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10월 14일 07시51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A 사외이사는 이사회에 합류한 지 4년여 만에 처음으로 소속 기업의 주식 매수를 고민했다. 시장에서는 상법 개정으로 이사회 책임이 강화됐다고 야단인데 주식 한 주를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주주 이익을 옹호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런데 주식은 언제 어떻게 사야 할까. 사외이사는 마음만 먹으면 기업 내부 정보를 속속 알 수 있다. 등기이사 주식 매매는 공시 대상이다. 괜한 오해를 사면 모두가 곤란해질 수 있다.
그때 한 인물이 뇌리를 스쳤다. 삼성전자의 안규리 전 사외이사. 안 전 사외이사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매달 말 주가 향방과 관계없이 삼성전자 주식 100주를 꾸준히 매입했다. 특정 시기 일괄 매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해 살 일이 없었다.
시장은 안 전 사외이사의 장기 투자자 면목과 책임 경영 태도에 주목했다. 이보다 더 좋은 투자 방식이 있을까. A 사외이사는 PB에게 전화를 걸어 매달 말 일정량의 꾸준한 주식 매수를 주문했다.
시장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회사 내부인이면서 외부인이기도 한 사외이사가 주식을 사 모으는 건 그 기업 주가 전망이 밝다는 메시지로 해석됐다. 이왕이면 이사회도 주가를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되는 논의를 자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문득 회사가 주식을 지급하는 방안도 좋아 보였다. 내부 정보 이용 의혹을 불식시킬 수 있고 반강제적으로나마 주주 이익을 고려케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이사회 책임을 강화하려면 그에 걸맞은 인센티브 제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사회 반응은 차가웠다. 임기를 마치면 회사를 떠나는 사외이사에게 주식을 지급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사회 강화가 실적 개선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사외이사 입장에서도 장기 보유해야 하는 주식보다 당장 융통 가능한 현금이 나은 것 아닌가. 다 좋은데 아직 시기상조다.
A 사외이사 사정이 다른 이들과 달랐을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기 돈을 들여 주식을 매입키로 결정한 건 아마도 그가 이사회 활동에 진심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식의 현금화는 취지에 맞게 임기 후 고려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물론 A 사외이사 생각이 옳다고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의 행보에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시간이 지나 일부 동료 사외이사가 그를 따라 주식을 매입했다고 한다. 이사회를 개선하는 것도 결국 사람의 일인지라 의지를 가진 이에게 마음이 끌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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