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유증 계획 9월에 미리 세웠나...1년만기 사모채 '6개월 콜옵션'1조 사모채, 고려아연 요청 내년 4월 콜옵션 계약 '이례적'...차입보다 자본확충 불가피
백승룡 기자공개 2024-11-05 10:25:59
이 기사는 2024년 11월 05일 06:3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고려아연이 메리츠증권 주관으로 1조원 규모 사모사채를 발행하면서 6개월 뒤 상환할 수 있는 조항을 넣은 것으로 확인됐다. 고려아연이 사모채 발행을 논의하던 9월 말부터 사실상 조기상환을 위해 유상증자 등 조달카드를 염두에 뒀던 것으로 해석된다.◇ 고려아연 ‘1조’ 사모채엔 ‘6개월 콜옵션’…사전부터 조기상환 계획 있었다
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이 지난달 2일 발행한 1조원 규모 무보증 사모사채는 발행일로부터 6개월 뒤 콜옵션(조기상환권) 조항이 포함돼 있다. 당시 사모채 발행 주관사는 메리츠증권으로 △메리츠증권 △메리츠화재 △메리츠캐피탈이 나눠서 1조원 전액을 인수했다. 표면적인 만기는 1년이었지만, 콜옵션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만기는 내년 4월 초로 예정돼 있는 것이다.
콜옵션 조항은 고려아연 측 요청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아연의 사모채 발행금리는 연 6.5%로, 당시 고려아연이 속한 AA+등급의 민평평균금리(3.2~3.3%) 대비 2배 수준이었다. 고려아연의 신용등급 대비 금리 메리트가 높은 만큼, 조기상환의 니즈가 있는 곳은 메리츠 측이 아닌 고려아연 측인 셈이다. 실제로 메리츠금융그룹은 셀다운 없이 현재까지 전액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관건은 고려아연이 콜옵션 조항을 둔 배경이다. 올해 상반기 말 연결기준 고려아연의 현금성 자산은 단기금융기관 예치금을 포함해 약 1조2000억원 규모다. 하반기 들어 고려아연은 자사주 공개매수를 위해 1조원 규모 사모채를 필두로 하나은행·SC은행으로부터 1조1635억원 차입, KB증권·한국투자증권 대상으로 기업어음(CP) 4000억원어치 발행 등 총 2조5635억원에 달하는 차입을 했다. 그 상태로는 반년 만에 1조원을 조기상환 할 여력이 없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6개월 콜옵션 조항을 둔 까닭은 사실상 유상증자를 염두에 뒀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고려아연은 최근 2조5000억원 규모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해 오는 12월 6일까지 조달을 마치겠다고 공시한 상태다. 고려아연의 자금 사용목적에 따르면 2조3000억원 규모 채무상환이 1순위다. 여기에는 1년 만기로 발행한 1조원 규모 사모채도 포함됐다. 사전에 콜옵션 조항을 두지 않는다면 조기상환도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려아연은 사모채 발행 시점부터 조기상환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특히 고려아연은 ‘실질적 무차입’ 구조였던 탓에 조 단위 차입금을 하는 것 자체가 신용등급 하방 압력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나이스신용평가는 고려아연의 신용등급을 AA+(안정적)로 부여하면서 하향조정 검토요인 중 하나로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대비 순차입금 0배 초과’를 제시했다. 올해 상반기 말 연결기준 고려아연의 순차입금은 ‘마이너스(-)’ 7170억원으로, 1조원 규모 사모채 발행만으로도 순차입금을 ‘플러스(+)’로 높여 하향 트리거를 터치하게 된다. 순차입금을 낮춰 신용등급 하방 압력을 조기에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 유증이었던 셈이다.
고려아연의 콜옵션이 문제가 되는 것은 사모채 발행 시점부터 이미 유상증자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는 점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고려아연이 지난달 23일 자사주 공개매수가 종료된 직후 같은 달 30일 대규모 유상증자 계획을 공시하면서 공개매수와 유상증자 계획을 함께 세워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통상 유상증자를 결정하고 증권신고서를 작성하기까지는 1~2개월이 걸리기 때문이다.
특히 고려아연은 지난달 11일 공개매수설명서를 정정 공시하면서 공개매수 이후 회사의 재무구조 등에 변경을 가져오는 구체적인 장래계획은 수립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공개매수 직후 단행된 유상증자는 회사의 재무구조에 크게 영향을 주는 결정으로, 공개매수설명서 정정 당시 유상증자 계획이 없었다는 점이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고려아연이 콜옵션 조항을 넣으면서 사모채를 발행한 시점은 이보다 앞선 10월 2일이다.
금융감독원은 고려아연 이사회가 공개매수로 자사주를 취득해 소각하겠다는 계획을 세우면서 이를 유상증자로 상환할 것이라는 계획을 함께 세웠다면 부정거래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유상증자 대표주관회사인 미래에셋증권과 공동주관회사인 KB증권을 차례로 현장 조사하고 있는 상태로, 부정거래 혐의가 파악되면 수사기관으로 이첩한다는 방침이다.
IB업계 관계자는 “고려아연이 공개매수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1조원 규모 사모채를 발행한 시점은 10월 2일로, 약 일주일 전부터 몇몇 증권사를 상대로 자금조달을 타진하다가 메리츠증권으로 확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모채에 콜옵션이 부여돼 있다면 당연 증권사 대상 타진 시점부터 콜옵션 조건까지 요청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9월 말부터 유상증자로 상환할 것이라는 계획을 세워둔 셈”이라며 “공개매수 종료 직후 유상증자를 결정했다는 고려아연 측 입장과 상반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고려아연 측은 "사전에 유상증자를 염두에 두고 사모채를 발행하거나 자사주 공개매수에 나섰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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