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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재설계]'주주 충실의무'가 불러올 소송의 시대①'이사의 방패' 주목받는 D&O, 활용도는 아직 저조…미·일 선례는 확대 불가피

허인혜 기자공개 2025-12-02 08:13:09

[편집자주]

상법 개정과 배임죄 폐지 논의 등으로 이사를 둘러싼 법적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 이에 맞춰 소송 방어를 둘러싼 시장도 꿈틀대는 모습이다. 거버넌스 전문가들은 임원배상책임보험(D&O)의 중요성을 한목소리로 강조한다. 이사회 감시 기능이 강화된 만큼 이사를 보호할 장치도 함께 설계돼야 한다는 취지다. 이사의 의무는 무거워졌지만 국내 D&O 시장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더벨은 국내 D&O의 현주소와 변화 흐름을 짚고, 법조계·학계 전문가 릴레이 인터뷰와 기업의 목소리를 함께 담았다.

이 기사는 2025년 11월 28일 08:1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올해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 전체로 넓어지면서 소송에 대응하기 위한 기업의 채비도 분주해졌다. 이사가 직무를 수행할 때 전체 주주의 이익과 공평한 대우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 조문에 명시되면서 경영 판단을 둘러싼 책임 소송의 가능성이 전례 없이 커졌다.

미국과 일본의 선례로 볼 때 소송이 늘어날 것은 자명하다. 임원배상책임보험(D&O)이 분쟁 완충장치로 떠오르고 있다.

배임죄 폐지 논의도 불을 지핀다. 원칙적으로 형사 책임에 대해서는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지만 민사의 경우는 적용 대상이기 때문이다. 민사 손해배상 소송이 늘어날 수록 이사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리스크와 방어비용이 커진다. 결국 주주 충실의무가 불러올 소송의 시대에 기업이 먼저 챙겨야할 방패는 임원배상책임보험, D&O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1990년대 도입된 D&O, 다시 뜨거워진 이유

임원배상책임보험은 이사와 감사 등 임원이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회사나 주주, 또는 제3자에게 손해를 끼쳐 손해배상의 청구를 받을 때 그 배상금과 방어비용 등을 보장하는 보험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에는 이미 안착한 제도다.

국내에는 1990년대 도입됐다. 판매는 1991년 시작됐지만 국내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가입한 건 1998년 이후다. 초기 90개 기업이 가입했고 최근 연구인 2024년을 기준으로 1600여곳의 기업이 이 보험에 들었다. 선진국 대비 아직 걸음마 단계 수준이다.

도입 30년이 지난 D&O가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된 건 상법 개정과 배임죄 폐지 등 법 개정 움직임 때문이다.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책임이 강화된 만큼 선의의 의사결정을 위축시키지 않도록 방패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출처=한화손해보험

특히 물적분할이나 인수합병(M&A)처럼 이해관계가 첨예한 안건에서는 소송 가능성이 높아졌다. 배임죄 폐지의 경우 형사책임과 민사책임의 경계가 재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거버넌스 전문가들도 D&O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조현덕 김앤장 법률사무소 기업지배구조·경영권 분쟁 그룹 변호사는 "상법 개정에 따라 이사들의 D&O 확대 요구가 예상되는 만큼 보장범위·면책을 재점검하고 담보 확대 협상을 준비하라"고 제언했다.

◇가입률 높고 손해율 낮다…저조한 활용도 '방증'

국내 상장사들의 D&O 가입률은 높은 편이다. 양희석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해 발간한 '임원배상책임보험의 통지조항'에 따르면 2023년을 기준으로 상장사의 75%가 임원배상책임보험에 가입했다.

하지만 손해율이 높지 못하다. 2022년 청구 건수가 122건으로 손해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전에는 손해율이 2% 미만으로 나타났다. 손해율은 보험사가 받은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의 비율이다. 손해율이 높을수록 보험사는 말 그대로 손해를 본다. 곧 해당 보험의 활용도가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반대로 손해율이 너무 낮은 보험은 그만큼 활성화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손해율은 점차 상승 중이지만 여전히 높지 않다. 또 단기적인 이벤트의 영향으로 들쭉날쭉했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김동겸 보험연구원 보험산업연구실장은 2024년 기준 임원배상책임보험의 손해율이 50% 이하였다고 답했다.

가입률은 상장사의 과반 이상이지만 활용도가 미진한 이유로 소송 자체가 활발하지 않다는 점이 꼽혔다. 이사회를 상대로 책임을 묻는 투자자가 여전히 많지 않아 배상해야할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유사한 비교군이 2002년 D&O를 도입한 중국이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다이렉트에 따르면 중국 역시 보험 보장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인데 도입 자체가 늦었고 소송 위험이 적고 규제가 제한적이라는 이유가 꼽힌다.

또 도입 당시 미국의 보험을 바탕으로 제정된 약관이 최근까지 유지돼 보호받을 영역이 한정적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전체 가입자 수가 많지 않아 보험사로서도 약관 개정의 필요성이 대두되지 않았다.

theBoard 이사회 평가에서 2년 연속 1위를 기록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기업지배구조보고서. 임원배상책임보험 가입 여부를 명시하고 있다. 출처=전자공시시스템

2023년 10월 금융위원회는 기업지배구조보고서 가이드라인을 개정하며 이사를 지원하기 위해 임원배상책임보험 제도를 활용하는지를 공시하도록 했다. 아직은 세부적인 정보가 아닌 가입 여부만 확인이 가능하다. 이마저도 상장사에 국한된다. 중소·비상장사의 공백이 크다.

◇바로미터는 D&O 활성화된 미·일

D&O가 자리를 잡은 해외 국가들은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전문가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해외 국가들은 회사법의 변화와 소송의 증가, D&O의 발전 단계를 거쳤다.

D&O가 가장 먼저 활성화된 나라는 미국이다. 대공황 이후 증권 규제가 정비되면서 주주 대표소송이나 집단 소송이 확산됐다. 소송과 함께 델라웨어 등 각 주의 회사법이 개정됐다. 이사와 임원에 대한 회사 보상과 책임 보험의 가입 근거를 명문화한다. 델라웨어 회사법 145조는 회사가 이사·임원을 위해 방어비용과 손해배상금을 부담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의 글로벌 보험중개사 갤러거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호주 등에서는 상장사의 D&O 가입이 이사회 모집보다 선제적인 조건이 됐다. 벤처캐피털(VC)이나 사모펀드 등이 이사회 진입을 검토할 때도 기업의 D&O 가입 여부를 가장 먼저 따진다는 전언이다.

일본 역시 회사법 개정을 계기로 임원배상책임보험 제도를 본격화했다. 2019년 회사법 개정으로 이사의 보수 규정과 함께 회사 보상과 D&O 보험 관련 조항이 신설됐다. 개정법은 이사회 임원이 직무 수행 과정에서 부담하는 책임을 회사가 보상하고 별도의 보험 계약을 체결하도록 했다. 일본 기업들이 사외이사를 확대하면서 D&O 시장이 더 활발해졌다.

두 국가 모두 회사법의 개정과 소송의 증가가 맞물리며 D&O 시장이 커졌다. 투자자 소송 등 민사책임을 져야할 일들이 늘자 리스크 관리 수단으로 D&O를 활용했다. 정부가 일정 수준 이상의 정보 공개를 요구하면서 D&O 가입이 기업가치 상승 효과를 부른다는 신호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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