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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이사회의사록과 회계장부 열람등사청구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2-11-01 09:00:01

이 기사는 2022년 11월 01일 09: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주주가 청구한 이사회의사록과 회계장부 열람등사청구에 응해 회사가 모두 53만 페이지에 달하는 78건의 자료를 제공했는데도 부족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2022년 7월 19일 자 미국 델라웨어주 대법원 판결이다(NVIDIA v. Westmoreland).

우리 상법은 주식회사의 주주가 소정의 요건을 갖추어 회사 이사회의사록의 열람등사와(제391조의3 제3항) 회계장부 열람등사를(제466조 제1항) 신청할 수 있게 한다. 미국 회사법도 회사 운영에 관한 주주의 정보청구권을 인정하는데 대상의 범위가 우리 법보다 훨씬 넓다.

우리 대법원은 이사회결의 등을 위해 이사회에 제출된 관련 서류라도 그것이 이사회의사록에 첨부되지 않았다면 이사회의사록 열람등사청구의 대상에 해당하지 않지만 이사회의사록에서 별첨, 별지 또는 첨부 등의 용어를 사용하면서 내용을 인용하고 있는 첨부자료는 해당 이사회 의사록의 일부를 구성해 이사회의사록 열람등사청구의 대상에 해당한다고 했다.(대법원 2013마657 판결)

미국법의 경우 이사회의사록과 회계장부를 포함해 사실상 회사가 작성해서 보관하고 있는 모든 정보와 자료를 신청 대상으로 한다(books and records). 세무자료, 회계사와 주고 받은 서신, 계약서, 연구자료 등도 포함되고 그 형태도 디지털 파일을 포함해 제한이 없다. 이메일이 포함됨은 물론이다.

델라웨어주 회사법의 경우 제220조가 열람등사청구에 대한 규정을 두고 있다. 델라웨어주 회사법원은 남소를 줄이기 위해 주주들에게 회사소송을 고려함에 있어서 이 규정을 잘 활용하도록 장려한다. 법원은 ‘정당한 목적’(proper purpose)과 ‘타당한 근거’(credible basis)를 조건으로 청구를 인용한다. 이 두 요건은 그다지 엄격하지 않게 해석되고 있다.

물론 주주에게 제공되는 정보는 ‘필요하고 필수적인’ 범위로 제한된다. 법원도 주주의 이른바 ‘피싱’(fishing expedition)을 방지하기 위해 정보청구를 인정하는 경우에도 비교적 좁은 범위에서 자료가 제공되도록 한다. 예컨대 공개 대상을 공식적인 이사회의사록에 국한하는 식이다.

그러나 최근 판례의 경향은 이사들의 개인 이메일을 포함해서 공개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다. 공식적인 자료가 존재하지 않지만 다른 방식의 의사 교환 증거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원고가 그를 소명하면 기밀정보에 해당하지 않는 한 법원은 해당 청구를 인용한다.

2019년 초에 일군의 NVIDIA 주주들이 2017년과 2019년 사이에 생성된 회사의 GPU(고속의 연산을 수행하는 컴퓨터 칩) 생산과 판매 관련 일체의 자료를 청구했다. 이 청구에 대해 회사는 앞에서 언급한 방대한 양의 자료를 제공했는데 주주들이 추가적인 자료를 요구하자 회사는 지나치게 그 범위가 넓다는 이유로 거절했고 주주들은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1심법원은 NVIDIA에 ‘비공식적 정보’도 주주들에게 제공할 것을 명령했는데 여기에는 CEO와 CFO가 송신 또는 수신한 이메일이 포함되었다. 회사는 상고했고 델라웨어주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확인했다. 또, 법원은 전문증거도 타당한 근거뿐 아니라 정당한 목적의 소명에 활용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NVIDIA는 원래 GPU를 비디오게임에 판매했다. 그런데 2017년 초에 소비자들이 GPU를 크립토커런시 채굴에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매출이 증가했다. NVIDIA는 게임에 필요한 그래픽 기능을 없앤 GPU를 따로 생산하기 시작했지만 소비자들은 종래 기능의 GPU를 계속 구매했고 공급이 어려워졌다. 게임용 GPU의 가격이 상승한 이유다. 그러자 원래 고객그룹이 이탈했다. 2019년 초에 크립토커런시용 GPU에 대한 수요가 급감하자 회사는 위기를 맞았다. 주가도 하락했다. 그런데 주가 상승기에 경영진은 주식을 처분했던 것이 드러났다. 일부 주주들이 소송에 나섰던 배경이다. 경영판단의 적절성과 이사의 충실의무 양자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회사가 상장주식회사가 되는 순간 ‘누구든지’ 회사의 주주로 등장할 수 있다. 경쟁사도 포함된다. 이 때문에 회사는 자본시장법에 따른 공시를 넘어서는 정보를 어느 정도로 주주들에게 공개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를 안는다. 회사의 사업에 어려움이 발생하거나 회사가 지배구조 관련 논란에 휩싸이는 경우, 주주들과의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에 주주가치의 보전을 위해서는 전향적인 정보공개가 필요하지만 이른바 ‘낚시질’로 경영진에 대한 공격 재료를 찾으려는 주주들도 있다.

우리 법원의 판례 조류는 이 문제에 관해 비교적 보수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과 관계없이 회사에 대한 압박만을 위해 행해진 청구는 정당한 목적을 결해서 부당하다는 전제 하에,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주주의 청구라 해도 주주가 회사의 경쟁자로서 취득한 정보를 경업에 이용할 우려가 있거나 회사에 지나치게 불리한 시기를 택하여 청구권을 행사하는 등의 경우가 아니라면 청구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보는 등(위 대법원 판결) 균형잡힌 태도를 보인다.

NVIDIA 사례에서 보이는 미국판례의 경향은 주주의 정보공개 청구가 투명하고 윤리적인 경영뿐 아니라 신중한 경영판단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기초하는 듯하다. 그로써 주주가치가 증대된다. 나아가, 넓은 범위의 정보 공개가 경영진의 경영판단이 타당했는지를 주주들이 사후적으로 검증하는 데 활용될 수 있게 하고 그와 관련한 불필요한 소송이 발생하는 것을 억제하려는 목적도 있다. 경영진과 이사회는 그와 같은 조류를 염두에 두고 이사회 의사록과 자료, 이사회와 경영진이 사용하는 교신의 형식과 내용을 정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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