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막 연 적대적 M&A 시대]사모펀드발 적대적 M&A, LP 지형 흔든다①기관투자자는 꺼리는 영역, 패밀리오피스 존재감 커질 듯
이영호 기자공개 2024-11-04 07:47:05
[편집자주]
올해 자본시장 최대 이슈 중 하나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다. 동북아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인 MBK파트너스가 ‘게임체인저’로 뛰어들면서 분쟁 판도가 일거에 뒤바뀌었다. 이는 단순히 특정 운용사의 투자 이슈가 아닌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들의 투자 대상이 다변화되는 사건으로도 지목된다. 사모펀드 운용사의 공격적 M&A 투자 전략이 국내 자본시장에 가져올 영향을 조망한다.
이 기사는 2024년 10월 29일 13:3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내에서 적대적 M&A는 1990년대 중반 최초로 등장했다. 1994년 동부그룹이 한농을 인수하는 과정이 국내 첫 사례로 기록됐다. 우리나라에서 적대적 M&A가 잦은 이벤트는 아니지만 연 평균 2~3건가량은 벌어졌던 것으로 파악된다.과거 적대적 M&A 시도에선 기업 대 기업, 해외 펀드 운용사 대 국내 기업의 대결구도가 주로 연출됐다. 동부그룹의 한농 인수 시도가 기업 간 경영권 분쟁이라면, 후자는 대표적으로 SK그룹에 대한 소버린자산운용의 적대적 M&A 시도가 꼽힌다. 이른바 '소버린 사태'로도 불릴 만큼 국내 경제계에 충격이 컸던 사건이다.
특히 소버린 사태는 재무적투자자(FI)가 주도하는 적대적 M&A의 위력을 실감케하는 사례였다. 2003년 소버린은 SK㈜ 지분 약 15%를 확보한 최대 주주로 등극했다. 행동주의 펀드, 헤지펀드 운용사들이 소수 지분을 확보해 시세차익을 얻고 물러나는 것과는 달리 직접 이사회 장악을 시도했던 케이스였다.
◇'달라진' 사모펀드 운용사, 재계 정조준
국내 사모펀드 시장의 역사는 소버린 사태 직후인 2004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04년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개정으로 사모투자전문회사(PEF) 제도가 도입되면서다. 올해로 20년을 맞이한 국내 사모펀드 업계는 큰 전환점을 맞고 있다. 재계 그룹사의 '재무 파트너'로 포지셔닝했던 전략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MBK파트너스의 대기업을 겨냥한 경영권 인수 시도가 대표적이다. 경영권 분쟁이 발생한 대기업을 인수하려는 시도는 지난해 한국앤컴퍼니에서 시작, 현재 고려아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재계 입장에선 오랜 파트너의 '배신'으로도 비춰질 수 있는 투자 행보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적대적 M&A인지 여부를 놓고 이견이 엇갈린다. 중요한 것은 고려아연의 적대적 M&A 정의 여부가 아니다. 사모펀드 운용사가 기업 경영권 분쟁 복판에 뛰어들어 차익을 얻는 전략이 새 스탠다드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점이 화두다.
그간 사모펀드 운용사는 대기업이 내놓는 사업이나 비주력 계열사를 떠오는 입장이었다. 다만 한국앤컴퍼니,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 시도를 시발점으로 사모펀드 운용사가 매도인 입장과 관계 없이 능동적으로 투자 타깃을 설정하는 '적대적 M&A의 시대'의 물꼬가 트인 것으로 풀이된다.
◇적대적 M&A 자금줄은 '패밀리오피스'
통상 적대적 M&A에 나서는 사모펀드 운용사의 자금줄은 기관투자자가 아니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적대적 M&A는 세간의 시선이 몰리며 사회적 파장도 크다. 체질적으로 구설을 극도로 회피하는 금융사, 연기금 등 기존 유한책임사원(LP)이 감당할 투자 활동이 아니다.
현재 MBK가 고려아연 인수에 동원하는 블라인드펀드는 대다수 LP가 기관투자자들로 이뤄졌다. 일각에서 MBK가 공격적인 투자가 언제까지 가능할지 의문을 표하는 배경이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의 발언과도 연결된다. 김 이사장은 MBK의 고려아연 인수 시도에 대해 "국민연금 자금이 우호적인 M&A를 통한 기업구조 재무구조 개선 작업이 아닌, 적대적 M&A를 통한 경영권 쟁탈에 쓰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국내 최대 출자자인 국민연금이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는데, 여타 기관투자자 입장도 다르지 않다는 관측이다.
기존 기관투자자 중심인 펀드로는 사모펀드 운용사의 적대적 M&A는 제한된다는 뜻으로 읽힌다. 적대적 M&A를 위한 별도 펀드를 조성하는 것이 불가피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 자금은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핵심 재원으로 '패밀리오피스'가 첫 손에 꼽힌다.
◇투자 제한 적고 출자 유연성 커, 저변 확장은 숙제
적대적 M&A 전략을 구사하는 글로벌 펀드 운용사들의 경우, 펀드 LP를 패밀리오피스 중심으로 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펀드 LP로 들어오는 패밀리오피스들은 외부인이 면면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고도의 보안 속에서 패밀리오피스의 존재와 투자 내역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덕분에 기관투자자와 달리 적대적 M&A 등 투자 대상에도 큰 구애를 받지 않는다.
패밀리오피스 정의가 구체적으로 규정되진 않는다. 통상적으로 거액 자산을 보유한 가문, 자산가를 대상으로 자산운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정의된다. 세간 시선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프라이빗하게 움직이는 존재들이다. 기관투자자의 경직된 자산배분전략과 달리 패밀리오피스는 중장기적 관점과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유연하게 출자에 나서는 경향이 있다.
글로벌 트렌드를 살펴보면 기관투자자보다 사모펀드 출자에 더 적극적인 경향을 보인다. KKR과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패밀리오피스는 자산 배분상 PE펀드 출자에 가장 큰 비중을 둘 것으로 집계된다. 올해 기관투자자의 때이른 북클로징으로 애를 먹었던 사모펀드 운용사에겐 희소식이다.
패밀리오피스가 LP업계에서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할지는 결국 자금력이 좌우한다. 현 LP 지형도에서 패밀리오피스의 존재감은 아직은 크지 않다는 평가다. 패밀리오피스 평균 운용 업력은 10년 전후다. 전통 기관투자자 업력은 이를 훌쩍 뛰어넘는다. 아시아 지역의 패밀리오피스 숫자는 북미지역 대비 적고 업력도 짧다는 점은 한계다.
국내 패밀리오피스 존재는 아직 베일에 쌓여있다. 기업 M&A로 거부들이 점차 늘고 있는데 이들이 신규 패밀리오피스로 유입될 공산이 점쳐진다. 대표적으로 롯데그룹에 일진머티리얼즈를 매각해 약 2조원을 벌어들인 허재명 전 사장이 지목된다. 허 전 사장이 설립한 '컴퍼니에이치앤'이 거액을 굴리는 패밀리오피스다.
국내에서는 행동주의 펀드를 표방한 KCGI가 패밀리오피스를 펀드 LP로 섭외한 대표적 하우스로 꼽힌다. KCGI 펀드 LP에는 패밀리오피스, 국내 전략적투자자(SI)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모펀드발 적대적 M&A가 늘어날수록 자금줄인 패밀리오피스를 찾으려는 움직임은 가시화될 전망이다.
또 다른 IB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패밀리오피스 자금만으로 빅딜을 추진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며 "국내외 패밀리오피스와 SI 자금을 끌어들이는 광범위한 네트워크가 있어야 유의미한 규모의 펀드레이징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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