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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note]일임의 딜레마

고은서 기자공개 2025-11-04 10:08:12

이 기사는 2025년 10월 30일 15:1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요즘 운용사들 사이에선 유독 일임이 대세다. 특히 해외주식 투자에서는 여전히 양도소득세가 붙기 때문에 직접투자 대신 일임으로 우회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 됐다. 운용사 입장에선 고객의 세금을 줄여주고 효율적인 매매를 할 수 있으니 나쁠 게 없다. 시장 안팎에서는 일임이 주요 운용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문제는 이 구조가 운용의 본질과 엇갈린다는 점이다. 일임은 고객 계좌를 대신 운용하는 시스템이다. 같은 종목을 사고팔 수는 있지만 체결 순서에 따라 이해상충이 발생한다. 고객 주문이 먼저 체결되면 사익 편취 논란이, 회사 고유자산이 먼저 체결되면 시세조정 이슈가 불거진다. 0.1초의 차이로 운용사의 의도가 달라지는 셈이다.

고유자산 운용은 이 문제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일부 운용사들은 자체 자금으로 시장 대응을 시도하다가 일임 계좌와의 거래가 맞물리며 곤란을 겪고 있다. 매매를 분리하거나 고유자산을 장기 포지션 위주로 돌려 충돌을 최소화하는 식이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완전한 분리는 쉽지 않다. 같은 투자 판단을 공유하는 이상 어느 한쪽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고유자산이 운용사의 확신을 보여주는 수단이자 리스크 관리 수단이지만 일임 체계 안에서는 이마저도 조심스러워진다.

일임의 장점은 분명하다. 고객은 세금과 절차의 번거로움 없이 글로벌 자산에 접근할 수 있고 운용사는 효율적으로 포트폴리오를 관리할 수 있다. 그러나 효율의 논리 뒤에는 공백이 있다. 고객의 이익을 우선해야 하는 구조 속에서 고유자산의 운용 목적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해외주식의 경우 일임을 해야 세금 부담이 적어 고객 입장에서는 선호도가 높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고유자산으로는 수익을 내기 어렵다. 고객의 이익과 회사의 운용 철학이 엇갈리는 구조인 셈이다. 실제로 이런 이유로 제도가 바뀔 때까지 아예 해외주식 일임을 하지 않는 하우스도 있다.

일임의 확산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 속도가 업의 본질을 앞질러서는 안 된다. 효율과 편의가 운용의 본질을 대신할 수는 없다. 고유자산과 고객 자산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면 일임의 아이러니는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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