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09월 16일 07시06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자본시장 가운데서도 채권 시장(DCM)은 매우 보수적이다. 주식자본시장(ECM)이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시시각각 유동성을 발휘하는 것과 달리 DCM은 여전히 유선전화와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십을 중시한다. '크레딧'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할 때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그들이라고 HTS와 MTS의 편리함과 기동성을 모를 리 없다. 그러나 크레딧, 즉 신용으로 죽고 사는 시장의 특성에 따라 보수적이면서도 그에 걸맞은 시야를 견지할 뿐이다. 오죽하면 크레딧 애널리스트 셋이 모이면 지구 멸망을 논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시장을 설명하는 캐치프레이즈가 됐을까.
그런 채권시장에서 엔터사 시가총액 1위인 하이브가 데뷔를 앞두고 있다. 하이브의 신용등급 평정이 얼마냐보다 '획득 자체'에 이목이 쏠린다. BTS를 비롯한 글로벌 IP를 기반으로 전 세계를 무대로 성장했지만 하이브를 포함해 지금껏 엔터사 누구도 회사채 시장의 문턱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통상 IP는 실물자산 대비 담보가치가 낮으며 IP 기반 기업의 현금흐름 역시 안정적이지 않다는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대부분 국내 굴지의 엔터사들조차 자체 현금흐름을 활용해 왔다.
IP 중심 기업의 채권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필터는 엔터사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국내를 넘어 글로벌 수준의 바이오시밀러 개발·판매 역량을 갖췄지만 삼성바이오에피스나 셀트리온은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채권 시장에 데뷔하지 않은 게 일례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모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미 국내 주요 신용평가사로부터 신용등급을 받고 채권을 발행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안팎에서 IP가 아닌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역량과 수주 규모로 현금흐름을 명료하게 가늠할 수 있는 CDMO 사업체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요컨대 IP에 기반해 움직이는 엔터사나 바이오텍이 그간 DCM 데뷔가 어려웠던 건 이들이 제조업이나 타 산업군 대비 믿을 만한 무언가가 없었단 점에 기인한다. 다만 삼성바이오에피스나 셀트리온은 바이오시밀러를 주력으로 해 여느 바이오텍과 사업 색채가 다르고 수익성도 매우 견조하다.
하이브도 마찬가지다. 한국신용평가의 하이브에 대한 매핑그리드(Mapping Grid)에도 엔터사에 대한 보수적인 관점이 들어가 있다. 시장구조는 전체 매핑그리드 가운데 가장 낮은 BBB였다. 그러나 하이브의 EBITDA/평균영업자산과 순차입금/EBITDA에서 AAA로 평가했다.
이런 점에서 하이브의 채권시장 데뷔는 단순히 '엔터사 첫 진출'이라는 상징을 넘어설 전망이다. 무엇보다 시장 구조상 제약에도 불구하고, 펀더멘털로 신용도를 입증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하이브의 신용등급 획득은 국내 산업에서도 지식재산권(IP)이 성숙했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진 IP가 그저 예측 불가능한 무형자산으로 취급받았다면 이제는 크레딧 시장에서도 신뢰할 만한 '현금흐름 창출 자산'으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하이브의 사례는 한국 IP 산업이 채권시장이라는 가장 보수적 무대에서도 인정받기 시작했단 점을 가리킨다. 지식재산권이 실물 못지않게 신용의 증거로 작동할 수 있단 사실은 자본시장이 맞이하는 중대한 변곡점이다. 시장도 IP 기반 기업을 일률적으로 배제하기보다 그 성숙도를 따져내는 '안목'이 필요한 시기가 찾아왔단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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