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01월 14일 07시09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였을까. 증권 계좌를 볼 때마다 '국내 주식에 왜 투자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시장 지위도 탄탄하고 수익성이나 현금흐름도 우수한 국내 기업들에 투자했음에도 속절없이 빠지는 주가는 어쩔 수 없었다. 자산군이나 지역을 분산하지 않았다는 후회도 있었다. 의지와 상관없이 장기투자자의 길로 접어들었다.비자발적 장기투자자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최근 만난 증권사 취재원은 본부 내 투자자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했다. 설명은 이랬다. 한창 시장 유동성이 풍부했을 때만 해도 자기자본(PI)을 활용해 다수의 기업에 상장 전 지분투자(프리IPO)를 적극적으로 진행했는데 지금은 본부 손익을 갈아먹는 주범이라고 했다.
과거만 해도 PI 투자를 통해 IPO 주관 기회를 얻을 수도 있고 주관사가 되지 않더라도 해당 기업이 IPO에 성공하면 그때 지분을 팔아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일명 '꿩 먹고 알 먹고'가 되는 구조여서 중소형 증권사부터 대형 증권사까지 프리IPO를 위한 PI 규모를 늘렸다. 시장이 좋을 때는 상장 주관 수수료보다 투자 수익이 더 많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국내 주식시장이 꺼지면서 선순환 구조가 깨지기 시작했다. IPO가 이뤄지지 않아 회수가 안 된다는 점도 문제였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매년 말 평가손익을 따진 뒤 성과가 책정되는 구조였다. 정작 본업인 IPO 업무보다 투자 성과에 신경을 더 쓸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시리즈 B 단계에서 5억원을 투자했고 해당 기업이 이듬해 시리즈 C 단계에서 기업가치가 2배 올라갔다면 보유 지분 가치가 10억원이 된다. 이듬해 평가에서 7억원으로 깎인다면 본부 손실로 3억원이 잡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증권사는 투자활동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손익 평가에 따라 본부 성과가 달라진 것이다.
IPO를 성공적으로 마쳤더라도 문제는 있었다. 미리 투자한 지분을 팔려고 해도 주관사이기 때문에 의무보유 확약(락업)을 거는 경우가 많아 상장 후 주가 흐름에 따라 또 몇 달을 전전긍긍하게 된다. 저금리 시절 유동성이 풍부할 때 투자해 놓은 자산 때문에 몇 년간 발목이 잡혀있는 것이다. 지금 시장 상황을 보면 올해라고 다를까 싶다.
결국 의지와는 상관없이 비자발적인 장기투자자가 된 사례가 여기저기에 속출하고 있다. 개인투자자뿐 아니라 기관투자자도 마찬가지다. 국내 주식시장은 정치적 불확실성에 따른 금리나 환율, 국내 정책 변화, 각 회사의 재무지표 등 고려해야 하는 변수가 너무나 많은 고차방정식이어서 쉽사리 나아질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종사하는 취재원들과의 대화 끝에는 "국내 증시가 올해는 좀 괜찮아야 하는데, 주식은 팔기 전까지 손실이 아니다"라는 자조적인 위안이 오간다. 그럼에도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뻔한 말처럼 오히려 시장의 합리적인 밸류에이션과 기업의 밸류업 노력 등으로 투자자들도 함께 웃을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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