장 상황을 살필 수 있게 했다. 건설 현장의 사고발생 여부를 모니터링하고 즉시 대응하기 위해 일종의 컨트롤타워를 구축했다.

이처럼 주요 건설사들은 인명사고 방지 차원의 다양한 대응책을 건설 현장에 속속 도입하고 있다.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법인뿐 아니라 대표이사 개인까지 형사처벌을 받도록 하는 강력한 법이다.

법안 도입에 따른 긍정적 변화로 비춰진다. 하지만 건설사 관계자들의 속내를 들어보면 김이 좀 빠진다. "면피용일뿐"이란 게 대다수 건설사 관계자의 말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예를 들면 1번 모니터 사업장에서 위험 현장에 갑자기 누가 쑥 들어갔는데 이걸 본 순간 바로 현장에 연락을 해도 사고는 이미 벌어진 뒤일 수밖에 없다"며 "보상 등 의도를 갖고 누군가 악용한다면 막을 방법이 없는데 CCTV를 일일이 들여다본다고 해결될 문제인가"라고 반문한다. 결국 사고가 발생했을 때 "우리가 이만큼 안전시스템을 갖췄지만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사고"란 주장을 하기 위한 도구란 얘기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법안의 애매모호함에서 찾을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4·9조(사업주와 책임경영자 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에서 말하는 '경영책임자'가 누구인지부터 명확하지 않다.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규정돼 있으니 현장소장일까. 정답은 '글쎄'다. 사업을 대표하는 이사도 책임 주체가 된다는 의미가 동시에 담겨 있다. 공사를 맡기는 원청사, 이를 현장에서 수행하는 하청사 중에서 과연 어느 쪽이 안전과 보건 의무를 책임져야 하는지도 불명확하다.

말 그대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선임해 안전 관리를 맡겨도 CEO가 법망을 피해갈 수 있을지 불확실한 판국이다. 해당 사안에 걸려 재판을 받고 법원에서 판례가 나와야만 그 기준이 명확해질 수 있다는게 건설사들과 법조계 시각이다.

해외에도 비슷한 법안이 있지만 우리가 실행하려는 법과 차이가 좀 있다. 2007년 '기업과실치사법'을 도입한 영국은 법인만을 처벌 대상으로 한다. 호주 4개주에서 통용되는 '형법 및 산업안전보건법'은 개인에 대한 처벌은 있어도 상한형(최대 무기징역)은 없다. 우리나라의 중대재해처벌법은 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이란 하한형을 걸어뒀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법이 된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너도 나도 "1호가 될 순 없어"만 외치고 있다. 대다수 건설사가 심판대에 오르는 첫 타자가 등장하면 그 재판을 보고 대응방안을 결정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애매모호한 법안이 근로자의 안전 보호보다 오히려 면피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버린 셈이다.

GDP 상위 국가 중 우리나라의 건설 산업 사고사망비율이 높다는 문제 의식에서 이번 법안 도입이 시도됐다는 점에서는 점수를 주고 싶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무작정 처벌 수위만 높이는 법안을 만든 게 과연 해법이라고 봤는지 되묻고 싶다.

우범지역의 범죄율을 낮추겠다며 '원스트라이크 아웃 무기징역'이란 강한 규제만 갖추는 게 능사는 아니다. CCTV를 늘리고 경찰 인력을 충원하고 가로등을 많이 설치하는 게 오히려 범죄예방의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지금의 중대재해법은 너무나 불완전한 상태에서 출범했다. 특정 세력의 이슈 몰이에 흔들리는 정부와 입법기관 국회 탓에 미숙한 법안이 탄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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