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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의 크레딧 디스카운트 [thebell desk]

강철 기자공개 2023-01-26 13:56:31

이 기사는 2023년 01월 25일 07:4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채권 매입 열기가 연초부터 예사롭지 않다. 회사채가 공모 시장에 나올 때마다 수조원의 자금이 몰리고 있다. 포스코와 LG화학이 수요예측에서 모은 3조9700억원과 3조8750억원은 앞으로 깨지기 어려운 기록으로 남을 전망이다.

매년 1월 나타나는 연초 효과라고는 하지만 올해는 열기와 규모가 사뭇 남다르다. 시장이 회복세로 돌아섰다는 강한 확신이 투자자 사이에 자리잡은 듯 하다. 실제로 채권 투자심리를 나타내는 지표인 크레딧 스프레드는 최근 100bp까지 좁혀졌다.

하지만 이 역대급 유동성 잔치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곳이 있다. 바로 롯데그룹이다. 지난 17일 회사채 입찰에 나선 호텔롯데는 고작 5390억원의 수요를 모으는데 그쳤다. 2·3년물 모두 개별 민평보다 15~20bp나 높은 금리를 확정하는 등 가격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틀 후 수요예측을 실시한 롯데렌탈도 4280억원을 겨우 모았다. 3년물의 가산금리는 무려 +40bp로 정해졌다. 이처럼 부진한 계열사 성적을 감안할 때 조만간 수요예측에 나서는 롯데하이마트, 롯데쇼핑, 롯데칠성음료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롯데의 잇단 부진은 부정적(negative) 등급 아웃룩 때문으로 보인다. 국내 3대 신용평가사는 작년 11월 롯데지주를 위시한 계열사 7곳의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일제히 변경했다. 12월에는 전방위 자금 조달에 나선 롯데건설에도 부정적을 매겼다.

그런데 최근 한 회사채 투자자로부터 상당히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그는 먼저 '부정적' 꼬리표가 달려있지 않았더라도 롯데그룹 계열사가 조단위 수요를 모으며 유동성 잔치를 만끽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전제했다.

이어 근본적인 수요 부진의 이유로 롯데그룹의 크레딧 디스카운트를 언급했다. 레고랜드발 유동성 이슈와 더불어 세련되지 못한 그룹 이미지로 인해 투자가 꺼려진다는 것이다.

계열사의 개별 민평금리가 해당 등급 민평보다 40~50bp 높은 것도 이러한 디스카운트가 반영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입찰에서 기관이 아닌 자산운용사와 증권사 리테일을 중심으로 수요가 형성되는 탓에 주관사가 회사채 세일즈를 할 때마다 애를 먹는다고도 했다.

작금의 실물경제 한파 속에서 직접조달이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는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 하지만 롯데가 재계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존재감을 감안할 때 디스카운트 때문에 회사채를 찍을 때마다 적잖은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분명 아쉬움이 남는다.

롯데는 공모채로 연간 5조원 안팎의 자금을 조달하는 빅이슈어다. 만약 롯데가 다른 이슈어보다 매번 50bp 높은 금리를 확정한다고 가정하면 회사채 발행으로만 연간 200억~300억원의 기회비용이 추가로 발생하는 셈이다. 회사채 주관사에게 박한 수수료를 지급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롯데에 대한 회사채 시장의 인식이 쉽게 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은 이 크레딧 디스카운트가 유발하는 비용을 감수하고 회사채를 통한 자금 조달을 이어가야 한다는 얘기다.

몇년 전 "롯데그룹이 주최하는 여러 사업 공모전에 입상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롯데스럽지 않은 아이디어와 디자인'을 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실소했던 기억이 있다. 이 우스개가 비단 공모전에만 해당하지 않은 것 같아 정말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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