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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는 거짓말 [thebell note]

고진영 기자공개 2022-05-09 08:33:08

이 기사는 2022년 05월 06일 07:40 thebell 유료서비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낯선 땅 이방인’은 60년대 히피 운동에 불을 당긴 소설이다. 영향력이 대단해 SF를 주류문학으로 끌어왔지만 별로 SF스럽진 않다. 그보단 기존 문화의 위선에 대한 불만이 진짜 메시지다. 어딘지 고루해 취향은 아니었는데 아직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

화성에서 자라 거짓말을 못한다는 주인공을 두고 작가의 페르소나 ‘쥬발(Jubal)’은 반박한다. “가장 매끄러운 거짓말은 적당한 진실만 말하고 닥치는거야.”

틀린 사실을 내뱉지 않아도 속일 수는 있다는 얘기. 그러니까 작위의 거짓말(lying by commission)이 아닌 부작위의 거짓말(lying by omission)이다. 기업 경영에서도 빈번히 일어난다. 미국 심리학회(APA)에서 출판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경영자의 절반 이상이 이런 거짓말을 해왔다.

물론 반대 케이스도 있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을 보자. 이번 1분기 알파벳은 작년의 성장세에 한참 못 미치는 실적을 냈다. 그런데 알파벳 CFO인 루스 포랏은 컨퍼런스콜에서 2분기도 상황이 나쁠 것이라고 먼저 인정을 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옛 페이스북) CEO 역시 시장에서 메타의 독보적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며 2분기 실적이 전망치보다 낮을 것이라고 알렸다.

이렇게 부진을 미리 고백하는 투명함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네이버는 어닝쇼크 수준의 1분기 성적을 공시했는데 영업이익이 시장 예상을 10% 넘게 밑돌았다. 발표 열흘 전 최수연 CEO, 김남선 CFO가 기자간담회를 열었지만 '5년 뒤 연 매출 15조원 달성'이라는 희망찬 목표를 내놨을 뿐 실적에 대한 경고는 없었다.

네이버 측은 어닝쇼크에 대해 채용과 임금인상을 이유로 들었다. 일회적 현상일 뿐이며 간담회에서 제시했던 목표는 여전히 달성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사실일지라도 손해를 본 투자자들에겐 이미 늦은 설명이다. 실적 발표 후 네이버 주가는 10% 이상 떨어졌다.

한미약품의 경우 올 초 소액주주들에게 손해배상을 하라는 대법원 판결을 받았다. 2016년 규모가 1조원에 이르는 기술수출 계약이 파기됐으나 뒤늦게 공시했기 때문이다. 또 스마트폰 부품을 파는 업체 와이팜은 2020년 매출이 전년 대비 70%나 날아갔다. 삼성전자에 실적 대부분을 의존하던 기업이니 원인은 수주 실패였지만 이를 앞서 자진신고하지 않았다. 전과 비슷한 실적을 기대하던 투자자들로선 날벼락이 떨어졌다.

국내 IR 수준이 아직 뒤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CFO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로 소명이 꼽힌다. 투자자들은 감췄던 부진을 사후적으로 설명하는 소극적 소명이 아니라 부진의 조짐을 먼저 알리는 적극적 소명, 더 완전한 정직함을 원한다. 침묵도 때로는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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