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bell

피플&오피니언

[KB증권 IB 10년의 발자취]"끝없는 도전과 실패, 지금의 영광 안겼다"⑧KB IB의 산증인 박성원 IB영업총괄부사장...소형 증권사, 메이저 IB로 성장시킨 주역

이상원 기자공개 2023-05-11 07:33:15

[편집자주]

KB증권이 2022년 국내 증권업계 최초로 '쿼드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그동안 그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았던 DCM과 ECM 동시 석권을 비롯해 M&A 금융자문, 인수금융까지 사실상 모든 IB부문에서 왕좌에 올랐다. 그 비결의 중심에는 따라올 수 없는 '커버리지' 경쟁력이 있다. 그리고 늘 새로운 시도를 통해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수 없이 개척해온 결과다. 지난 10년간 KB증권 IB의 발자취를 더벨이 따라 가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5월 10일 10:1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KB증권에게 2022년은 절대 잊을 수 없는 한 해다. 더벨 리그테이블 4관왕에 빛나는 '쿼드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IB명가' 반열에 올랐다. 소형 증권사에서부터 시작해 지금의 영광을 얻기까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지난 10년을 회상하던 박성원 IB영업총괄부사장(사진)의 감회는 남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한누리투자증권 시절부터 20년 이상 김성현 사장과 함께 지금의 KB증권을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쿼드러플 크라운은 그에게 단순한 최초의 기록 그 이상이다.

오랜 시간 수 많은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서러움을 삼켜야만 했던 그다. 때로는 한계에 부딪혔지만 그럼에도 늘 현실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지금을 만들었다. 박 부사장은 지금의 영광이 절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눈물 젖은 빵이 맛있는 빵이 되는 과정을 더벨이 직접 들어봤다.

◇소형사의 한계…절박함이 만든 1등 DCM

KB증권이 지난해까지 DCM 10연패를 달성하며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100억원만 미매각난 후 부실 처리되면 회사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던 시기도 있었다.

한누리증권의 자기자본이 1000억원 수준과 지점이 전혀 없는 소형 증권사로서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허락된 부분이 DCM이었지만 당시에는 작은 규모의 미매각에도 회사 전체가 난리났다. 자금이 묶이면 영업을 못해 회사 전체가 멈출 수 있다는 압박이 심했기 때문이다.

김성현 사장과 박성원 부사장은 늘 절박한 심정으로 세일즈를 다녔다. 퇴근 후 채권운용 펀드매니저 집 근처에서 그들이 올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며 미매각 물량을 세일즈했다. 이러한 간절함으로 STX, 웅진, LIG, 동양 등 대기업의 크레딧 이슈가 꾸준히 발생했지만 본능적인 리스크 관리를 통해 한누리증권은 피해갈 수 있었다.

박 부사장은 "한누리증권 시절에는 늘 절박한 심정으로 채권운용 펀드매니저들에게 매달렸다. 자기자본 규모가 작아 미매각 물량을 많이 떠안아 자칫 문제가 되면 신규영업을 할 수 없었다"며 "대신 그때 근성과 세일즈 기반의 DCM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사장과 박 부사장의 당시 경험은 지금 KB증권 DCM에 그대로 녹아있다. 기관투자자 등 세일즈 네트워크를 그대로 이식했다. DCM의 핵심은 결국 세일즈다. 아무리 많은 딜을 따와도 팔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그리고 이는 지금의 KB증권 DCM을 만든 기반이 됐다.

◇'첫 위기' 대규모 충당금, 조직 와해부터 재도약까지

KB증권의 첫 위기는 2007년이었다. 한누리증권 시절 파주 선유리, 을지로4구역 오피스, 공릉동 주상복합, 서울역 힐튼호텔 재개발 등 4개 사업장 에쿼티 브릿지에 투자해 900억원의 충당금을 설정했다. 당시 한누리증권의 자기자본 규모를 감안하면 치명적이었다. 설상가상 이듬해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불어닥치며 절대절명의 상황이었다.

회사의 인센티브 지급이 유예되자 한누리증권을 지탱해온 인재들이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김 사장과 박 부사장을 비롯해 심재송 전무, 문성철 전무, 이기우 이사 등은 끝까지 남았다. 회사와 시장과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모두 현재 KB증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당시 KB금융그룹으로 인수가 결정된 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한누리증권의 DCM 경쟁력을 보고 인수했지만 관련 조직이 사실상 와해된 상태였다. 이를 살리기 3년의 유예기간 동안 뼈를 깎는 심정으로 갚아 나갔다. 그리고 영업력을 회복해 마지막 약 170억원을 1년만에 갚으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박 부사장은 "인센티브를 유보해 봤자 비전이 없다고 생각한 직원들은 모두 회사를 떠났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3년동안 고생하며 다 갚았다"며 "2011년부터 공채를 비롯해, 펀드매니저, 일반기업 출신, 경쟁사 IB 등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인재를 영입했다. 새롭게 꾸린 조직으로 다시 시작해 지금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부동산 경기 둔화와 단기자금 시장 경색으로 중소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 그럼에도 KB증권은 10년전 교훈을 통해 철저한 리스크 관리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는 "매입약정은 우리가 처음 만든 상품이다. 부동산 시장이 호황일때 수익성이 높아 다들 잊고 있었지만 우리는 일찌감치 모두 경험해 봤다"며 "위기를 통해 얻은 교훈을 절대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서러움 딛고 업계 선두권 도약…'에쿼티 딜'

ECM은 KB증권이 오랜시간 풀지 못한 숙제였다. ECM은 트랙레코드가 중요해 과거부터 이른바 '빅3'가 사실상 독점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2012년 한솔홈데크의 250억원 유상증자를 주관할 기회를 얻었다. 어렵게 따온 딜이었지만 지점이 없어 세일즈에 대한 우려로 회사 내부에서부터 반대에 부딪혔다.

박 부사장은 "딜을 수임해 트랙레코드를 쌓는 것도 물론 중요했지만 그보다 직원들이 실무를 배울 수 있었기 때문에 꼭 했어야만 했다"며 "트랙레코드를 떠나 자기자본 규모가 작아 에쿼티 딜을 따내기 힘들때였지만 KB증권을 믿고 맡겼는데 회사에서는 처음이다보니 리스크가 높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사장님과 아파트를 담보로 잡아서 딜을 진행했다. 손실이 생기면 우리가 충당하겠다는 각서를 썼다"며 "결국에는 에쿼티 딜을 해야만 회사가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 김 사장님과 내린 결정이었다"고 덧붙였다.

통합 KB증권 출범이후 본격적으로 ECM을 강화해 수임한 딜이 현대상선(현 HMM) 유상증자다. 2017년 재무구조가 악화되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KB증권을 찾았다. 시장에서 현대상선에 대한 우려가 많았던 만큼 회사에서는 이번에도 반대가 심했다. 강행했지만 주가가 액면가에 미치지 못하면서 미매각을 기록하며 또 한 번의 위기에 직면했다.

김 사장과 박 부사장은 한진해운 파산으로 현대상선이 유일한 국적 해운사로서 문제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뚝심있게 밀어 붙인 결과 반전은 엉뚱한 곳에서 일어났다. 당시 남북관계가 개선된 가운데 대북주로 인식되면서 주가가 크게 올랐던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시절 수익성을 크게 개선하며 재무구조를 회복해 성공적인 유상증자로 기록됐다.

그는 "회사가 조달을 통해 살아날 수 있다면 이것은 좋은 증자다. 당시에는 반대가 심했지만 결국 당시 유상증자를 통해 지금의 HMM이 살아날 수 있었다"며 "국가 물류의 큰 축을 담당하며 우량한 회사로 변모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자부심이다. 힘든 기업의 조달을 지원해 주는게 IB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어 "2014년 대형 ECM 트랙레코드를 쌓기 위해 한 대형 건설사 유상증자 공동대표주관을 어렵게 따냈지만 실무 경험이 전혀 없다는 이유로 타이틀만 달고 실제 업무는 타 대형 IB가 다 했다"며 "하지만 이제는 증자 영역에서는 무서울게 없다. 우리는 RM들도 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증자의 맥을 짚을 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일례로 삼성중공업은 2016년, 2018년, 2021년 총 세 차례에 걸쳐 유상증자를 진행했다. KB증권은 트랙레코드 부족으로 앞선 두 차례 참여하지 못했지만 마지막에는 결국 해냈다. 이제는 대형 딜에 빠짐없이 참여하며 최근 3년간 유상증자 시장에서 업계 선두권을 지키고 있다.

◇대규모 미매각의 아픔, 'JB지주 신종자본증권'

2014년 9월 JB금융지주는 2000억원의 상각형 조건부자본증권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다. 바젤Ⅲ 도입후 국내 최초의 상각형 조건부자본증권이었다. 첫 발행이었던 만큼 대부분의 하우스가 딜 수임을 망설였지만 KB증권은 망설임 없었다.

앞서 2008년 우리은행이 외화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로 한 차례 혼란을 겪었다. 문제가 될 경우 투자자가 손실을 보는 구조였다. 특히 유사시 단순 개별 금융기관의 문제가 아닌 한국 금융권 전체의 문제로 비화될 수 있었다.

이를 감안해 KB증권은 2000억원 가운데 1350억원에 대한 총액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그럼에도 최초의 상각조건 발행으로 투자자가 외면하며 대규모 미매각이 발생했다. KB증권 내부적으로 일부 직원이 징계를 받는 등 큰 어려움을 겪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신종자본증권이 금융지주와 은행, 일반 기업의 자본 확충 수단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박 부사장은 "증권사가 신종자본증권을 안고 있으면 자본을 잡아 먹는다. 영업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세일즈에 나섰다"며 "이 시장을 만들었고 금융지주와 은행의 자본 확충으로 결국 국가와 산업 발전, 자본시장의 성장에 기여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더벨 서비스 문의

02-724-4102

유료 서비스 안내
주)더벨 주소서울시 종로구 청계천로 41 영풍빌딩 5층, 6층대표/발행인성화용 편집인이진우 등록번호서울아00483
등록년월일2007.12.27 / 제호 : 더벨(thebell) 발행년월일2007.12.30청소년보호관리책임자김용관
문의TEL : 02-724-4100 / FAX : 02-724-4109서비스 문의 및 PC 초기화TEL : 02-724-4102기술 및 장애문의TEL : 02-724-4159

더벨의 모든 기사(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copyright ⓒ thebell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