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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에도 질서가 필요하다 [thebell note]

이호준 기자공개 2024-12-10 10:07:57

이 기사는 2024년 12월 09일 07시03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기업을 취재하는 입장에서 올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어렵다"였다. 특히 중국발 공급과잉 등으로 업황이 악화한 석유화학과 철강 등 제조업이 큰 타격을 받았다.

올해 업계 상황도 구조조정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 LG화학은 나주공장을, 롯데케미칼은 여수2공장 생산라인 일부의 가동을 중단했다. 포스코는 포항제철소 1선재공장의 운영을 끝냈다. 현대제철은 포항2공장 폐쇄와 자회사 매각 등을 추진 중이다.

기업들의 결정을 비난하기는 어렵다. 중국산 저가 제품과의 경쟁에서 밀리며 공장을 돌릴수록 손해인 상황이다. 올해 3분기까지 LG화학의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6% 줄었고 롯데케미칼은 적자로 돌아섰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각각 42%, 99% 감소했다.

우려되는 점은 장기적인 해법은 마련돼 있는지 여부다. 현 상황은 가성비로 밀고 들어오는 중국 기업들을 피해 일단 공장 문부터 닫고 도망가는 모습에 가깝다. 제대로 된 미래 계획 없이 손실을 회피하는 데 급급하다면 비슷한 상황은 언젠가 반복되기 마련이다.

특히 공장과 함께 사라지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기계나 설비는 돈을 받고 넘기면 그만이다. 다만 일자리를 잃고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가뜩이나 제조업 기피 분위기 속에 구조조정의 충격이 겹치면 업계 전반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더욱 악화할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제조업에서 사람은 곧 기술과 동의어다. 이들의 경험과 상상력은 물론 문제를 대처하고 극복하는 모든 능력이 회사의 자산이자 재산이다. 중국을 피해 도망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도 이러한 역량을 유지한 채 지혜롭게 도망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폐쇄된 공장의 설비나 일하던 사람들이 결국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기술 유출 문제로 비판받고 다시 도망다니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우리나라 밤하늘의 별이 하나씩 꺼져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시간은 흐르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이번 달 안에 ‘업계 경쟁력 강화 방안’ 등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지난 3일의 비상계엄 선포 후폭풍으로 관련 행정 절차나 제대로 밟을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기업들의 질서 있고 책임 있는 구조조정이 더욱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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