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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회장의 '모자 세 개' [thebell note]

유수진 기자공개 2022-09-13 07:31:33

이 기사는 2022년 09월 08일 07:5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모자 3개를 쓰고 있습니다. 2개도 힘들었는데 앞으로 1년 동안은 3개네요."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자신을 소개할 때마다 모자 개수 얘기를 꺼낸다. 본업인 SK그룹 회장을 포함해 총 세 개의 직책을 맡고 있다는 의미다. 두 번째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고 마지막은 부산엑스포 유치 민간위원장이다. '감투를 쓰다'라는 관용어에서 따온 듯 싶다.

현재 최 회장의 상황을 가감 없이 잘 나타내주는 표현이다. 그는 세 개의 모자를 번갈아 쓰며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민간위원회 출범식 당시 "이제 제발 그만, 쓰고 있는 걸 벗기 전까지 다른 모자는 안 쓰겠다"던 너스레가 마냥 농담으로 들리지 않을 정도다.

요즘엔 세 번째 모자를 쓰는 빈도가 가장 높다. 업무 특성상 정부와 협업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대내외적 홍보가 중요한 일이다 보니 더욱 눈에 띈다. 정부대표단은 7일 국제박람회기구 사무국에 엑스포 유치계획서를 공식 제출했다. 최 회장의 활동이 앞으로 더 많아질 거란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당장 이달 중순 일본 방문을 앞두고 있다.

대한상의 회장 역할도 만만치 않다. 경제계 대표 자격으로 정관계 인사들과 만나 기업 활동의 애로를 전달하고 외국 경제단체들과 민간경협 활성화를 추진한다. 실제로 일주일에 한두 번은 아예 대한상의 사무실로 출근한다고 한다. 지난달부턴 '한식 세계화'에 일조하겠다며 공중파 TV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있다.

그렇다면 최 회장이 2·3번 모자를 쓰고 종횡무진 하는 동안 SK그룹 경영에는 문제가 없을까. 기본적으로 몸이 하나고 한정된 시간을 쪼개 여러 역할을 소화해야 하니 물리적으로 회사에 신경을 덜 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늘어난 모자 때문에 경영공백이 발생한다고 보긴 어렵다.

SK그룹은 이사회 중심 경영이 확고히 자리 잡은 곳이다. 이는 개인이 아닌 시스템에 의해 회사가 돌아간다는 의미다. 오너인 최 회장조차 예외일 수 없다. 그룹 전반을 총괄하지만 모든 결정이 그의 손에 달려있진 않다. 잠시 자리를 비운다고 잘 나가던 회사가 갑자기 방향을 잃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SK그룹 계열사 이사회에서는 사측이 올린 안건이 사외이사의 반대로 부결되는 경우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국내 재계에선 흔치 않은 케이스다. 작년 8월 SK㈜에선 최 회장이 반대한 투자안이 나머지 이사 전원의 찬성으로 가결되기도 했다.

심지어 통상 오너의 의중이 가장 강하게 반영되는 CEO 인사평가를 이사회가 한다. 이사회 산하 인사위원회가 기준을 정해 점수를 매기고 유임여부도 검토한다. 해임을 제안할 수도 있다. 오너가 막강한 권한인 인사권을 내려놨다는 점에서 상당한 파격이다. 이사회 중심 경영이 완벽히 안착했다는 증거기도 하다.

최 회장은 이러한 제반조건들을 갖춰 놓았기에 마음 편히 모자를 바꿔 쓸 수 있는 것 아닐까. 그것도 두 개 아닌 세 개씩이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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